지난 장에서 이스라엘 성소의 속죄의 두 단계에 관해 다루었다. 그러나 어떤 죄인들은 희생 제사를 통한 속죄하는 용서를 받지 못했다. (256.1)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256.2)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질 것이라(민 15:30~31). (256.3)
 반역의 정신으로 죄를 짓는 자는 속죄제의 특권이 박탈되었다(참고 민 15:22~29). 그 사람은 “끊겨”졌다. 이것은 가석방이 불가능한 죄의 선고요, 법정 최후 언도요, 그 인생이 끝나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256.4)
 어떤 죄들은 그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희생 제사를 통한 속죄를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소에 영향을 끼쳤다. 레위기 20:3은 이스라엘 진영 중에 거했던 이스라엘 사람 또는 이방인이 몰렉에게 자신의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언급한다.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256.5)
 여기서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것과 그분의 명예와 관련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의 관계를 주목해보기 바란다(참고 겔 20:9). (257.1)
 민수기 19:13은 시체와 접촉하여 더렵혀진 자신을 정결케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자에 대한 형벌을 보여 준다. (257.2)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민 19:20).
(257.3)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죄인들이 성소를 더럽히는가? 단순히 거룩한 영역을 불결함으로부터 지키는 정결 규례들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것(참고 레 15:31)이나 잔혹한 거짓 신들을 영화롭게 하는 빗나간 예배 체계에 참여함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예배 제도에 대한 반항을 보이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더렵혀지는가? (257.4)
 에스겔 23:37~39는 고의적인 죄를 범하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오는 위선과 성전을 직접 더럽히는 죄를 더하게 되는 때에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다(참고 렘 7:9~11, 30~31). 그러나 레위기 20:3이나 민수기 19:13, 20에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성소를 더럽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적으로 죄인들이 성소에 들어올 때에만 일어났었다는 암시는 없다. 몰렉 예배자 또는 고의로 시체와 접촉함으로 부정하게 된 개인들이 단순히 성소로 들어가 성소를 직접적으로 더럽히는 것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257.5)
 그러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죄를 범함으로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에 형벌을 피할 길이 없었다. (258.1)
 단순히 노골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이 어떻게 성소를 더럽히는가? 우리는 죄가 어떻게 성소로 옮겨지는지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세계의 움직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의식(儀式)”의 세계를 다룬다고 우리의 부족한 지식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의식의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이 (가) 위치에서 시작되어 (나)위치 그리고 (다) 위치 순으로 이동하듯이 이동하지 않는다. (258.2)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죄는 희생 제물을 통해 성소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 죄들은 여호와께 죄들을 가져오는 합법적인 방법인 희생 제사의 과정을 “생략했다.” 회개하는 죄인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때 그분께서는 그 희생 제물을 통해 그 사람을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실 수 있어서 기뻐하셨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께 죄를 내던질 때 죄의 더러움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그분의 성소에 난입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태도의 차이는 이해할만 하다. 가령 여러분의 자녀가 욕실에 씻으러 가는데 여러분은 진흙을 묻힌 채 집에 들어온다고 싫어하겠는가? 반대로 그 아이가 반항적으로 진흙 덩어리를 집 창문을 향해 던진다면 어떻겠는가? (258.3)
 희생 제사를 통해서가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성소를 더럽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 정죄를 받았고 이 정죄를 제거할 짐승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신적인 또는 인간적인 지도자들은 자신의 부하가 부적절한 처신을 해서 주인을 잘못 나타냈을 때 자신의 고결함을 유지하도록 잘못과 함께 그 일을 범한 사람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258.4)
 여호와께서 공개적으로 반역하는 죄를 범한 므낫세 왕을 용서해주실 때(역하 33:13)에 그는 자신이 행한 것을 속죄 받으려고 성전에 가져올 수 있는 짐승의 희생 제사가 없었다. 바로 자신의 자식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제사를 행한 죄로 그는 “끊어”지는 정죄를 받았다(참고 레 20: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 받기에 필요조건인 짐승 희생 제물 없이(참고 레 4:26) 직접적으로 므낫세를 용서해 주셨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초인 오실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에 근거한 용서이다. 요 3:16은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를 믿는 자마다“믿는 모든 자”를 의미한다. (259.1)
 비록 므낫세가 하나님을 믿고 용서함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보증은 없다. 배도의 내리막길을 고집스럽게 내려가다 다시 돌아오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내리막길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지 못하며, 믿음의 가능성이 커지거나 양심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한다. (259.2)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의 은혜를 누렸던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사실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삶에 그대로 적용된다. 히브리서 6:4-6에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가 타락한 자들은 마치 그분을 처음부터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처럼 욕보였기 때문에 특별한 죄를 지은 것으로 기록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공공연히 하나님께 반항하며 그분의 예배를 경시한 자들은 속죄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259.3)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히 10:26). 그리스도를 포기하는 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정말 고통스러운 고난을 통해 흘려진 그분의 피를 필요없는 것으로 버린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이다(히 10:29). 그들은 주님께서 심판하실 그 때에 정죄를 받을 것이다(히 10:27~31). 그리스도의 피는 버려지기에는 너무 고귀한 것이다. (260.1)
 속죄의 첫 번째 단계인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으면서 정결케 하는 속죄의 은혜가 있는 성소를 불법적으로 더럽힌 자들은 대속죄일의 짐승 희생 제사들을 드릴 수 없었다. 학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대학 입학허가조차 없는 사람이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대학원에 받아 들여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과 같이 속죄의 첫 단계에 부적합한 사람은 확실히 다음 단계에도 부적합하다. (260.2)
 그렇다면, 성소는 어떻게 “불법적인 더럽힘”(Illegitiniate Defilement)으로부터 정결함을 입을 수 있는가? 땅과 회중을 더럽히는 심각한 죄들은 죄인들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제거되었다(민 35:33; 신 17:7).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불법적인 더럽힘의 죄들은 죄인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에 의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성소가 정결케 되어졌다거나 몰렉의 예배자들이나 시체와의 접촉을 통해 부정해진 자들이 성소에 있음으로 해서 생긴 죄들이 그들을 죽임으로 성소가 정결함을 입었다는 증거는 없다. (2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