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장 10절“주의 날”이 매주일의 일요일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씩 맞는 부활절 일요일이며 이 부활절 일요일이 오늘날의 일요일 예배의 기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신약성경에 기초한 주장이 아니고 4세기 후반의 기독교 문서인 「사도들의 헌장」(Apostolic Cosntitution, 7, 30, 1)의 불분명한 진술에 기초한 것이다. 더구나 요한계시록의 수신 교회들인 아시아 교회들은 요일에 상관 없이 니산월 14일을 고정하여 기독교 유월절로 지키는 이른바 14일 교회(Quart-desimonism)이며 이 교회들의 이러한 전통은 바로 사도 요한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이 교회사의 상식이다. 즉 요한과 그의 교회들은 니산월 14일 다음의 일요일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활절 전통과는 다른 신앙 전통에 서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장 10절“주의 날”이 부활절 일요일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383.3)
 기독교의 일요일 주일 역사에서 “안식 후 첫날”의 비중
 앞에서 보았듯이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일 중 첫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기 위해서 모였던 사례를 찾아볼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명령한 부분도 찾아볼 수 없다. (384.1)
 그리고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첫째 날을 포함한 “안식 후 첫째 날”들 중에 “부활의 날”로 호칭된 날이 한 날도 없다. 첫째 날이 안식일로 호칭된 일도 없다. 처음서부터 끝까지 “첫째 날”로 일컬어지고 있을 뿐이다. 종교적인 행사나 성례의 일이 이루어지는 날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보통 날의 하나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384.2)
 그리고 초기 기독교 3세기에 걸친 기독교 초기 문헌에서 교부들이 신약 성경에 8회에 걸처 언급된 “안식 후 첫째 날”을 근거로 하여 일요일 준수를 주장한 글은 한 편도 없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 안식일을 주장하는 이유로 신약 성경의 명령이나 넷째 계명을 내세우지 않고 그 대신에 교회법을 제정할 수 있는 교회의 권위를 내세웠다. 신약 성경절을 내세워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삼으려는 기독교 단체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일어난 개신교회이다. 그들은 교회의 권위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로마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 일요일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일요일을 정당화하는 전통에 있어서는 로마 가톨릭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있다. 개신교회는 자신들의 신앙이 성서적 기초 위에 서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여 일요일의 성서적 근거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억지이다. 이들은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한 베드로의 경계를 명심해야 한다. (384.3)
 로마 가톨릭은 최근까지도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신약 성경을 내세우지 않았다. 일요일 예배의 근거로 신약 성경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신약 성경 이후의 기독교 전통이다. 그런 점에서 “Dies Domini”의 경우는 참으로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이 일요일 예배의 정당성을 위하여 광범위하게 성서적 근거를 내세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385.1)
 토마스 아퀴나스도 일요일 준수로 제칠일 준수를 대신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였고(Summa Theologica, 1947, Q. 122, Art. 4, II, p. 1702), 트렌트 공회(1566)도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하나님의 교회가 원해서 안식일을 주일로 옮겼다”는 것이다(J. Donovan, ed. Cathechism of the Council of Trent, 1908. chapter Ⅳ, Question 18, p. 347). 종교개혁 시대인 16세기의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자들도 새로운 율법을 제정하고 새로운 종교의식을 제정할 수 있는 교회의 권세를 입증하기 위하여 빈번하게 로마 가톨릭교회가 일요일을 제정한 사실을 상기시켰다(J. N. Andrews and L. R. Conradi, History of the Sabbath, 1912, p. 586-595). 교회가 성경이나 계명 위에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하여 이미 교회가 과거에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꾼 역사적 사실을 지적했던 것이다. 개신교회가 충실히 지키고 있는 일요일 예배는 성서에 기초한 날이 아니라 바로 개신교회가 비성서적이라고 비난하는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날이 아니냐고 반문했던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이같은 주장은 루터교회의 신앙고백인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1530)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안식일이 가톨릭교회에 의하여 십계명의 의도와 반대되게 변경된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들이 저지른 일로서 안식일을 변경시킨 것보다 더 큰 일이 없다. 그들의 말대로 십계명의 하나를 없앴으니 교회의 권세가 크도다”라고 탄식하였던 것이다(Augusburg Confession, Art. 28, in Concordia or Book of Concord, the Symbols of the Evangelical Luthern Church, 1957, p. 24). (385.2)
 그런데 일요일이 신약 성경에 전혀 기초하지 못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제칠일 안식일은 신약 성경에서만 최소한 59회에 걸쳐 언급되고 있으며 단 한번도 부정적으로 언급된 일이 없다. 시비거리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골로새서 2장 16-22절이다. 안식일 준수가 천사숭배와 관련되어 왜곡되어 있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안식일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논평이 아니라 안식일 준수가 왜곡되는 경우에 대한 경고였다. (386.1)
 사람을 축복하기 위한 안식일의 존재 이유
 기독교의 중심이시고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창조되었다고 하셨다(막 2:27).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구약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이 안식일을 제정한 목적 대상이다. 그래서 이 땅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안식일도 존재해야 한다. 이 땅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안식일은 사람을 축복해야 하고 사람을 거룩하게 해야 한다. 안식일을 사람에게서 뺏아가려는 의도는 사람에게서 축복과 성화를 빼았으려는 의도이다. (386.2)
 예수님은 살아서 안식일을 충실히 지켰고 죽어서도 지켰다. 어느 때 어디에서도 자신이 안식일을 폐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시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이 친히 폐하고자 하는 날이나 제도에 대하여 자신이 그 주체요 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그 주인이라고 선포해 놓은 그 날을 폐한다면 그 위신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날과 함께 그 주도 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387.1)
 그리고 예수님이 친히 안식일을 폐할 계획이었다면 어찌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안식일이 제정되던 당시로 올라가 안식일의 입법정신을 찾아내어 안식일의 정신을 제대로 복원하고 안식일 신앙을 개혁하려 하였겠는가. 앞으로 인간을 계속적으로 축복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계속적으로 선용하려 하셨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와 같은 계명에 대해서도 그 계속적인 용도를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미워하는 것과 음욕을 품는 것에 대해서까지 경계하여 그 계명들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387.2)
 안식일 계명은 넷째 계명이다. 할례와 같은 제도와도 다르다. 사도 바울은 “할례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전 7:19)고 하였다.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모두 십계명을 그리스도인 생활의 지침으로 강조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방편으로서는 부적합하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은 언제나 남아 있는 것이다(막 7:8, 9). (387.3)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7장 9, 13절에서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버리는도다”라고 하셨다.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고 하셨다. 오늘날 일요일 준수에 대해서도 달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하셨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셨다. (3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