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근거로 보면, 피조물에게서 끌어낸 어떤 유비도 하나님께 물리적 또는 관념적 형태를 부여하는 토대를 제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이 자연 신학을 개진할 가능성을 주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따라서 둘째 계명이 이렇게 명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출 20:4). 오직 하나님만이 그분 자신을 계시하는 데 공허한 사변을 개입시키지 않고 유비를 사용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끌어내신 유비 가운데 어떤 것을 신인동성동형론적 표현(anthropomorphism)이라고 일컫는다. 즉 이런 표현들은 인간 존재에게 속한 특징들을 하나님께 부여한다. 성경에 나오는 신인동성동형론적 표현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실재들에 비추어 그분 자신의 존재와 행위를 계시하신다. 예컨대, 하나님이 팔을 가지고 계신다고 표현되지만(
출 15:16; 시 89:13), 그것은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팔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런 표현은 하나님이라는 실재는 인간의 팔이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일뿐 아니라 무한하게 더 많은 것도 행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실재 그대로의 구조를 상상할 수 없지만, 유비적인 언어가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의 측면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면서, 동시에 그분의 신성의 신비를 보호한다.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