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4부 거룩한 열성 제22장 매일의 제사는 구원의 보증
 그러나 하나님의 해결책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사람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가 되었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다. 예를 들어 민수기 19장 13절과 20절에 보면 시체와 접촉으로 인한 제의적 부정에서 스스로 정결케 하는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죽은 친지들을 장사지내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그들에게 이렇게 함으로 부정하게 되는 것은 죄가 아니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정결케 하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결례를 거부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되었다. (173.1)
 비유를 들면 엄마들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옷을 더럽히면서 노는 것을 허락지만 놀이 후에는 씻게 할 것이다. (173.2)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거절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치명적인 독사에게 물렸지만 해독제 맞기 거절한다면 우리의 남은 수명은 짧아질 것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지만 낫기 위한 치료를 거부한다면 영원히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보스니아에서 우리를 구하러 오는 헬기를 피해 도망간다면 우리는 미친 것이다. (173.3)
 우리가 속죄를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방법들을 무시해 버린다면 아마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역사’가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면 역사조차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끊쳐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곧 우리 가계의 후손을 멸절시키려 준비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Donald Wold, “성경적 형벌의 의미(The Meaning of the Biblical Penalty Kareth)”, 1978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Ph.D 학위 논문) (173.4)
 다른 사회의 사람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도 그의 죽음 후에 그의 자손들을 통하여 그의 생명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이것은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기혼남이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그의 형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살려두기 위해 형수와 결혼해야만 했다(창 38:6~11; 신 25:5~10; 룻 4). 그러나 한 사람이 “끊쳐”졌다는 것은 미래에 그의 이름을 언급할 후손조차 없게 되는 것이었다. (174.1)
 “끊쳐”지게 되는 것은 죽음 이상의 운명이며 죽음보다 더 나쁜 운명이었다. 사실, 어떤 사람은 처형됨으로 동시에 “끊쳐”졌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74.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레 20:2~3) (174.3)
 몰렉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친 사람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였고, 그리고 후손들을 통한 생명의 연속성이 끊어짐으로 다시 죽음을 경험하게 되였다. 그것은 이중의 재난이었다. (174.4)
 “끊쳐짐”을 당하는 것은 둘째 사망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모든 죄의 흔적과 죄인들이 끓는 “불 못”에 던져 사라짐을 당하는 때(계 20:9~15)인 지표면의 유황불에 영원한 죽음을 당하는 궁극적인 “둘째 사망”을 미리 맛보는 것이었다. (174.5)
 만화나 농담들과는 달리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은 지옥에 대한 권한이 없으며 그들이 그곳에 있었던 적도 없다. 반대로 그들은 멸망한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계 20:10). 지옥은 지금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지옥은 미래에 예수님의 재림 후 천년기 지상에서 일어날 사건이다(계 19~20). (175.1)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으실까? 이것은 그분의 본성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이사야 28장 21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이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벧후 3:9)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벌을 받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이한 일도 그분의 일이다. 그분은 책임을 받아들이셨다. 그분은 죄와 억압과 불행, 궁핍, 곤궁을 일으키는 근원에 종지부를 찍으실 것이다. (175.2)
 이 비참함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고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충분한 기회들이 주어졌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생명 유지 장치이시다. 우리의 모든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다(단 5:23). 만약에 우리가 그분을 거절하므로 우리의 생명 유지 장치를 끊어버린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겠는가? (175.3)
 다른 비유를 들자면, 인류는 타이타익에 승선한 승객처럼 침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얼음물 속에 빠져 있다.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라는 구명보트를 보내셨다. (175.4)
 그분은 우리를 구명보트로 초청하신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에 사람들을 강제로 태우지 않으셨듯이 우리를 그 구명보트에 강제로 태우지 않으신다. 그 구명보트 외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을 다른 방법이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없을 수 없나니”(행 4:12). 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대로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요 3:18). (176.1)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신실하심에 대하여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다면 이것을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롬 3:23; 6:23). 단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죽음뿐만 아니라 영원한 죽음인 “둘째 사망”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의 메시야이신 예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한 형벌을 받으셨다. 다니엘 9:26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여기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선지자는 그분이 “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첫째 사망을 넘어서 미치는 둘째 사망을 가리키는 구약의 거룩한 심판에 따른 형벌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에 둘째 사망을 죽으셨다. (176.2)
 그리스도께서 첫째 사망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둘째 사망에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첫째 사망은 의식이 없는 일시可인 상태이기 때문에(요 11:11~13) “잠잔다”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밀접한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였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과 끊어지는 극심한 고통은 그분의 신체적 고통을 뛰어넘었다(마 27:46). (176.3)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골 2:9; 참고 1:19)신다. 신성의 모든 충만은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 안에도 분명히 거하였을 것이다. 각자 충만한 성삼위일체의 개체들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개체를 이루셨다(신 6:4). 원자가 한 개체로 단단히 결합된 것처럼 그분들은 서로 연합되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심으로(고후 5:21) 그리스도는 죄와는 상극인 거룩함을 지닌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하셨다. 죄가 하나님의 일치의 원자를 뚫고 들어가 뒤틀어 버림으로 떨어져 나가는 분리는 고통의 핵폭팔을 가져왔다. (177.1)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은(마 28장, 요 20) 나사로가 살아난 것(요 11:43~44)처럼 단순히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은 아니다. 믿기지 않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는 돌아올 수 없는 둘째 사망과 같은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177.2)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 죄의 책임을 담당하셨다. 하지만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그 형벌을 받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죄가 없으셨으며 여전히 하나님이셨다. 따라서 비록 그리스도가 “끊쳐짐”을 당하여도(단 9:26)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었다(人} 53:10). 그분의 이름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177.3)
 둘째 사망과 동등한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딤후 1:10)셨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하여 죽음은 결국 불 못에 던져져 사라지게 될 것이다(계 20:14). (17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