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4부 거룩한 열성 제22장 매일의 제사는 구원의 보증
우리는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물건을 산다면 그 물건의 품질이 보증된 것인지 확인할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밟고 설 때에도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168.1)
 내가 13살 때에 우리 가족들은 미네소타에 있는 한 호수에 갔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캠핑장에는 페달보트가 있었다. 우리는 작은 강아지 티피(7%를 태우고 페달을 밟아 호수를 돌아다녔다. 보트가 커다란 연잎들이 수면을 완전히 덮은 곳에 이르렀다. 티피는 모든 것이 녹색인 것을 보았다. 녹색은 잔디와 비슷했기 때문에 잔디라면 걸을 수 있어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티피가 보트에서 연잎으로 뛰어 내림과 동시에 물속에서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티피를 건져 올렸으나 티피의 놀란 표정에 포복절도하다 보트에서 떨어질 뻔했다. (168.2)
 티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확신이 필요하다. 결혼을 할 때 연인이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알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가 그분과 정말 연결이 되어 있는지, 특별히 우리를 위한 그분의 약속을 지키실 것인지를 알고 싶을 것이다. (168.3)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168.4)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久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169.1)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13~15, 19~20) (169.2)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 앞에 겸손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사실이다(사 57:15; 빌 2:5~8). 그러나 그분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갖게하는 확신을 갖도록 우리를 격려하신다(요일 5:14). 그 담대함은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 할 때 그분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게 해준다(히 4:16). (169.3)
 우리가 죄를 짓는 그 순간이 우리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때라면 어떻게 해야 될까? 그때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사도 요한은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한다. (169.4)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네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1:9; 2:1) (169.5)
 우리가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에 나아오기도 저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을 또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가 범죄하는 시간과 그 죄의 용서를 구하는 시간 사이에도 우리를 덮어주실까? 이스라엘 성소의 매일의 제사는 “그렇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하셨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 마리의 어린 양이 이스라엘 회중 전체를 위한 번제로 드려졌다(민 28:1~8). 이것은 이스라엘 제사제도의 기본 제사였다. 또 다른 구절들을 통하여 번제가 속죄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레 1:4; 16:24), 매일의 변제는 그들이 어디에 있든 정규적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170.1)
 특별한 절기의 경우에는 별도의 번제와 속죄제가 성소에서 아침마다 드리는 번제와 함께 드려졌다(민 28~29). 성경은 이 속죄제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다(민 28:22, 30; 29:5). 따라서 매일의 제사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제사들도 모든 사람의 속죄를 가능하게 하였다. (170.2)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희생을 나타내는 제사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 기회도 없이 범죄한 순간 정죄를 받지 않도록 했다. (170.3)
 어떤 경우에 범죄한 사람은 자신이 범죄한 것을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제물을 가져오는 것이 지체되었다(레 4:27~28). 사람들이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전에 공적인 매일의 제사들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것을 막아주었던 것이다. (171.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개인적인 희생제사의 경험은 공적인 제사들에 추가되는 것이었다. 두 제사 모두가 필요했다. 어떤 한 편이 다른한 편을 대신 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를 가능하게 하였다(롬 5:18). 하지만 우리가 용서를 받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만 한다(요일 1:9; 참고 요 3:18). (171.2)
 죄를 지은 것을 깨달은 이스라엘 백성은 희생제물을 가져와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ב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레 5:1). “허물이 그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 죄 때문에 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죄인이 희생제물을 가져왔을 때 하나님은 그 죄를 용서해주셨다(5~13절). (171.3)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을 때 하나님은 이미 죄인이 성소로 옮겨놓았던 형벌의 책임을 떠맡으신다. 출애굽기 34:7은 하나님을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악을 용서한다”라고 쓰인 히브리어 표현이 허물/책임이 있다에 관련해서 레위기 5:1에 나타난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용서하실때 하나님은 자신에게 죄인의 책임을 전가시키신다. (171.4)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역할을 나타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신 것처럼 제사장들도 허물과 책임을 졌다. 레위기 10:17에서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왜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제에서 그들의 몫을 먹지 않았는지 묻고 있다.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172.1)
 한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를 약속하셨다는 확신으로 담대히 성소로 나아감으로 그분께서 속죄를 위해 제공한 방법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가 있어야 할 바로 그 장소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이다. 거기는 요한일서 1:9의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의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는 약속이 주장되는 곳이다. (172.2)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를 좋지 못한 상황으로 가게 한다. 아담과 하와는 그러모은 무화과나무 잎을 사용해 첫 번째 은폐를 시도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숨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한 일을 모두 아셨다(창 3:7~11).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가능한 빨리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이로운 일이다. 지체하는 것은 단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172.3)
 고대 이스라엘에서 범죄한 사람이 죄사함를 구할 의무가 있었던 것과 같이 제의적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은 하나님이 준비한 방법인 제사를 통해 정결하게 함을 받을 의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주신 제의적 해결책을 사용할 합당한 기회가 있기 전까지는 죄인과 부정한 사람을 벌하지 않으셨다. (1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