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미국에서도 교회와 국가 사이에 결정적인 경계선을 긋는 것은 어려웠다. 수백 년간 국가가 교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패턴이 너무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서 그것을 떨쳐내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다. 미국 독립 혁명이 수백 년의 흐름과 관행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위대한
“미국의 시도”는 교회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따라서 교회들은 그들의 활동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국가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가 그들 스스로의 재원에 의존하게 되자 사도 시대의 모델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새로운 상황은 변장된 축복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촉발된 자원하는 헌물만이 그들이 취해야 할 노선임이 분명했지만, 당시 지도자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역사도, 전통도, 과거의 경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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