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6 ►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실로 성령님의 역사였다. (58.6)
 “그렇다.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내 병이 나을 거야” (59.1)
 그렇게 결심한 여인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사람들을 헤집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들어갔다. 예수님 뒤에서 자신의 모든 믿음을 손끝에 집중시켜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눅 8:44). 아! 그녀가 품은 일촉(一觸)의 믿음이 정말로 현실이 됐다. 주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는 순간 믿었던 대로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전신에 짜릿하는 전류가 흘렀고 그런 충격으로 온몸에 뜨거운 활력이 솟아났으며 기운도 돋았다. 새로운 생명력이 교류된 것이다. 바로 그 단 한 번의 만짐으로 질병과 고통이 말끔히 떠나간 것이다. 혈루 근원이 말라 완치됐다. 지난 12년 동안 한시도 하혈이 멈추지 않았는데 지독한 병증이 완치돼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막 5:29). 아! 얼마나 감격적인 순간이었을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벅찬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막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발을 멈추신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 보시며 질문을하시는 게 아닌가! (59.2)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59.3)
 갑자기 여인의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을 했다. 율법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옷을 만짐으로 부정케 만드는 죄를 범한 것이다. 다행히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베드로가 놀란 표정으로 불만스럽게 대꾸해 줬다. (59.4)
 “주여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59.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퉁명스런 변명에 넘어가지 않으시고 정곡(正鵠)을 찌르는 말을 하였다. (59.6)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59.7)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옷깃을 스쳤지만 주님께서는 우연한 접촉과 믿음의 접촉을 구별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다. 여인은 어쩔 수 없이 이실직고(以實直告) 할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걸어 나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여인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옷을 만져 고침을 받게 된 내력을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부드러운 음조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59.8)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60.1)
 예수님께서는 무례한 행동을 나무라시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고 칭찬하며 격려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으신 것이다. 그리고 여인이 인생의 벼랑에 서서 극적으로 얻은 치유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증언하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라는 말과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는 말로 보아, 주님의 옷에 대한 미신적(述信的) 접촉에 의해 치유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그분의 치유 능력이 역사하여 완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유의 기적은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 문제와 연결되는 것임을 주지시켜 주셨다. 이제 그녀가 완치되어 정상인이 됐음이 공개적으로 알려졌다. 종교적 생활의 제약뿐 아니라 사회적 제약마저 없어지므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해진 것이다. (60.2)
 그러면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어떻게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는지 그 방법을 세밀히 분석해 보자 오늘날 똑같은 형편에 처한 자가 만일 그 방법을 자신의 생애에 적용한다면 성경의 여인처럼 분명히 신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60.3)
 첫째, 여인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神的權威)를 인정하고 그분은 능히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다. 그 당시 의술로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사경(死境)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비록 12년간이나 고생해 온 불치병이었어도 주님은 분명히 고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내 병이 나을 것이라 믿고 예수님의 뒤에서 옷자락을 만진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손끝에 집중시켜 단 한 번 만짐으로 혈루 근원이 마르고 완쾌됐다. (60.4)
 이와 같이 여인이 병의 고침을 받은 것은 다만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행위로만 된 게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한 치유의 능력을 붙잡는 믿음으로 된 것이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아무리 만져도 산 믿음 없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스쳤지만 아무런 치유의 기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잇 부인은 “병이 완쾌된 것은 예수와의 표면적인 접촉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예수의 거룩하신 능력을 붙잡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DA, 347)라고 하였으며, “그 한 번의 만짐에 여자의 일생의 믿음이 집중되었고 즉시로 여자의 고통과 쇠약함은 완전한 건강의 활력으로 바뀌었던 것이다”(DA, 344)라고 했다. (61.1)
 둘째, 여인은 믿음을 행사하였다. 오랫동안 피를 쏟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병든 몸을 가지고도 힘들게 걸어서 해변가에 계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갔다. 누구든지 치유를 받기 위해 마음속으로 믿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 여인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아가야 한다. 행하는 믿음이 주님의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행사하는 것 없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드린다 할지라도 치유의 기적은 결코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을 활용해야 주님의 치유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치유 받았다(마 14:36). 초대 교회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케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1-12). 이 모든 것도 표면적인 행위로 치유를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활용하여 주님의 치유를 체험한 것이다. (61.2)
 셋째, 그녀가 신유의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요인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끈덕진 노력이다. 그녀는 칠전팔기하는 노력을 했다. 이미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어 힘없는 그녀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사력(死方)을 다해 군중을 헤치고 주님 앞에 이르려고 기를 썼다. 일이 좌절됐지만 여인은 레위 마태의 집에까지 따라갔다. 여인은 거기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주님의 뒤에서 옷자락이라도 만지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 치유의 은혜를 입고자 하는 자들은 이 여인처럼 칠전 팔기(七願八起)하며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 또 기회를 놓쳐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61.3)
 요즈음 현대 의학을 불신하는 일부 사람들이 병원에 가지 않고 아무런 약도 사 먹지 않으며 치유를 위해 오직 기도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위험한 발상(發想)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다하면서 기도를 드려야한다. (62.1)
 몇 년 전 통영에서 목회할 때였다. 어느 날 오후 빨리 와서 치유의 기도를 해달라는 한 여집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급히 차를 몰고 달려가보니 남편이 맹장염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는 계속 배를 움켜쥐고 신음했다. 나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절감하면서 병원으로 가도록 권했다. 그러나 그는 완강히 거절하며 오직 기도하고 주님이 치유해 주시도록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덜컥 겁이 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하면서 주님의 기적을 간구해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나의 차로 부산에 있는 우리 병원으로 모시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대답은 같았다. 배가 뒤틀리며 콕콕 찌르는 아픔을 잘도 참아내고 있었다. 나는 약 2시간이나 강권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62.2)
 이튿날 아침 장거리 전화를 받았다. 부산에 있는 위생병원에서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집사님이 전화를 한 것이다. 새벽 3시경에 결국 견디다 못해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모셨다는 것이었다.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 보니 그분의 맹장은 이미 터져서 복막염으로, 의사들이 수술하다가 복막(腹膜)을 닦아 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인간의 아둔함을 다시 한 번 절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아프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동시에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62.3)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의 의사를 어느 정도 신뢰(信賴)해야 할까? 12년간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에 대해 성경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기록하여 의사에 대한 불신을 지적하고 있다. 외경 도비트서 2:9-10절에는 의사를 불신(不信)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