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사용한
“말씀”은 바로 헬라 철학의 영역에서 그 해석을 찾을 수가 있다. 위대한 헬라 철학자 플라톤(Plato, 400 B.C.)은 하나님[神]에 대한 매우 고상한 관념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실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관념을 가졌다. (플라톤의 생각대로) 위대한 신이 순수한 정신(pure mind)이고, 물질(matter)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면, 어떻게 그 위대한 신이 물질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그의 손을 더럽힐” 수 있었겠는가? 플라톤은
“말씀”이라고 부르는 인격체로 그 해답을 구했다. 플라톤이 말하는 말씀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대화를 할 만큼 위대하기도 하지만 물질적인 것들의 혼란 속에 함께할 만큼 겸손했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그는 위대한 신과 그의 피조물 사이에 있는 중간 신(an intermediate God)으로 활동했다. 후대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와 스토아 학파(Stoics)와 같은 헬라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생각을 확대하여 말씀을 영원한 존재로, 우주의 창조자요 유지자로, 그리고 인간의 모든 이성과 지성의 근원으로 간주했다. 이 모든 것이 흡사 예수에 대한 신약의 개념처럼 들린다면, 우리는 엘렌 G. 화잇이 이와 같은 위대한 이방 사상가들에게
“영감의 영”이 부여되었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화잇,
시대의 소망,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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