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긍정적 표현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B. 부정적 표현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B. 부정적 표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하지 아니하고”

 A. 긍정적 표현

 “오직 자기의 피로” (490.4)
 이 종속절들로 말미암아 주절의 신학적 내용이 매우 풍부해졌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기능을 행사하고 계시는 성소가 지상의 성소보다 엄청나게 우월하며, 그 제사장의 피 또한 마찬가지로 우월하다는 정보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는 사실에 덧붙여졌다. (490.5)
 이 단락은 그리스도께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디아)”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고 진술하지 않는다. 첫 어구의 디아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지만 디아가 주동사(“[그가] 들어가셨느니라”)와 묶여 있는 것이라면 해석적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첫번째 종속 구절에서 디아는 주절의 첫 부분 즉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으로 오[셨느니라]”와 연결되어야 한다. 전치사 디아(“through”)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사장 직무를 행하시는 데 사용하는 수단 혹은 매체를 가리킬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동일한 개념이 셋 번째 구절에서 피의 주제를 도입하는 전치사 디아의 사용에도 적용된다. 이 긴 문장이 표현하는 개념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오신 후에 제사장사역을 하시면서 더 우월한 성소와 더 우월한 그분 자신의 피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은 영원한 구속(redemption)을 확보하신 후에 하늘 성소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서의 어느 부분에서 말한 것과 완전히 부합한다. 〈새영어성경(NEB)〉은 히브리서 저자의 진정한 의도를 번역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존재하는 좋은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그분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는 장막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 즉 이 피조 세계에 속하지 않은더 크고더 완전한 것이다. 그분의 희생의 피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그분 자신의 피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그분은 단번에 그 성소에 들어가셨다.” (490.6)
 이 구절, 특별히 24절은 하늘 성소가 하늘 자체[“참하늘”]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여기에 표현된 사상은 9:11, 12에서 발견되는 것과 동일하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성소의 모델 역할을 하는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다. 원본으로서의 하늘 성소는 우월하다. 24절의 첫 부분은 부정적인 진술을 표현했다 즉 그리스도는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다. “성소”에 해당하는 헬라어 명사는 정관사가 없는 하기아이다. 수식 어구들이 그 명사를 한정시키기 때문에 관사가 필요하지 않다. 하기아는 성소의 일부(첫째 칸이나 둘째 칸)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성소를 가리킨다. 손으로 만든 성소는 “참것”과 다시 대조되며, 그리하여 하늘 성소의 실재를 강조한다(참조 8:2). (491.1)
 히브리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열등한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참하늘”(heaven itself)에 들어가셨다. 여기서 성소와 하늘이 동일시되지 않는다. 24절의 첫 부분에서 하기아는 두 성소 모두(“그림자”[copy]인 옛 것과 “참 것”인 다른 것)를 가리킨다. 히브리서 저자는 “참하늘”(하늘 자체)이라는 표현을 문체상의 이유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기아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일을 피함으로 사족을 줄이고 두 번째 논점으로 이동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성소”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생략했을 것이다. 문맥을 살펴보면, 생략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스도는 “[성소가 있는] 하늘에 들어가셨다.” 구약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소가 하늘에 있으므로 “하늘”은 하늘 자체와 하나님의 성소를 동일하게 보지 않으면서 그분의 성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이해는 이 구절에 대한 특이한 해석이 아니라 히브리서의 저자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이다. 이 견해는 또한 히브리서에서 하늘 성소를 “참것”으로 보는 이해와 부합한다. 25절에서 타 하기아는 지상 성소를 가리킨다. 그 본문은 속죄일을 다루고 있으며, 따라서 그 명사가 지성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대제사장은 성소의 두 칸 중 어느 한 칸에서만 집전하지 않고 전체 성소에서 봉사했다. 따라서 이 절에서도 타 하기아는 전체로서의 지상 성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지성소”를 가리키길 원했더라면, 9:3에서 사용한 어구(“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491.2)
 19절에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 들어갈 담력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타 하기아는 하늘 성소의 어느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지 않고 성소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거기로 들어가셨으며, 그분의 죽음에 힘입어 우리가 거기에 나아갈 수 있다. (491.3)
 20절에서 성전(temple)의 휘장은 그리스도의 육체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that is, 투트 에스틴] 그의 육체니라” “곧”은 히브리서에서 바로 앞의 명사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다(참조 히 2:14; 7:5; 9:11). 만일 여기서 그렇게 사용되었다면 투트 에스틴은 그 휘장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성소로 들어가기 위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육체(휘장)를 통과하셨음을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십자가에서 겪으신 그분의 경험에 적용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 휘장을 통과하는 것은 하늘의 영역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휘장”이란 용어는 히브리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매우 구체적이며 특정한 곳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6:19, 20; 9:3). “휘장”이 은유적이나 상징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10:20에는 전혀 없다. (491.4)
 투트 에스틴이라는 구절은 히브리서에서 바로 앞에 나오는 명사 아닌 다른 명사를 되짚어 가리키는데도 사용되었다(참조 13:15). 이런 모호함에 비추어 볼 때, 문맥상 투트 에스틴이 그 절에 나오는 다른 명사인 “길”(the way)을 되짚어 가리킬 수 있다. 그럴 경우, 휘장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그리스도의 육신, 즉 그분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이다. 그럴 경우 속격 어구인 “그의 육체[의]”(of his flesh)는 “길”과 연관된 의존의 속격일 것이다. 즉 “길 곧 그의 육체의 [길]”이 된다. 이 해석은 문법적으로나 문맥적으로 타당하며, 히브리서의 나머지 부분에서 제시된 것처럼 구체적이며 특정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들로써 하늘 성소를 이해하는 것에 부합한다. (4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