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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초기교회
 교부들은 하늘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을 상세하게 탐구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된 강조점은 그분께서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린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이었다(Origen Commentary on John 1:40 [ANF 9: 318, 319]). 아우구스티누스처럼(354년경-430년; Sermon 8. 1; 87. 1; Tractates on the Gospel of Johns 22. 5 [NPNF-1 6:284; 7:146]), 아타나시우스도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희생 및 그분께서 화목, 구속, 성화 그리고 심판의 일을 행하고 계신 하늘에서의 그분의 제사장 사역 사이의 연속성을 인식했다(Discourse Against the Arians 1. 11.41; 2. 14.7 [NPNF-1 4:330, 351]). 하지만 교회는 추가적인 중보자들, 곧 그들을 통하여 죄의 용서가 신자들에게 허락되는 중보자들을 들여왔다. 그중 가장 중요한 중보자는 사제들이었다(Origen Homily on Leviticus 2.4;Homily on 1 Corinthians 24). 거기에다 다시 하늘에 있는 성인들과 사도들의 중보가 더해졌다(Origen Exhortation to Martyrdom 30; On Prayer 11.2; Homily on Numbers 10.2). (477.1)
 하늘 성소의 실재는 사실상 교부들의 문헌에서 간과되었다. 헬라의 이원론의 영향 때문에 교부들이 하늘 성소의 실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신비적 혹은 풍유 해석 방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의미에 관하여 추측하는 경향이 있었다. 히브리서에 관한 저술을 남긴 사람들조차도 하늘의 것들을 영적인 의미로 해석했다Chrysostom Homily on Hebrews 14. 3 [NPNF-114:433]). 이레나이우스는 하나님의 성전을 신자들과 동일시한 반면(Against Heresies 5. 6. 2 [ANF 1:532]), 다른 사람들은 더 자주 그것을 교회와 동일시했다(Augustine Enchiridion 56; Methodius [d. 311] The Banquet of the Ten Virgins 5.7 [ANF 6:328]). (477.2)
 B. 중세와 종교개혁
 교부들은 중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소와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을 해석할 수 있는 기초를 놓았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은 항상 인식되긴 했지만, 대제사장으로서 그분의 중보 사역은 많은 성인(聖人)들의 사역으로 보충되는 일이 계속되었다. 이 시기 동안 여성 중보자(mediatrix)인 동정녀 마리아의 중보 사역에 대한 개념이 교회 내에서 보편화되었다. 하늘 성소를 그리스도 교회로 보는 해석이 지배적인 신학적 견해가 되었다. 중세가 시작될 때 존경받는 베데(The Venerable Bede, 673-735년경)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막에 관한 영향력 있는 책을 한 권 저술했다. 그 책은 출애굽기 24:12-30:21에 대한 풍유적인 강해였는데, 그 책에서 그는 교부 저술가들의 견해를 좇아 성막이 교회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성막은 현재의 교회를 그리고 솔로몬 성전은 미래의 교회를 대표한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여러 세기동안 성소에 대한 교회론적인 해석이 주도적인 견해로 자리 잡았다. (477.3)
 속죄의 본질이 중세기 동안 중요한 논의의 주제가 되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저술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은 안셀무스(1033년경-1109년)가 저술한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였다. 이 책은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충족시킨 우리의 대속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대한 대단히 설득력 있는설명이었다. (477.4)
 안셀무스에 대한 반작용으로 속죄의 교리에 관한 다른 견해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중에 피에르 아벨라르(Peter Abelard, 1079년경-1142년)의 속죄론인 도덕적 감화설(more influence theory)이 있다. (477.5)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과 염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과 행실의 유일한 원천인 성경으로 되돌아가라고 촉구했다. 그 결과, 마르틴 루터는 우리의 속죄하시는 희생 제물과 아버지 앞에 계신 유일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충분성(all-sufficiency)을 강조했다. 루터는 그리스도는 “한가하게 거기서 그분의 시간을 보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 죽음 그리고 마귀의 권세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말했다(Sermon 37 on John 3:23). 루터는 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기술한 성경의 내용을 재확인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되, 그분 앞에 제사장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완전히 확신할 수 있다.”라고 결론지었다(Lecture on Hebrews 9:24). 장 칼뱅(John Calvin)은 예언자, 왕 제사장이라는 그리스도의 세 직분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켰으며, 그것은 개신교 신학의 전통적인 특징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1)십자가에서의 그분의 사역(2)하늘 성소 곧 아버지 앞에서 행하시는 그분의 중보. 칼뱅은 이 중보 사역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죽음을 끊임없이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죄를 전가시키지 않으시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이르러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여기시기 때문이다”(Commentary on John 2.1). 칼뱅은 하늘 성소를 언급하는 데 히브리서의 표현들을 사용했지만, 루터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의 첫째 칸인 성소(holy place)는 전투 중인 교회를 상징하고 지성소는 승리한 교회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이해한 것같다(Lectures on Hebrews 9.2). (477.6)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들은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John Owen)은 그의〈히브리서 강해(Expositions on Hebrews [1668-1880])〉에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재적인 중보는∙∙∙우리의 기본적인 신조이며 교회의 위로의 주요한 기초이다”(on Heb. 7:23-25). 그분이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실제로 적용하는 일은 그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것및 그 나타남에 동반되는 중보에 달려 있다”(on Heb. 9:24)라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479.1)
 청교도 저술가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히브리서와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 봉사의 표상학적 성격에 기초했다 “하늘 성소의 존재 그 자체는 청교도 성직자들 가운데서는 표준적인 신학이었다.”(Ball 109). 이 하늘 성소는 모세에게 보인 모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생제도와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전체를 묘사하고 가리켰다고 오웬은 기록했다(Expositions on Hebrews 8.5). (479.2)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은 특히 죄의 용서, 하나님께 나아감, 구원의 확신, 영적 능력 그리고 영광스러운 소망을 신자들에게 제공하였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 어떤 다른 중보자가 끼어드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데이비드 딕슨(David Dickson)에 따르면, 어딘가 다른곳에서 도움을 얻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이다(Ball 117). 어떤 사람들은 속죄일의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그 의식이 매일의 봉사 이후에 발생했다는 것, 말하자면 그 의식의 배경이 구원의 배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희생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후에 그분의 제사장 직무를 시작하셨다. 청교도 저술가들은 속죄일이 사법적인 의의와 아울러 재판과 관련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그날 백성들은 축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심판을 받았다. 청교도 사상가들은 매일의 봉사와 속죄일의 연례 봉사의 표상학적 성취 사이에 아무런 연대적 구분을 하지 않았다(Ball 115). (479.3)
 C. 현대
 현대의 학자들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들을 해석할 때 역사주의 접근법을 배척한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닌 속죄적 의의는 인정하지만, 하늘 성소에서 수행되는 그분의 대제사장 중보는 계속 소홀히 취급한다.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에 제시된 하늘 성소의 실재를 특정 장소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이미지로 간주한다(Guthrie 196). 다른 학자들은 그것을 그저 상징적인 시어(Hanger 117)로 또는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신자 각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간주한다(Stedman 996-998). (479.4)
 D. 재림교회의 이해
 19세기 동안 북미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이 부흥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사람은 윌리엄 밀러(1782-1849년)였다. 그는 다니엘서의 예언들을 연구하면서 다니엘 8:14절의 “성소의 정결”이 그리스도의 재림(죄로부터 지구를 정결케 하는 일)을 가리키며, 2,300년은 1843/1844에 끝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1844년 10월 22일에 오실 것이라고 확정했다. 이 예언이 실패로 돌아가자 대실망이 초래되었다. (480.1)
 밀러주의자들 중 일부는 실망의 이유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2,300일/년의 연대를 세심하게 조사한 후, 그 연대가 올바르며 실수는 그날 발생할 사건의 성격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이럼 에드슨(Hiram Edson)은 2,300년의 끝에 그리스도가 이 땅으로 돌아오시기 전 한가지 특별한 일을 행하기 위해 지성소로 들어가셨다고 제시했다. 오웬 R. L. 크로지어(Owen R.L. Crosier)는 히브리서와 아울러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를 연구하여 이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하나는 지상에, 다른 하나는 하늘에, 이렇게 두 가지 성소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다니엘 8:14은 하늘 성소와 그곳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무를 정의하려고 시도하면서, 그 직무는 두 국면이있다고 지적하였다. 즉 한 국면은 승천 때에 시작했는데, 성소에서 행하는 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국면은 1844년에 시작하는데, 지성소에서 행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소 봉사에서 행한 대제사장 직무의 표상학적 성취였다. 원형적 속죄일은 1844년으로부터 구원 역사가 완결되는 천년기의 끝까지의 기간이었다. 죄를 위한 희생은 십자가에서 드려졌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중보는 그분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회개하는 죄인들의 죄를 속했다.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는 공개적인 반역으로 말미암아 모독되고 죄의 자복을 통하여 오염되었다. 자복을 통한 오염은 죄가 희생 제물에게로 옮겨지고 그 피를 통해 성소로 옮겨졌을 때 발생했다. 하늘 성소는 하나님의 종들의 자복된 죄들을 통해 오염되었다고 결론지었다. (480.2)
 지상 성소의 지성소에 대한 연구는 재림신자들로 하여금 십계명이 안치된 언약궤를 연구하도록 이끌었다. 하이럼 에드슨, E. G. 화잇, O. R. L. 크로지어의 영향 아래서, 성소의 제사제도, 십계명 그리고 안식일 사이의 관계가 확립되었다. 그 결과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Sabbatarian Adventists) 그룹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성소에 대한 연구는 최종 심판에 대해 더 잘이해할수 있게 해 주었다. 조셉 베이츠는 다니엘 7장의 심판 장면과 요한계시록 14:6의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1844년 이후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언급이라고 제시했다. 이런 개념은, 다른 사람들, 특히 제임스 화잇에 의해 발전되었다. 하늘 성소의 정결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조사심판을 포함하며, 이어서 악인들에 대한 심판 및 레위기 16장의 아사셀이란 존재로 대표된 사탄의 최종적인 제거가 이어진다고 결론지어졌다(Damsteegt 85-92; Maxwell 119-157). 다니엘 7장8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14:6-12 사이의 관계는 초기 재림교인들에게 세상에 대한 사명감, 즉 예언적으로 세 천사의 기별로 대표된 사명 의식을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교리에는 체험적인 차원도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일을 행하고 계시는 동안, 지상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의 일을 통하여 그들의 삶에서 죄를 정결케 해야 하였다. (480.3)
 성경적 증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재림신자들은 속죄의 신학적 정의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의 장(場)으로서의 십자가뿐 아니라 하늘 성소에서의 그분의 제사장 사역도 포함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재림 전 심판(pre-Advent judgment)으로도 일컬어지는 조사심판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가다듬어 그 심판이 하나님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죄인들을 다루시면서 그분의 공의와 의를 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는” 한편, 그와 동시에 “조사심판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사랑과 충성의 계시이다”(Heppenstall 209, 216). (480.4)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에 대한 재림교회의 이해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해와 사뭇 다르다. 재림교회 내에도 앨비언 폭스 밸린저(Albion Fox Ballenger, 1861-1921년), W. W. 플레처(W. W. Fletcher, 1879-1947년), 루이 리처드 콘라디(Louis Richard Conradi, 1856-1939년), E. B. 존스(E. B. Jones, fl. 1919-1949년) 그리고 1980년대에는 데스먼드 포드(Desmond Ford) 등과 같은 반대자들이 있었다. 그즈음에 대총회는 이들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들에 대한 재림교회의 이해를 재조사하는 임무가 부여된 다니엘과 요한계시록 위원회(Daniel and Revelation Committee)를 발족시키고 있었다. 그 위원회의 일은 범위가 방대했지만, 거기에는 포드(Ford)가 제기한 문제들도 포함되었다. 그 질문들은 계속해서 교인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주제에 관한 인기 있는 책들의 발행과 판매가 그 증거이다. 어떤 필자들은 성소 봉사 의식의 거의 모든 세부 사항의 상징을 크게 강조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 봉사들의 표상학적 의미에 집중한다. (481.1)
 다니엘 8:14과 아울러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교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역사적인 정체성을 제공해 준다. 재림교인들은 그들의 운동을 역사적인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사에 특별하게 개입하신 결과로 본다. 1844년에 일어난 다니엘 8:14의 성취는 세상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한다. 그리스도의 하늘 사역의 개시가 갓 태동한 초기교회에 성령의 부어지심과 동시에 일어났던 것처럼(행 2:33), 원형적 속죄일의 시작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탄생과 동시에 일어났다.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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