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6. 세 입구 휘장 (나의 모든 길은 그리스도의 것임)
 자색은 두 가지, 색깔—두 성질—곧 붉은 색과 푸른 색을 여러 가지 비율로 혼합시킴으로 생긴다. 그것은 농도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데, 색소 첨가의 비율에 따라 푸른 색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붉은 색으로 되곤 한다. 성경 시대의 예술가들은 산 생물들을 으깨어서 이 색깔을 위한 원료를 얻었다. “이 조개(murex)들로부터 취한 염료는 조개의 피가 아니고 모든 달팽이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선(腺)에서 나온 끈적끈적한 분비물이다. 이 분비물이 처음에는 붉거나 보랏빛이 아니고 희끄므레하다. 그러나 햇빛에 노출되면 사진의 표면처럼 색깔이 나기 시작하고, 노란색과 초록색 그늘이 지나간 후 붉은 색과 보랏빛의 혼합으로 된 자색으로 정착된다. 그리하여 때때로 푸른 색조 혹은 붉은 색조를 더 많이 갖게 되는 이 혼합색은 지울 수 없게 된다”(SDABD, 894, 895 참조). 이 두로인(Tyrian)의 염료는 수많은 이 생물의 죽음의 대가로 얻어졌다. (80.4)
 자색은 왕에게 보편화되었다. 바벨론(단 5:7 난외주)과 페르시아(에 8:15 난외주)의 왕들, 그리고 오래 전의 미디안(삿 8:26)왕들은 이 색깔이 그들의 중요한 지위를 높여 준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비유에서 부자의 부와 중요한 위치를 청중들에게 인상 깊게 해주시고자 그 사람을 자주옷으로 입히셨다(눅 16:19). 유대인의 왕이라는 구주의 주장에 대한 조롱으로 로마의 군병들은 그분의 어깨 위에 자주색의 낡은 겉옷을 비웃음조로 던졌다(요 19:2). (80.5)
 자색은 우리의 충성된 대제사장에 대해서 말해 주는데 그분께서 당신의 봉사에서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자기의 뜻으로 삼으신 그 순종의 청색은 희생을 통하여 흘려진 그분의 인성의 피의 심홍색과 혼합되어 있다. 그분은 왕들 중 가장 “청색의 피를 가지신” 분이셨지만 타락한 인간의 피를 취하기 위하여 몸을 굽히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히 4:15)한 종들 중 가장 비천한 자가 되셨다. (81.1)
 우리의 타락한 상태를 경험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온갖 어려움을 이해하신다. 바울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시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고 부언했다(히 2:14~18). (81.2)
 그리스도는 하나 안에 두 본성을 지니신다. 당신의 완전한 순종의 거룩한 생애를 타락한 인성의 본성과 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속죄의 죽음으로 당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 주님께서는 충성된 인간 제사장의 자색옷을 입고 당신의 하늘 성소에 있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죄인들을 위해 중보할 자격을 얻으셨다(히 7:25~28). 자색은, 그분의 파열된 심장의 심홍색으로 칙칙하게 변색된 그분의 하늘 본성의 청색과, 죽을 수밖에 없는 인성에 눌렸지만 우리의 제사장이 되신 왕 안에서 승리를 거둔 신성의 푸른색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81.3)
 황금의 섬광
 노랑색은 성소에서 참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황금(시 68:13)의 색깔이다. 금은 역사의 시초부터 세상의 부를 평가하는(약 2:1, 5; 벧전 1:7)기준이 되어 왔다. 이와 같은 세상의 기준과는 반대로 바울은 하늘 나라에서의 가치는 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있는 것이라고 상기시켰다. 왜냐하면 “믿음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도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약 2:5)하신다고 기록함으로써 의견을 같이한다(3T, 254). (81.4)
 노랑색은 밤의 그늘을 쫓아내는 새벽의 광채와 함께 작열한다. 이 황금빛은 힘있게 떠오르는 태양 광선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지상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애를 밝혀 주는 의의 태양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라오디게아인 들에게 그처럼 절실하게 필요했던 금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하는 믿음을 상징한다(실물교훈, 158; 시대의 소망, 280, 영문). 그리고 하늘의 상인은 이것을 “돈 없이 값 없이” 팔고자 열망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만족을 주는 이 진리를 욥에게 가리켰다. “전능자(shaddai)가 네 보배가 되시며”(욥 22:25). (81.5)
 금은 성막의 휘장들과 대제사장의 흉패에서는 물론이요, 성막의 벽과 기둥들과 그 기구들에서부터 눈에 띄게 번쩍인다. 금의 박편(薄片)을 마련하기 위하여 대장장이의 망치는 그 금속을 수없이 때린다. 금의 얇은 판들은 두께운 가죽 사이에 놓여지고 아주 얇아질때까지 계속해서 망치질을 당한다. (81.6)
 이 금 박편은 준비된 목재 표면에 밀착되어 단단한 금속의 모양을 갖게 될 때까지 광택을 내게 된다. (82.1)
 금실을 만드는 방법
 영감의 말씀은 황금 천(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 우리가 궁금해하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이 기록은 믿음의 성장에 대한 하나의 비유이다. “금을 얇게 쳐서 오려서 실을 만들어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에 섞어 공교히 짜고”(출 39:3). “그리고”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에 유의하라[영어 성경에는 3절 안에 “그리고”(and)가 다 섯번이나 들어있음 - 역자 주]. 이런 말의 표현을 폴리신더턴(polysyndeton, 글 가운데 접속사를 많이 되풀이해서 쓰기) 혹은 many ands라 하며, 그것은 매 항목이 개별적으로 금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이것은 금 철사를 생산하기 위한 일반적 방법은 아니었다. 보통의 기법은 매우 단단한 돌에 뚫린 직경이 점점 작아지는 가느다란 구멍을 통하여 가느다란 막대 금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금의 유연성 때문에 수백 야드 길이의 고운 철사가 작은 금괴로부터 나올 수 있게 된다. 왜 하나님은 브사렐에게 이 일반적인 방법을 무시한 다른 방법을 사용하도록 요구하셨는가? 그 분께서는 훨씬 더 힘든 기술을 요구하심으로 하나의 교훈을 주시기를 원하셨던가? (82.2)
 평평하게 된 금판은 얇아질 때까지 가죽 조각들 사이에서 망치질을 당했지만 금박편을 위한 것처럼 얇아지기까지는 안했다. 그리고 그것은 가위로 매우 길고 좁다란 조각들로 잘리워졌다. 장색은 이것을 둥근 조각의 가장자리에서 시작하여 중심을 향하여 돌고 돌아가며 일을 했다. 이 금 띠는 잡아당겨졌고 똑바로 펴졌다. 그 다음에는 사용될 수 있는 한 가닥의 실이 되도록 끝과 끝이 결합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금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가? 말씀의 망치에 의해 꼴 지워지도록 연타를 당하고(렘 23:29), 성령에 의해 지배된 환경의 가위에 잘려지고, 생애의 시련을 사용한 거룩한 장색에 의해 최대한으로까지 펴지고, 마침내 수석 직조공에 의해 품성을 나타내는 그분의 직물 설계대로 짜여진다. (82.3)
 성경의 승리자들의 초상 화랑에 모여진 성도들을 관찰해 보라(히브리 11장).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순결한 믿음의 끊어지지 않는 완전한 한가닥의 실임을 보여주는가? 에녹도 그의 아들을 낳은 후에 은혜 가운데 자라났다. 엘리야의 믿음은 갈멜산의 높이 만큼 높아졌고 바알의 제사장과 선지자 850인을 이겼지만 한 분노한 여인의 위협 앞에 생명을 구하고자 공포에 싸여 도망할 때 꺾이고 말았다. 하루는 그가 승리에 도취된 기도로 하늘 문을 강습했지만 그 다음날은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승천한 이 두 성도의 믿음은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의 믿음은 브사렐의 능란한 손에 들린 금이 조각 조각 연결되는 것처럼 자라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믿음이 자라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 우리의 대제사장은, “내가 너(단수 지시대명사는 그분께서 개인들을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을 의미함)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눅 22:31, 32)라고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약속하신다. (82.4)
 우리의 믿음은 베드로의 믿음처럼 휘어질 수 있다. 그것은 심각한 약점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믿음처럼, 구주의 기도에 의해 지탱되기만 하면 그것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장인의 망치를 맞고, 그의 가위에 잘려지고, 조각 조각으로 이루어졌다가 품성의 옷으로 짜여지기 위한 믿음과 사랑의 연속적인 한가닥 실이 되어가는 황금 실의 계도이다. 황금색은 믿음과 사랑의 하늘 선물을 통하여 계발된 부와 왕의 색깔이다. (83.1)
 녹색의 이중 가계(二重家系)
 미술가들은 청(靑)과 황(黃)을 여러 가지 비율로 혼합시킴으로 녹색을 만든다. 녹색은 하나님이 창조 때 지상을 옷 입힌 색깔이다(창 1:11, 29). 그것은 일반적으로 돋아나는 생명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사막에 있는 푸른 오아시스는 언제나 물 가까이에서 발견되고(사 41:17~20), 선한 목자께서는 당신의 양떼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시 23:2). 구주께서는 의인은 “늙어도 ∙∙∙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겠다고 약속한다(시 92:14). 시편 기자는 주님의 축복으로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같이 될 전망을 보고 기뻐했다(시 52:8). 녹색은 이와같이 왕성한 성장과 싱그러운 희망을 시사한다. (83.2)
 엘렌 화잇은 그에게 계속적인 감명을 남긴 한 꿈을 이야기한다. 한 천사가 그에게 “돌돌 잘게 감겨진 녹색 줄을 주었다. 그는 내게 이것을 나의 마음에 넣어 두었다가 예수님을 보고 싶거든 그걸 꺼내어 끝까지 풀라고 일러 주었다. 그는 나에게 그것을 오랫동안 감아 둔 채로 두지 말라고 경고해 주었는데 그것은 그렇게 하면 줄이 꼬여서 풀기가 곤란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줄을 가슴에 품고 주님을 찬양하며 또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찾을 수 있는 곳을 이야기해 주면서 기쁨으로 가득 차서 좁은 층계를 내려왔다. 이 꿈은 내게 희망을 주었다. 녹색줄은 내 마음의 믿음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어두웠던 영혼에 다시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단순성과 아름다움이 번져 오기 시작하였다”(초기문집, 81). 곡식의 선녹색 싹이 겨울 죽음의 잠 후에 태양을 향하여 터져나올 때 농부의 희망이 살아나는 것처럼 이 녹색줄은 엘렌의 마음속에 희망을 일깨우고 믿음을 강하게 했다. 황옥 바퀴의 녹색이 그발 강가에서 괴로워하는 선지자에게 한 일을 이룬 것처럼(겔 1:16) 감겨진 줄의 녹색은 포틀랜드의 낙담한 여선지자의 경험에 요긴한 역할을 했다. (83.3)
 순종의 푸른 색이 믿음과 사랑의 황금색과 배합할 때 생기는 희망의 녹색을 생각해 보라. 영속적인 희생 제물의 놋 제단과 끊임없는 정결의 물두멍은 여러세기 동안의 사용으로 차츰 선녹색 동록(銅線)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예증은 중세 유럽 사원들의 놋 지붕에서 볼 수 있다. 새로 창조된 땅을 묘사하면서 엘렌 화잇은 그 풀이 “생생한 녹색이었고 ∙∙∙ 은빛과 금빛을 반사하였다”(초기문집, 18)고 기록했다. (83.4)
 예배자가 성소 뜰에 들어가면 이 녹색은 믿음과 희망을 낳는 데 있어서 일익을 담당했다. 그가 이 선록색 예배의 중심지를 쳐다볼 때, 제단은 어느 날 영원한 죽음에서 그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 대신 돌아가실 분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고, 물두멍은 그의 주의를 그의 영혼을 정결케 해주기 위하여 메시야께서 열어줄 샘으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그의 찬양은 하늘에 상달된다. (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