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2 부 성막 뜰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책으로부터의 자유) 6. 세 입구 휘장 (나의 모든 길은 그리스도의 것임)
 “변함없는 산들은 당신의 능력을 말해 준다. 햇빛을 받으며 푸른 깃발들을 나부끼는 나무들과 섬세한 미모를 자랑하는 꽃들은 저들의 창조주를 가리켜 준다. 누런 땅덩어리를 덮은 살아 있는 푸른 잔디는 지극히 비천한 미물의 피조물까지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관심을 말해 주고 있다. 바다의 동굴들과 땅의 깊은 수렁들은 하나님의 보화를 드러내고 있다. 바다 속에 진주를 깔아 놓으시고 바위 틈에 자수정과 귀감람석(貴橄積石)을 박아 두신 분은 미(美)의 애호가이시다.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생명과 빛이 되시는 당신을 상징하고 있다. 지구를 단장하고 하늘을 빛나게 하는 모든 광명과 아름다움은 하나님께 대하여 말하고 있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45). 그리고 이 찬양은 화려한 성소에 대해서도 풍성하게 발해질 수 있다. (75.1)
 금과 은 기구들과, 순백과 무지개 색깔로 된 무늬 놓은 두꺼운 천들로 당신의 성소를 꾸미는 주님의 목적은 오로지 눈을 즐겁게 하고 감각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색깔로 그분의 기별을 나타내고, 하늘 주제들의 여러 측면들을 강조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75.2)
 성소에 나타난 미는 경배에 도움이 된다
 이런 아름다움을 염두에 두고 다윗은 노래했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에서” 혹은 “그분의 영광스런 성소 안에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시 29:2 난외 주:9, 96:6~9 난외주, 28:2 난외주, 110:3; 대상 16:29; 대하 20:21). 번역자들이 사용한 표현의 다양성에 의하여 드러났듯이, 이 표현의 의미는 겉에 드러나 있지 않다. “아름다움”(hadar)으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그의 옷으로 단장한”(사 63:1 난외주), “제복” 혹은 “의복의 장식”(시 110:3; 104:1~3; 겔 16:10~14), 화려, 장려, 위엄 혹은 “아름답고 상징적인 환경”(대상 16:27~29; 사 5:14)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성소 봉사자들의 화려한 옷을 포함하여 성소와 그 기구들의 시각적 분위기를 묘사한다. (75.3)
 “거룩함”(qodesh)은 때때로 “성소”로 번역되었다. 아마도 이 표현으로 다윗이 염두에 둔 것은 “성소의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의 궁전으로 말미암아 생긴 환경과 분위기를 기뻐했다. 그의 감정은 그의 눈에 끌린 매력으로 말미암아 고조되었다. 그의 후각은 향 냄새로 즐거워졌다. 그리고 그의 귀는 레위인 찬양대의 음악으로 황홀해졌다. 다윗은 예배를 위한 노래와 음악을 작곡하고 불렀으며, 그 연주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는”(시 22:3)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다. (75.4)
 “성소 안에 나타난 영광스러운 광경은 말로써 묘사할 수 없었다. 황금 촛대에서 비치는 빛을 반사하는 순금으로 입혀진 벽들과, 찬란한 천사들을 훌륭하게 수놓은 빛나는 커튼의 찬란한 색조, 금 빛으로 번쩍이는 떡상과 향단, 둘째 휘장 너머의 거룩한 법궤와 신비한 그룹들, 그 위의 쉐키나 곧 여호와의 임재의 가시적(可視的) 현현(顯現), 이 모든 것은 인간의 구속을 위한 사업의 중심이 되는 하늘에 있는 성전의 영광들의 희미한 반영에 지나지 않았다”(부조와 선지자, 349). (75.5)
 이 미학적(美學的)환경은 히브리인들의 예배 장면의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성소와 관련된 모든 것이 당신의 백성들에게 경외와 숭경의 정신을 일으키도록 계획하셨다. 그분의 목적은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그것들이 상징해 준 하늘의 실체들을 명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76.1)
 성소는 나타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시편 기자가 황금 벽들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희미하게 빛나는 성막의 은빛 토대, 성막의 화려한 커튼과 번쩍이는 기구들, 금빛 관을 쓰고, 보석으로 빛나는 눈부신 제복을 입은 대제사장의 지도 아래 봉사하는 흰옷 입은 제사장들, 온 진영에 퍼져서 제물이 타는 냄새를 흩어버리는 향 냄새와 함께 제단 위에서 불타는 엄숙한 제물들을 명상할 때 그의 마음은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나타내는 찬양대의 노래에 매혹되었고, 그의 정신은 고양되었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측면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안한 이 아름다운 인공물들 가운데서 왕의 심령은 신성의 엄위하심과 구원의 계획의 놀라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 29:9)라고 부르짖은 것처럼 그의 마음은 하늘로 향하여 들려졌고 그의 심령은 숭경의 마음으로 부풀었다. (76.2)
 오직 이런 명상을 통해서만 인류는 여호와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서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76.3)
 하나님이 성막에 넣어 두신 아름답고 영감적인 것들은 그것들을 설계하신 대 건축가를 알 수 있도록 경건한 자들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세심하게 “만들어졌다”(출 25:8). 그리하여 예배자는 그 분을 찬양하는 마음의 자세를 이루게 되었다. “만들어진 이 빛나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 역시 달리는 알 수 없는 신성의 측면들을 깨달을 수 있다(롬 1:19, 20). 이 결론에 대한 몇몇 영감의 증거들을 숙고해 보자. (76.4)
 색깔의 역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날아가는 당신의 보좌에 관한 하나의 매력적인 이상(異緣)을 허락하셨다(겔 1:4~28). 선지자는 “그 형상과 구조는 ∙∙∙ 황옥 같고” (겔 1:16)라고 기록했다. 이 색깔의 역할이 그의 생각을 자극할 것이었다. 그가 말한 보석은 우리의 마음을 대제사장의 흉패로 향하게 한다. 흉패에 배열된 이 보석들에 나타나 있는 빛과 광채를 관찰할 때 지각 있는 사람은, 그것들이 “그 속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말로써 할 수 없는 것을 그 색깔들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George Elliot, The spanish Gypsy, Book I, Sectin 2, 1). 성소의 색깔에 대한 이 주의 깊은 계획에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 기별이 올바로 이해되면 이 색채와 색조는 말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관념을 더욱 깊이 파악하게 해준다. (76.5)
 성소에 사용된 색깔, 즉 빨강(심홍색, 주홍색), 노랑(황금색), 청색은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이 원색소를 여러 가지 비율로 혼합함으로써 눈이 식별할 수 있는 모든 색채와 색조가 생성될 수 있다. 흰색(은빛)은 때때로 눈에 띄이지만 검은 색은 드물다. (76.6)
 이 색깔들은 성막의 모든 부분의 상징적 봉사를 높여 준다. 우리가 그것들을 연구함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는, 이 색깔들을 올바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시옵소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77.1)
 흰 색깔의 상징적인 의미
 빛의 본질인 흰색은 모든 색깔의 연합으로 이루어진다. 성경은 흰색을 덕과 의, 동정(童貞)의 순결과 성직자의 고결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흰색은 인간적 노력이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순결로 빛나는 비교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진 예수님의 완전한 성품을 말한다. 당신의 세 제자에게 축소된 그분의 영광의 왕국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구주께서는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마 17:2). 영감은 여기서 흰옷을 빛과 연결시킨다. 옷은 외형적이요 가시적(可視的)인 행동을 나타낸다(슥 3:3~5; 사 64:6).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6:16)고 가르치셨다(막 9:3; 마 17:2; 눅 9:29 참조). 영광중에 있는 성도들을 묘사하면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손에 있는 종려가지는 승리를 표상하고, 흰옷은 지금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를 상징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65). (77.2)
 눈처럼 흰 성도들의 혼수감(계 19:8)은 일차적으로 구주이신 신랑의 의를 나타내고, 이차적으로 그분의 교회인 신부가 그의 남편을 바라봄으로 그분과 같이 자라날 수 있다(고후 3:18)는 아버지의 보증을 나타낸다. 프란츠 델리취는 구원의 계도(系圖)를 통하여 “흰 색은 은혜의 길에서 최종적으로 얻은 빛의 승리와 개가를 나타낸다”고 보았다(Franz Delitzsch, Iris : Studies in Color, 28). 언약의 무지개에 있는 모든 색깔은 세상의 흰 빛되신 분의 마음 안에 깊이 새겨져 있다. (77.3)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홍” 같은 죄를 정결케 하여 그들의 품상을 “양털 같이 희게”(사 1:18)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의 안내자는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에 은혜로 “정결케” 된 자들은 “희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단 12:10). 이것은 당신의 아들의 혼인 잔치에 온 손님은 물론이요, 신부를 위하여 아버지가 제공한 흰옷을 입은 승리자들을 나타낸다(마 22:11~14; 계 3:5, 18; 4:4; 6:11; 7:9, 13; 15:6). 이 옷의 근원은 예수님 자신의 품성이다(계 19:8, 14) (77.4)
 “표백하는 자의 잿물”(말 3:2)로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극심한 시련의 연단을 말해주는 한편 “어린양의 피”는 죄악적인 기질을 씻는 용제(溶劑)이다. 성경 시대에는 이 일 다음에 희게 표백하는 일이 있었다. 옷감은 태양에 노출시킴으로 “희게 되었다”(leukaino). 성도는 그의 생애의 비밀을 씻기 위하여 의의 태양의 밝은 광선을 받아들임으로써 희게 된다. (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