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이나 겨울에 도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마태복음 24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하는 일이 안식일이나 겨울에 발생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충고하셨다. 케스티우스 갈루스(Cestius Gallus)는 기원 후 66년 11월에 군대를 예루살렘으로부터 철군시켰다. 예루살렘의 11월은 통례상 그렇게 춥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겨울에 도망할 필요가 없었다. (45.1)
 안식일에 관한 그리스도의 관심은 매우 교훈적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도망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라고 충고하신 사실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30여 년이 되는 기원 후 66년에도 안식일이 계속 존립할 것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폐하지 않으셨다. 그는 산상 설교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고 하셨다. (45.2)
 2.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징조에 대한 짤막한 목록을 열거하신 다음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4)고 말씀하셨다. (45.3)
 예수님은 이 말씀이 심각히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셨다. 그분의 기록된 봉사 기간 중에 오직 “세 차례에 한하여 천지가 없어진다”는 표현을 사용하셨다. 이 중에 두 번은 십계명이 오래 존속할 것이란 점은 강조할 때 사용했으며(마 5:17, 18; 눅 16:17), 마지막 한 차례는 바로 “이 세대”에 대한 자신의 예언을 강조하면서 사용하셨다. (45.4)
 성경 주석가들이 “이 세대”란 용어의 해석을 둘러싸고 내놓은 대답은 그 수가 부지기 수에 달한다. 그러나, 크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1) 세대란 시기의 일정 기간이다.

 (2) 세대란 백성의 한 부류(部類)이다. (45.5)
 일정 기간으로서의 세대
 첫번째 식으로 이해한다면 마태복음 24장 34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징조들이 나타난 이후에 남아 있는 기간이 매우 짧아서 그 징조들을 본 사람들은 죽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게될 것이라는 뜻이 된다. 또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 36절에서 “이 세대”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신 예언은 예언과 그 성취의 사이가 매우 짧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그 끔찍한 사건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란 뜻이 된다. (45.6)
 백성의 한 부류로서의 세대
 놀랄지 모르지만 성경에는 세대린 표현이 백성의 한 부류를 지칭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세대:generation)이요”(시 24:6)라든지 “정직자의 후대(세대:generation)가 복이 있으리로다”(시 112:2)의 경우가 그 한 예이다. 위에서 언급된 세대(족속, 후대)는 모두 선한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한편 누가복음 16장 8절에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 시대”(generation), 즉 자기들같은 악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는 죄인들이 성도들보다 더 지혜가 있다고 하셨다. 또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해 말씀하셨다(마 12:39). (45.7)
 또 회개치 않는 “세대”(마 12:41)와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세대”에 대해 말씀하셨다(마 12:42). (46.1)
 결론
 위의 두 해석 중에서 두번째 해석이 더 개연성이 높고 이치에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가 예언을 한 기원 후 31년과,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기원 후 70년은 불과 39년의 간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은 것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의 예언을 들은 책임 있는 어른들 중에 그 예언의 성취를 죽기 전에 목격할 수 있었던 사람은 불과 몇 안 되었을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천연계에 재림의 징조가 나타났는데 이것들을 목격한 자 중에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요한계시록 6, 7장을 참고하라). (46.2)
 따라서, 마태복음 23장 36절24장 34, 35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예수님의 세월이 갈수록 세상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림의 날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 반역적인 생활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역적인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다(딤후 3:1~9; 계 16:9). (46.3)
 한 가지 남는 가능성은 예수님이 “세대”란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 그는 자신도 그 구성원의 하나인 유대 인종을 뜻하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예수님이 뜻하신 바는 유대 민족이 비록 예루살렘의 멸망과 중세의 유대인 학살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등 숱한 재난을 겪으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별반 바꾸지 않은 채 세상 끝날까지 존속할 것이라는 사실이 될 것이다. 하나의 독특한 민족 또는 “세대”로서의 유대민족의 존속은 실로 인류 역사상 주목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46.4)
 3. 예수님은 오늘 밤에 오시는가?
 복음 가수들의 노래에 “그분이 오늘 밤에 오신다해도 그대의 심령은 온전하겠는가?”라는 구절이 흔히 나타난다. (46.5)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다. 우리는 오늘 밤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오늘 밤에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예수님이 “모든 민족”이란 표현을 무슨 뜻으로 사용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46.6)
 여기서 민족이라고 번역한 영어 단어 네이션(nation)을, 북미인들은 흔히 국경이 있고 중앙 정부가 있는 정치적인 사회 곧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미국안에도 수많은 네이션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유럽에서도 유고슬라비아같은 나라는 여러 인종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모두 네이션인 것이다. (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