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막 3: 1-6, 참조: 마 12: 9-12, 눅 6: 6-11
 갈릴리 분봉왕 헤롯 시대의 수도(首都)는 성경에 지명이 언급된 바 없는 세포리스(Sepphoris)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당대에 갈릴리 중심 도시로 화려하게 치장된 아주 번화한 도시였다.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시골 나사렛에 사셨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분이 도시에 관한 지식을 세포리스에서 습득하셨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이곳을 고고학적으로 발굴하여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청년시절에 세포리스에 자주 가셨기 때문에 도시의 생활상 세리들의 형편,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생활상에 대해 정통하신 것이다. 오늘날 세포리스에는 4,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의 유적을 비롯하여 공중 목욕탕 체육 경기장, 수로 등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40.1)
 세포리스에 한 석공(石工)이 살고 있었다. 그는 돌을 깎거나 다듬는 일에 종사하여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 성실하게 일하고 참되게 살아가고자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오른손이 위축되면서 저리고 서서히 마비되는 것이 아닌가! 일손을 멈추고 손을 주무르고 흔들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저린 것을 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무리 주무르고 문질러도 손은 점점 핏기와 수분이 없어지면서 회복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니 결국 오른손은 쓸 수 없을 정도로 마비돼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이 의원 저 의원으로 가 보았으나 그 당시 어떠한 의술(醫術)로도 고칠 수 없다는 선고만 받았다. 오른손은 말라비틀어지고 힘없는 왼손만으로 어떻게 석공의 일을 한단 말인가! 마른손을 내려다보는 석공은 자꾸 “후유 후유” 한숨만 내쉬며 점점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갔다. 손을 쓰지 못하면 결국 빌어먹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장래 가 암담하였다. (40.2)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석공은 예수님의 일행이 세포리스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온갖 불치병과 난치병을 간단하게 고치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41.1)
 “옳지 나도 그분에게 내 손을 치유해 달라고 부탁해야지 그분은 분명히 메시야인 모양이야” (41.2)
 그 순간 마음에 메시야에 대한 에언이 떠올랐다. (41.3)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마11:5). (41.4)
 바로 그런 일이 예수님에 의해 일어나고 있으니 그분은 틀림없는 메시야라고 믿고 확신했었다. 이리하여 석공은 치유의 소망을 안고 예수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군중이 너무나 많아 그분께 접근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대면하여 치유를 부탁할 수 있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면 거기서 반드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석공은 안식일 아침 일찌감치 회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니나다를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오셨던 것이다. 유대인의 법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이 마른 환자는 주위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손을 치유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결코 놓칠 수가 없어서 용감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 간청했다.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하는 행동이었다. 경전에 들지 못한 “묵시록 복음서”(Apocryphal Gospel)에 보면 석공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한다. (41.5)
 “예수님, 나는 손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석공입니다. 청컨대 나의 손을 회복시켜 주시사 나로 하여금 양식을 빌어먹는 수치를 면케 하여 주옵소서.” (42.1)
 석공은 일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자 주님께 치유를 간청했다. 석공의 말라 비틀어진 오른손을 내려다보신 주님은 그런 손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가기란 심히 어려울 것이라 판단돼 마음이 아주 측은해지셨다. 동정심 많은 주님께서는 불쌍한 자를 보실 때마다 항상 연민의 정을 억제할 수 없으시다. 그 당시 손 마른 병은 비록 불치병이었으나 주님께서는 간단히 고쳐 주실 수 있는 것이었다 (42.2)
 한편, 회당에서 주님의 행동을 예의 주시(銳意注視)하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눈이 석공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에 집중됐다. 예수님께서 소문대로 과연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아니 고치시는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만일 석공의 손을 고쳐 주신다면 안식일을 범한 것으로 예수님을 고소(告訴)할 참이었다. 그들의 율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만큼의 중죄(重罪)를 범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환자의 병을 고쳐 주는 것을 하나의 세속적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42.3)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과연 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안식일에 병을 무료로 고쳐 주는 것과 돈을 받고 고쳐 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유대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환자를 무료이든 유료이든 치료하거나 고쳐 줘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안식일에 여인이 출산(出産)하는 것과 출산을 도와 주는 일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 모태(母胎)에서 세상에 나오는 아이를 아무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팔이나 다리가 골절됐을 때 만일 그것을 치료한다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간주됐다. 안식일에 수족(手足)이 삐었을 때 만일 물에 담그면 그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안식일에 손가락 벤 상처에 고약을 바르면 안되었지만 붕대를 감는 것은 괜찮았다. 이 모든 것은 안식일에 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은 괜찮지만 치료하는 것은 안된다는 율법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적군이 쳐들어와도 공격은 물론 자신을 방어하거나 진지(陣地)를 방어하는 일까지도 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병역을 면제시켜 주었던 것이다. 만일 입대시켰다가 안식일에 적군이 공격해 올 때 그들이 안식일을 지킨다고 고집하여 응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2.4)
 이런 율법적인 배경에서 볼 때 손 마른 자는 당장 생명의 위협이 없는 병이므로 안식일이 아닌 날 고쳐 줘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빌미를 찾고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43.1)
 유대인들의 그런 절대 부동의 규정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유대인의 그릇된 법을 타파(打破)하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여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기적을 행하기로 결심하셨다. 회당 한가운데 앉아 있던 손이 마른 환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신 후에 먼저 당신의 주위에 앉아 있는 율법 전문가들에게 정곡을 찌르는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다. (43.2)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43.3)
 이 질문은 정말로 그들에게 치명타(致命打)였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잠잠했다(막 3:5).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43.4)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지 않거나 생명을 구출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악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43.5)
 그런데 안식일에는 그런 모든 규정이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잠잠했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비록 그것이 선행이라 할지라도 일해서는 안되며 생명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일하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 그릇 생각하고 있었다. 고소할 빌미를 찾고 있다가 궁지에 몰린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물었다. (44.1)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1). (44.2)
 예수님께서 여유있게 대답하셨다.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