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신약의 난해 문제 질문 72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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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363.1)
 바울이 명백하게 지지하는 율법이 많은 것을 금했는데도(롬 7:12) 어떻게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단 말인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여기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진가? (363.2)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제한적임
 논의 중인 본문은 사도 바울이 성적 부도덕을 반박하는 자세한 논증을 포함하는 고린도전서 6:12~20에 속한다. 바울이 이 문단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이라 여겨지든, 그리스도인은 부적절한 성적 행동(예컨대, 창녀에게 가는 것)에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명백하다. 바울은 이 중대한 주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중요한 신학적 진리들, 이를테면 자유와 속박, 부활의 교리, 성적인 교제로 이뤄지는 하나됨, 죄가 몸을 더럽히는 방법, 구속의 교리, 몸 성전에 관한 교리 등을 제시한다. 이뿐 아니라 그는 악과 대항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틀림없이 바울에게 이 문제는 그것과 관련된 여러 위대한 신학적 진리들을 제시하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6:12에 있는 난제의 일부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바울이 그의 논증을 펴 가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문맥에 비추어 대충 생각해보아도, 고린도 교회에는 성적 부도덕과 관련된 어떤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석자들은 바울이 그의 논점을 어떻게 펴 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주요 논쟁 가운데 하나는 고린도전서 6:12에서 사도가 단순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진술하고 있는지, 아니면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유행하던 어떤 표어를 인용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363.3)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유행하던 어떤 표어를 인용함
 바울이 자신의 원칙을 말하고 있다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다.”가 될 것이지만, 그러한 대답은 이 문단이 가르치는 논점을 놓치기 쉽다. 곧바로 바울은 이 진술에 덧붙여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떤 것은 그 사람을 압도하여 속박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단순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진술하고 있다 해도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자기 좋은 대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해를 줄 뿐 아니라 사람을 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을 지지하면 “모든 것이 가하다”라는 말은 거의 무의미한 진술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곧바로 그 진술은 제한을 주는 말로 수식되어 수정되기 때문이다. (364.1)
 오히려 고린도전서 6:12의 처음 진술은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도덕한 행동을 변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문구는 그들이 하는 말이지 사도 바울의 말은 아니다. 이 문구는 심각한 성적 부도덕 곧 그리스도인들의 사창가 출입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자유사상가의 관점을 대표한 것이다. 사실, 이 문단에는 고린도 사람들의 세 가지 표어가 들어 있다.1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6:12)라는 말뿐 아니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6:13), 그리고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다”(6:18) 등과 같은 표어도 있다. 각각의 경우에 바울은 그 표어에 내포된 신학을 반박하는데, 그의 가장 깊은 신학 가운데 몇 가지를 내세워 오늘날도 교회에 악영향을 주는 어떤 교묘한 오류를 논박한다. (364.2)
 바울의 반론
 “모든 것이 가하다.”라는 표어를 논박하기 위해서 바울은 매우 신사적으로 두 가지 명제를 내세운다. 그 첫 번째가 “다 유익한것이 아니다.”이다. 이런 개념을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어떤 행동은 밤늦도록 자지 않고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과 논쟁을 일삼게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진 논란이 될 것이 없다. 그런 다음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라는 표어를 다시 인용하면서, 이번에는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좀 더 신랄한 개념을 내세운다. (365.1)
 어떤 사람이 전면적인 “자유”의 사상을 옹호한다 해도. 어떤 행동은 분란만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뿐 아니라. 그런 사람은 그가 “자유롭게”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행동에 속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유”는 속박으로 이끈다 따라서 바울은 그러한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잘못된 것이라고 반증한다. (365.2)
고린도 인들의 성적 방종의 죄에 대응하여, 바울은 “사창가 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한 표어들을 인용한 다음, 그런 사상에 몇 가지 교정을 가한다. 그는 또한 주께 속한 몸에 적합한 존중심을 세우고자 한다”(Gregory J. Lockwood, 1 Corinthians, Concordia Commentary [Saint Louis, MO:Concordia Publishing House, 2000], 214).
(365.3)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도는 또 다른 표어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그는 고린도 사람들의 논증(성적인 자유를 가리키는 완곡어법인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한다.”[6:13]는 주장)이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지 주를 위하”여 있으므로(6:13) 잘못 적용된 것임을 보여 준다. 몸은 언젠가 파멸될 것이므로(그러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6:13]고 말씀하심) 그 육체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해도 싱관없다는 견해는 부활의 교리로써 반박된다(참조 고전 6:14).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몸에 대해서 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366.1)
 모든 죄가 몸 밖에 있다(6:18)는 가르침(정신이 더 중요하고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원론적 개념)은2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라는 사상으로 반박된다(6:18). 이원론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통해서 잘못된 사상임이 입증된다.

   (1) 예수의 부활(6:14)

   (2) 우리의 몸도 주를 위하여 있다는 개념(6:13)

   (3) 성적인 관계가 이뤄질 때 두 몸 사이에 일어나는 연합(6:16)

   (4) 몸 성전의 개념(6:19, 20). (366.2)
 결론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고린도전서 6:12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반대의 입장을 가르친다. 바울은 자유주의적 사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지혜를 가르친다. 그는 부도덕한 행동을 용인하기보다는 주님께 헌신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그는 파멸의 종말론보다는 부활의 종말론을, 이원론보다는 전인론을 가르친다.3 이 문단에는 한 가지 문제 곧 성적 부도덕을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깊이 있고 힘 있는 신학적 개념들이 들어 있다. 오늘날의 교회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 주제에 관한 사도의 가르침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 (366.3)
 Tom Shepherd (367.1)
 미주
 1. 이런 표어들의 논의에 대해서는 Gordon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MI:Eerdmans, 1987), 249~266을 참조하라. 오늘날 대다수의 주석자들은 이 문단에 표어들이 들어 있다는 데 동의한다.

 2. 이 문맥에서 이원론은 육체와 정신이 서로 교감 없이 독립적으로 기능한다고 여기는 견해를 말한다.

 3. 전인론은 사람이 하나의 통일체이지, 여러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가르침이다. (367.2)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시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것이다.”(시대의 소망, 671). (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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