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둘째 사망에 대해 언급한다(계 20:14). 죄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이르러오는 첫째 죽음과 달리 둘째 사망은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의 형벌이다(참조 죄론 VI. C. 1,2;인간론 II. C. 1-3) (399.1)
 마지막 날에 경건치 않은 이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성경적 종말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단 7:11; 요엘 3:2, 3;마 24:37-39; 눅 17:26-30; 고후5:10; 벧후 3:5-7). 이 형벌은 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보편적으로 임한 죽음(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들이 그 운명에서 탈출됨)과 혼동해서는 안된다(롬 5:18). 둘째 사망은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추구하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직접적 심판이다. 이러한 전망이 죄인들을 너무도 압도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망 속에서 생명보다는 죽음을 요구한다(계 6:15-17). (399.2)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한 특별한 경우는 죽음의 최종적 근절과 관련된다. 요한계시록은 그 심판을 둘째 사망과 동일시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형벌에 대한 항소가 불가능하고 죄에 대한 참회나 용서가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계 20:6, 7). 그것은 천년기 후에 있을 둘째 부활인 “심판의 부활”(요 5:28, 29; 계 20:5)을 뒤따르고, 그 후 최종적 사형 선고가 있게 될 것이다. 이때에 죄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회개를 표명하거나 개심할 수도 없다 오직 악, 전쟁, 중오, 기만 그리고 최후의 심판만 남는다. 이 일 후에 죽음과 하데스 자체를 하나님이 멸하시고(계 20:14)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이다(계 21, 22장). (399.3)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와 공평하심으로 “죽도록 충성”하는(계 2:10) 그의 성도들에게만 부활을 제한시키지 않고, 그것을 결코 구하지도 않고 사망의 권세 아래 살기로 선택한 모두에게 확대하실 것이다. 둘째 사망이 사탄과 그의 대리자들을 비롯하여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다린다(14, 15절). (399.4)
 둘째 부활 후의 사망은 더 이상 깨어질 세력이 아니라 제거될 존재이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도들을 지배하거나 지상에서 군림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추한 잔재로서 그 세력을 다시는 회복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근절은 단순하고, 신속하며, 최종적이며, 또한 논박되지 못할 것이다(14절). 죽음의 권세는 부활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제 죽음의 존재가 제거되어 불멸의 삶을 위한 길이 마련되는데, 여기서 그것은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 그리고 죽음 및 죽음의 기억과 심지어는 죽음의 슬픔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사 25:8; 계 21:3, 4). (399.5)
 6. 부활의 소망
 부활의 소망곧하나님에 의한 새로운 창조적 행위는 구약에서 이미 나타난다. 욥기 14:7-17은 하나님의 간섭이 없다면 죽음이 최종적인 운명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표현한다(7-12절). 하나님께서 잃어버림을 당한 피조물들에 대한 열망으로 그들에게 생명을 회복하실 때에만 사망의 세력은 깨어질 수 있다(14-17절). 고난 중에서의 이 소망은 구속주를 다루는 본문인 욥기 19:23-27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그것은 종말론적 예언들에서도 분명히 표현된다(사 25:8, 9; 단 12:2).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은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 비정경 문서들에서도 현저하게 드러나고 또한 그리스도 시대에 바리새인들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다. (399.6)
 신약 시대에 와서 부활의 소망은 복음서와 편지들에서 분명하게 확립된다(마 22:31, 32; 눅 20:27-38; 요11:24; 고전 15:51-53; 살전 4:13-18; 히 11:19).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일으킴으로써 이 소망에 대한 진전된 보증을 주셨는데(마 9:23-25; 눅 7:11-17; 요 11:38-44), 그것은 죽은 자들로부터 그리스도를 일으키심으로써 하나님이 확증하신 보증이며 그것을 통해 모든 신자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요 3:16; 5:25-29; 6:39, 40; 고전 15:20-23; 벧전 1: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 새로운 생명은 불멸의 생명이 될 것인데, 그것은 죽을 때가 아니라 자는 자들이 새 생명으로 부름 받게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있을 부활 이후가 될 것이다(고전 15:51-53; 살전 4:13-18;참조 부활 I. A, B; 재림 I. G. 2). (400.1)
 7. 죽음의 근절
 부활 후 그리스도를 믿는모든 이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은죽음의 권세의 최후를 의미하고 인류에 대한 그 통치를 끝장낼 것이다(딤후 1:8-10).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이것을 성취하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죽음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 6:9;참조 계 1:18). 의식의 회복과 달리 부활은 마지막 순간에 속임수를 써서 죽음으로부터 그 세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깨트린다. 따라서 “죽음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롬 6:9) 것이다. (400.2)
 죽음의 멸절을 가져오는 열쇠는 모든 사람을 포로로 잡아 가둔 감옥을 여는그리스도의 부활에 있는데, 이는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되”기(5절) 때문이다. 부활은 죽음의 권세에 대한 최후의 흔적을 제거한다 따라서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죽음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죽음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 55). (400.3)
 G. 최후의 운명들
 죽음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깨어졌다. 세상에서의 죽음의 통치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때 끝장날 것이다. 죽음의 존재는 “둘째 사망”의 불 못에서 영원히 근절될 것이다. 두 개의 다른 운명이 죄의 저주와 죽음이라는 삯 아래서 고통당한 모든 이들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과 최종적 멸절을 당하게 될 신실하지 못한 백성들에 대한 슬픈 운명이 있으며, 영생의 보증을 받아들인 모든 이를 위한 기쁜 운명도 있다. (400.4)
 1. 하나님의 심판의 시기, 기간, 결과
 죽음이 완전한 무의식으로 특징지어지는 잠 같은 상태라고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기 때문에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의 집행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중간 기간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성경에 따르면, 죽은 죄인들에 대한 심판으로 지금도 타고 있는 지옥불은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어떤 영혼도 새 땅의 축복을 지금 누리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은 부활을 기다린다. (400.5)
 이는 죄인들을 위한 무시무시한 고통의 기나긴 기간이 될 것처럼 묘사하는 성경 구절들, 예를 들어,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이 영원한 심판을 포함할 것이며(마 25:46), 악인들의 고통이 “세세토록”(계 14:11; 20:10) 지속될 것이라는 구절들을 우리가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세세토록”(헬라어 에이스 투스 아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이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시대의 시대 속으로”(into ages of ages)를 뜻한다. 유사한 표현들이 다른 곳에서는 지속성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데,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헬라어 에이스 톤 아이오나 투 아이오 노스)하다는 것이다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라고 말하는 시편 45:6(히 1:8, 9에 인용됨)에 나타난 구약의 평행구절은 상응하는 히브리어 표현 올람(“시대”, 출애굽기 21:6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단어로서 해방된 종이 “영영이”, 즉 평생 봉사한다는 뜻)이란 말을 차용한다. 이런 용어들 자체는그들이 활동하는 기간의 길이를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행동의 중단되지 않은 기간, 곧 그것의 한계가 행위자에 의해 결정되는 기간을 표현한다. (400.6)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죄인들의 멸망과 이 멸망에 대한 상징적 묘사들을 다루는 이 구절들 및 관련 구절들을 읽으면 성경의 개념이 분명해진다. 각각의 경우에서 파괴적인 대리자들(화재, 구더기, 역병, 부패, 물, 홍수, 바람, 어둠, 전쟁, 맹금류, 불, 유황 등)은 생존의 가능성이 없도록 그들의 파괴적인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게 될 것이다(참조 사 66:24; 겔 38:39; 슥 14:12; 말 4:1; 마 7:19, 26, 27; 8:12; 막 9:43-48; 눅 17:26-30; 계 19:17-21). 계속하여 강조점은 완벽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괴에 있다(참조 유 7). 결과적으로 죽은 자들의 영역에서의 형벌은, 그것이 셔올이나 하데스이든지간에 고통의 영원한 시간을 가리킬 수 없고(참조 막 9:43-47), 단순히 완전한 멸망을 말하는 언급들이다. (401.1)
 최후의 멸망이나 영원한 생존의 시간 체계를 말하는 언급들(“세세토록”)은 각각 멸망이나 보존의 대상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 말할 때는 “세세토록”이란 표현이 “끝없이”를 뜻하지만, 죄인들의 멸망으로 주제가 바뀔 때는 동일한 표현이 단순히 “죄와 죄인들이 지상에서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를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마지막 부활의 때에 불멸성을 얻은 성도들은 불멸하시는 하나님 자신처럼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죄인들은 불멸성을 얻지 못하며, 그들이 타고난 불멸적 영혼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형벌이 그들의 멸망이 지속되는 동안만 지속될 수 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존재는 끝나게 될 것이다(참조 심판 III B. 3;대쟁투 V. D. 3). (401.2)
 2. 영생의 보증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를 위한 그분 안에서의 영생의 약속 및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기 위해 다시 오실 때 있을 불멸성에 대한 소망은 모든 신자에게 보증을 제공한다. 자연적이고 타고난 불멸성이나 죽을 때 있을 환생 혹은 죽음 이후의 무상한 영혼 같은 존재에 대한 무의미한 억측들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의인들의 보상 곧 모든 신자에 대한 보증이 새로운 창조, 곧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새로움으로 들어가는 몸의 부활에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4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