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2-16은 현재의 완전과 미래의 완전에 나타난 역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실현된 종말론(이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부활한 사람의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함[참조 담후
2:17, 18])을 내세우는 그의 적들에 맞서서 바울은 자신은 이러한 완전함을 아직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빌 3:12).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의 죽음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
11절)과 그것이 가져다 줄 완전에 이르기를 희망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래의 완전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그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를 그의 것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12절).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속했음을 의식하고 있었고, 이런 의식이 미래의 완전을 추구하게 한 동력이었다(
13절). 바울은 올림픽 경기에서처럼 이생의 경주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완전의 상을 주려고 부르실 그 날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14절). 그러고 나서 놀랍게도 바울은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15절)라고 권고한다. 바울이 [전에] 현재가 아니라고 부인한 것을 여기에서는 현재라고 말한다. 즉 지금 완전한 자들은 완전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아직,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6절). 장차 충만한 상태로 올 그것이 지금 여기서는 부분에 불과하다(
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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