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만일 칭의가 확신을 주는 것이라면 심판은 그리스도와의 헌신의 관계가 없어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아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는 위험한 기만에서 칭의를 지켜준다는 것이다. 선행은 확신을 주지 않으나 이와 같은 선행에 동기를 부여하신 분이 확신을 준다. 고린도전서 10:1-12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나, 그들이 악을 갈망하면 파멸이 뒤따른다. 영적 특권을 가진 이스라엘에 대한 이 심판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하는 자들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무시하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1, 12절)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이 구원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보증을 갖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심판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신자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키며 참된 확신을 위한 적절한 토대, 즉 그들을 위해 죽고 부활하신 분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토대를 제공한다(고후 5:15; 참조 심판 II. D). (352.2)
 C.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삶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능하게 하고,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필요하게 하는, 삶을 변화시키는 여러 과정이 있다. (352.3)
 1. 중생
 a. 기본 개념
 중생은 영적인 일을 알아내거나 성취할 수 없는(고전 2:14-3:3) 자연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삶의 방식을 실천할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는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일컫는다. 이처럼 중생은 영적 생애와 그것을 꽃피우는 일을 포괄한다. 죄는 인간을 노예 신분으로 끌어내렸고 오직 하나님의 간섭만이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 악에 익숙한 사람은 선을 행할 수 없다(렘 13:23).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할 수는 있으나 성공하지는 못하는데, 이는 악이 항상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롬 7:18, 21). 이런 상황에서(5, 9, 11, 13절; 엡 2:1) 사람은 오직 긍휼에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엡 2:4, 5, 5, 10)에 의해서만 소생하여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얻을 수 있다. (352.4)
 b. 성경의 용례
 구약에서는 중생(regeneration)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말이 없지만, 마음의 할례라는 말로 그것을 이야기한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참조 10:16; 렘 4:4). 따라서 바울은 진정한 할례를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고 묘사한다(롬 2:29). 더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긴 것을 언급하며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할례”에서 “육의 몸을 벗는” 할례를 받았다고 말한다(골 2:11). (353.1)
 마음 할례의 변형된 개념은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새로운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그들이 그의 길에서 행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이다(겔 11:19, 20; 18:31; 36:26, 27). 이처럼 중생은 먼저 마음의 변화이며, 곧 이어지는 행함의 변화를 말한다. 이것은 예레미야 31:33의 새 언약의 약속,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리라(참조 렘 24:7; 32:39, 40)는 말씀과 부합한다. 시편 기자는 이 경험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353.2)
 신약에서는 중생의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 다른 방법들이 사용되었다. 요한복음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자들(1:12)이 인간의 혈통이나 뜻에 따라 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출생했다(13절)고 선언한다. 진실로 하늘로부터, 즉 물의 침례와 성령으로 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요 3:3, 5). 오직 성령으로만 육과 자연인에서 영과 영적인 사람으로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6절). 성령의 일은 임의로 부는 바람과 같아서 사람이 예측할 수 없다. 이처럼 중생의 과정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혜로 되는 하나님의 일이다. (353.3)
 디도서 3:5요한복음 3:5의 강조점과 유사한 점을 포함하고 있는데 “중생의 씻음”(팔린[“다시”]와 게네시아[“출생” 혹은 “기원”]에서 나온 팔링게네시아)과 “성령의 새롭게 함”(아나카이노시스, 문자적으로 “다시 새롭게 되다”)에 관하여 말한다. 침례와 성령의 관계는 여기에서 확증된다. 요한복음 3:5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침례를 상기할 수 밖에 없는데, 여기서 그는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역을 감당할 능력을 받았다. 디도서 3:5이 말하는 새롭게 됨의 개념은 골로새서 3:9, 10에 나오는 용법과 일치하는데, 그에 따르면 신자들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아나카이노오) 하심을 입은 자”이다(골 3:9-10). 유사한 개념이 에베소서 4:22-24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신자들은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도록 요청받고 있는데, 기만적인 육욕으로 부패한 옛사람과 마음이 새롭게 된(아나네오오) 새 사람 사이의 평행이 도출된다. 더 나아가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크티조)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태초의 아담의 창조를 연상시킨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대한 언급은 에베소서 2:10에도 있는데, 거기서 신자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353.4)
 베드로전서에서 새로운 출생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결되는 복합동사 아나겐나오(1:3, 23)와 2:2“새로 태어난 아기”에서 형용사구로 등장한다. 베드로의 요점은 그리스도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이므로 구원에 있어서 그들은 영적 자양분을 통하여 자라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생은 새로운 출생과 뒤이은 성장 둘 다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킨다. (353.5)
 성경은 중생이 하나님의 뜻(요 1:13)과 하나님의 성령(요 3:5; 딛 3:5) 그리고 전파된 복음의 말씀으로 규명된 하나님의 말씀(약 1:18, 21; 벧전 1:23, 25)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신자들이 현재 중생하는 것처럼 역사의 끝에도 세상은 지금 영적으로 새롭게 되는 일에 활동하는 같은 능력으로 새롭게 된다(팔링게네시아, 마 19:28). (353.6)
 2. 회개와 회심
 a. 회개에 사용된 용어
 “회개”는 변화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이다. 그것은 많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는 히브리어 동사 나함인데, 이 말은 대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를 일컫는다(창 6:6; 출 32:14). 이것은 먼저 기꺼이 회개하려는 백성들의 자발성에 달려 있다(렘 18:8).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은혜로움으로 바뀐다(욜 2:13).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하려고 하셨던 선한 일에 대하여 그의 마음을 바꾸신다(렘 18:10). 또한 나함은 악으로 돌아선 사람들을 창조한 것에 대한 슬픔이나 후회를 표현하기도 한다(창 6:6).(그것은 또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인간의 슬픔도 표현할 수 있다. 삿 21:6, 15; 렘 31:19).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게 되는 또 다른 요소는, 모세가 하나님께 그들을 벌하시려는 그의 마음을 돌이켜(출 32:12) 그들을 번성케 하고 그들에게 한 땅을 주시겠다고 한 그의 언약을 기억해 주시라고 탄원한 것처럼(14절) 그의 백성들을 위한 중재가 있는지의 여부이다. (354.1)
 다른 히브리어 용어는 동사 슈브인데 하나님은 이로써 그의 불충실한 백성들이 죄로부터 돌이키도록 요구하시며(왕상 8:35; 느 9:35; 사 59:20; 겔 3:19) 그에게 돌아와 언약에 충실할 것을(신 4:30; 느 1:9; 렘3:14; 4:1) 요구하신다. 때때로 슈브나함은 동의어로 사용된다(출 32:12, “돌이키다”“회개하다”로 번역됨). (354.2)
 헬라어 신약에서 회개에 해당하는 주요 낱말은 동사 메타노에오 혹은 명사 메타노이아인데, 이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평가로 이끌어 “마음의 변화”(마 3:8)를 낳는 반성(反省)을 가리킨다. 동사 메타멜로마이는 히브리어 나함처럼 죄에 대한 후회나 슬픔을 표현하지만(마 21:29, 32), “마음을 바꾸다”를 의미할 수 있다(고후 7:8). 회개의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된 헬라어 낱말은 “돌이키다”, “되돌아가다”(눅 1:16, 17; 행 1 1:21; 눅 22:32; 행 3:19; 약 5:20)를 의미하는 동사 에피스트레포와 명사 에피스트로페(“돌아온 일,” 행 15:3)이다. (354.3)
 b. 회개의 의미와 내용
 선지서들에서 심판의 개념과 더불어 매우 두드러진(호 6:1; 욜 2:1-14) 회개의 개념은 침례자 요한의 기별의 본질이며(마 3:2; 막 1:4), 예수님의 교훈의 주요 부분이었고(막 1:14, 15), 베드로에 의해 요구되었고(행 2:38; 3:19), 바울에 의해 사용되었고(행 26:20; 롬 2:4), 계시자 요한에 의하여 요구되었으며(계 2:5, 16, 21, 22절; 3:3, 9), 일신론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핵심을 차지한다. 성경에서 이 개념은 구원과 관련된 주제의 바탕이 된다.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중요한 요소들이 그 안에서 발견된다. (3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