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입양의 개념을 사용한 것은 신학적으로 보면 그 기원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른 데 기초 되어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신분에 대하여 어떤 결론을 끌어내게 해 준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로마의 입양 관습이었다. 특히 복잡한 상징적 매매 절차를 통하여 입양하는 아버지는 그의 새 아들을 친부로부터 직접 데리고 왔다. 일단 그 거래가 마무리되면 아들은 입양한 아버지의 전적인 권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은 양부의 품성과 의도에 따라 험악한 현실이 될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중요한 혜택도 함께 따라왔다. 이전의 가족관계에서 완전히 단절된 그 아들은 새 가족의 모든 권리를 얻었다. 양부는 매우 실질적인 방법으로 그의 새 아버지가 되었다. 피입양자의 채무는 탕감되었고 그는 친아들처럼 새 아버지의 완전한 상속자가 되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삶이었으며, 만일 그가 가족과 함께 왔다면 그의 자녀들 또한 새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은 하늘 아버지의 진정한 자녀들이 되며, 그때부터 그들이 하나님의 영을 통해
“아빠 아버지”라고 외친다(
롬 8:15; 갈 4:6). 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고, 죄의 빚은 탕감되고, 그리스도의 동료 상속자가 된다(
롬 8:17; 갈 4:7). 그들은 재판관에게는 죄수로 간주되지 않으며, 주인에게는 종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에게는 자녀들로 간주된다. 더 나아가 그들이 현재 양자됨(
“이미”)은 장차 올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몸을 받을 때(
롬 8:23) 있을 미래의 종말적 양자됨(
“아직 아니”)의 완성을 보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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