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E. 3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죄의 세 가지 국면이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죄의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하나님 앞에서의 새로운 확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생명에 달려 있다. (337.1)
 성경의 가르침(특별히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구원의 모든 요소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 된다(참조 엡 1:1-14). 바울의 저술에서 164회 나타나는 이 구절이나 그에 상응하는 표현들은 단순히 법적 신분보다는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언급한다. 용례를 살펴보면 그 표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연합과 관련된 경험적 실재를 나타낸다. 신자는 그[그리스도]의 영의 내재하심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며, 이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구원의 사건들)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속한다. 그 결과 신자는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와 신자들의 교제 안에 나타나는 구원의 모든 축복을 개인적으로 받는다. (337.2)
 A.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는 칭의, 화목, 양자됨을 포함한다. (337.3)
 1. 칭의와 의
 a. 용어
 “의롭게 하다”라는 동사의 어근은 히브리어 차다크인데, 이는 “옳다 혹은 의롭다”는 의미이고, 사역형(히브리어 히필형 동사)으로 사용되면 “의롭다고 취급하다 혹은 선언하다, 판결을 유리하게 내리다, 무죄라고 선언하다, 옹호하다, 권리를 회복하다”와 같은 의미가 있다. 히브리어 명사 체데크츠다카는 정의, 의 혹은 그의 언약 율법에 규정된 하나님과의 관계에 일치함이라는 관점에서 본 의를 의미한다. 형용사 찻디크는 정의로운, 합법적인, 혹은 의로운 등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히브리어 용어에 상응하면서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헬라어 동사는 디카이오오, 형용사 디카이오스 그리고 명사 디카이오쉬네이다. 명사 디카이오시스디카이오마는 의롭다고 인정받음(칭의)을 의미하는데, 후자는 정당한 요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337.4)
 b. 칭의의 사법적 배경
 히브리어와 헬라어 동사는 법정 용어이며 판사가 법적 소송에서 판결하는 선고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판사가 피고에 우호적인 점을 발견하면 무죄 혹은 옳았다는 판결이 내려지고, 피고에게 불리한 점을 발견하면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338.1)
 이런 법정 용례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고 있는 언약 관계 그리고 신약에 나타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교리의 주요 배경이다. 따라서 이런 배경이 성경의 교훈에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법정 심판과 관계는 용서의 은혜 및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 같은 더 중요한 개념으로 옮겨간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이 재판관으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대체하진 않지만 그것을 능가한다. 칭의라는 법정 언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처럼 다함이 없고 넘치는 풍요의 신학으로 흘러 들어간다. (338.2)
 c. 선례들
 사도 바울은 성경에서 칭의의 교리를 가장 완전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의 주석은 구약과 신약에서, 신약에서는 특히 예수의 교훈에서 그 선례를 찾을 수 있다. 의롭다고 인정하거나 죄로 헤아리지 않음(창 15:6), 의를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와 동일시함(시 31:1; 143:11, 12), 가장큰 죄와 죄인들에 대한용서(대하 33:1-13; 시 51편) 그리고 더러운 의복을 깨끗하고 귀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슥 3:1-5) 등과 같은 구약의 중요한 용례들이 신약에서 칭의를 설명하는 기본적 개념으로 사용된다. (338.3)
 스가랴에서 옷의 이미지는 마태복음 22:1-14의 결혼 예복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왕의 결혼 잔치(하늘 왕국에 들어가는 일을 이 땅의 일로 예증함)에 적절한 의복을 입기 위해서는 결혼식 예복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비록 은혜로운 초청장을 받았더라도 결혼식장에 그를 위한 자리는 없다. 그 비유는 그 예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얻는지에 대하여 말하지 않지만, 성경은 다른 곳에서 그 답을 제공한다. 이사야 61:10에서는 하나님이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으로 크게 기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같은 기쁨의 가락이 탕자의 비유에서 하나님을 상징하는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의복을 기꺼이 내어줄 때 울린다(눅 15:22). 갈라디아서 3:26, 27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이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옷 입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의 더 넓은 문맥에서 결혼식 비유에 나오는 의복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로 간주된다. (338.4)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눅 18:9-14)를 보면, 하나님에게서 의롭다는 판결을 받는 기준은 자신의 선함이나 [모세의] 율법을 이행한 데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회개의 정신과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간절한 호소이다. 비록 모든 의무를 수행했다고 할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무익한 종이다(눅 17:10). 이처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필요하다. (338.5)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에 관하여 예수님은 행동으로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신 데에서 나타난다(막 2:15-17; 눅 15:2).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까지도 찾으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비유와 일치한다(눅 15:3-32). 예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같은 바울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 교훈은 그의 사명과 기별의 중요한 부분이 었다. (338.6)
 d.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갈라디아서 및 빌립보서와 함께 로마서는 그 주제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료를 제공한다. 로마서 1:16, 17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를 요약한다.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와 주로서 선포하는(3, 4절) 복음이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을 가장 확실하게 구원으로 이끌 능력이라고 선언한다. 17절에서는 복음이 구원으로 이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18절에서 나오는 복음과 진노의 대조(참조 롬 3:19-21) 그리고 16-17절의 사상은 하나님의 의가 구원을 주는 실재임을 보여 준다. 불의와 진노(하나님의 의는 거기서 구원해 낸다)는 로마서 1:18-3:20에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인간 죄의 추악한 실상이 묘사되어 있고, 공의로 죄인 위에 부어지는 진노는 과거(하나님이 그들을 넘기셨다[롬 1:24, 26, 28]), 현재(18절), 미래(2:2, 5, 8, 9)의 일로 묘사되어 있다 그 문제의 결론은 로마서 3:19, 20의 심판 장면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서 전 세계는 유죄요, 행함(works)에 호소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잃어버린 인류는 죄가 지불해야 할 삯인 죽음의 선고를 기다린다(롬 6:23). 이러한 죄와 진노의 장면을 두고 로마서 3:21에서는로마서 1:16, 17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의의 주제를 다시 다룬다. “그러나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인 자들을 위해 새로운 시작(롬 3:22)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를 보여 줌으로써 죄와 진노 아래 잃어버렸다가 역전된 상태를 소개한다. (338.7)
 하나님의 의를 구원의 활동으로 보는 견해는 구약, 특히 이사야서와 시편에 나오는 많은 용례와 일치한다. 많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의는 그의 구원과 동의어이거나 동격이다. 이사야 46:13에서는 “내가 나의 공의[구원]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라고 진술한다. 이사야 51:5; 56:1; 59:16; 61:10은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같은 의미인 것이 명백한 이유는 하나님은 “공의”를 선언하고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사 63:1) 자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다(사 45:21; 참조 시 24:5; 31:1; 40:10; 51:14; 71:15; 143:11). 어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그의 확고하고 불변하는 사랑 혹은 자비와 대등한 구절로 나타난다(시 36:5, 6, 10; 89:14). (339.1)
 이사야나 시편에서는 의를 구원이나 자비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로마서 1-3장의 의와 문맥적으로 연결해 보면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것의 성경적 선례이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속성을 그다지 많이 가리키지 않으나 히브리 사상의 역동적 형태에 비춰보면 그것은 잘못에 빠진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두는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을 가리킨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것은 언약적 개념이다. (339.2)
 e. 칭의의 국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