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는 모세언약(출 19-24)과 다윗언약(삼하 7)을 주심으로 구원사의 주인공이 될 이스라엘 민족을 예비하시고, 메시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시도록 하셨다. 언약은 구원의 약속이다. ‘야훼’는 약속대로 구원사를 성취하신다. ‘야훼’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다. (60.3)
 창세기에서 ‘엘로힘’‘야훼’ 등 기본적인 신명 외에 다른 신명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아브라함과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늘날의 이라크 남부 지방인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나아갔다(창 12:1; 히 11:8). 세계를 안방처럼 넘나드는 현대에 아브라함의 순종이 얼마나 큰 모험이었는지를 이해하기 힘들다. 고대 사회는 가족과 부족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은 경제적 안정과 신체적 안전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변의 안위와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 저들을 보호해 줄 확대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19 아브라함은 ‘야훼’께서 보여 줄 땅으로 가야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행하시며 그의 갈 길을 지도하시고 그를 보호하실 것이었다. 아브라함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을 때 그의 정체성과 운명은 하나님과의 경험에 따라 결정될 것이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유목민으로 끊임없이 떠돌며 생활할 때 지나가는 곳마다 하나님께 쌓았던 제단을 남겨 놓았다(창 12:7, 8; 13:4, 18). 그는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다양한 이름으로 체험하였다. 거의 매 장마다 새로운 신명이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경험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제시한다. 먼저 창세기 14장에 등장하는 ‘엘 엘룐’부터 살펴보자. (60.4)
 4. 엘 엘룐
 ‘엘 엘룐’(אֵל֣ עֶלְי֔וֹן, ´ël `elyôn)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번역이 된다. ‘엘’(אֶל, ´ël)은 셈어에서 참 신이나 거짓 신의 여부를 불문하고, 심지어 우상까지도(창 35:2)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신을 뜻한다. ‘엘’의 복수형인 ‘엘로힘’은 목석으로 만든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 가리킨다.(신 4:28) 가나안 종교를 잘 보여주고 있는 라스샴라 토판에서 ‘엘’‘바알’ 신의 아버지가 되는 높은 신이었다. ‘엘’‘엘 엘룐’(창 14:18-22), ‘엘로이’(창 16:13), ‘엘 샷다이’(창 17:1), ‘엘 올람’(창 21:33), ‘엘-엘로헤-이스라엘’(창 33:20)등의 복합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61.1)
 ‘엘룐’(עֶלְיוֹן, `elyôn)은 동종의 어떤 존재들 보다도 높거나 상위에 있는 존재를 가리킨다. 원래 우가리틱에서 ‘엘’과는 구별되는 다른 신이었지만,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이 된다.20 ‘엘 엘룐’창세기 14:18-20에 매 절 마다 등장하며, 22절에서는 ‘야훼 엘 엘룐’(יְהוה אֵל עֶלְיוֹן, yhwh´ ël `elyô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야훼’가 사용되었다.21 (62.1)
 (1) 멜기세덱이 섬긴 하나님
 아브라함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네 나라의 연합군을 무찌르고 조카 롯과 소돔 백성을 구출했을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그를 마중 나왔다. ‘살렘’(שָׁלֵם, šälëm)은 ‘평화’를 뜻하며 후에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이 되었고, 멜기세덱(히. 말키체덱, מלְכִּיצֶדֶק, malKî-cedeq)은 ‘의의 왕’이란 뜻이다. 그는 의와 평강의 왕이신 하나님을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섬겼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 14:19).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천지의 주재’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야훼’를 가리켜 맹세하였다(창 14:22). (62.2)
 (2) 최상위의 신
 ‘엘 엘룐’‘지극히 높다’는 최상위적 의미를 갖고 있다. 고대시대에 신들은 산이나 들, 바다나 하늘 등 어떤 영역이나 지역에 그 권세가 국한되었다. 이교적 배경 가운데에서 ‘엘 엘룐’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신을 뜻하며, 하나님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엘 엘룐’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우주적 절대자로서 만민에게 경배를 받으셔야 할 하나님이다. (63.1)
 (3) 천지의 창조주와 소유주
 하나님이 최상의 신으로 높임을 받으실 자격은 어디에서 오는가? 멜기세덱의 축복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엘 엘룐’‘천지의 주재’(קֹנֵה שָׁמַיִם וָאָרֶץ, qönË šämayim wä´ärec)이시기 때문이다(창 14:19). 주재(主宰)는 사람들 위에서 일체를 통할하는 인물을 의미하지만22 이에 해당하는 원어 ‘코네’(קֹנֵה, qönË)는 ‘창조하다, 소유하다’를 의미하는 ‘카나’(קָנָה, qänâ)에서 기원하여 ‘창조자, 소유자’를 뜻한다. 쉬운 성경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으로, 제임스왕역은 ‘하늘과 땅의 소유주’로 번역하여 그 뜻을 살리고 있다. ‘천지의 주재’라는 표현은 선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만국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23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주와 소유주가 되시기 때문에 모든 신과 만물 위에 절대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다. (63.2)
 (4)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엘 엘룐’은 축복의 근원이시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다. 창세기 14:19-20은 시적 형태로 된 제사장적 축복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적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24 창세기 14장 이전에 ‘축복하다’를 뜻하는 원어 ‘바라크’(בָּרַךְ, Bärak)는 구속사의 중대 전환점에 사용이 되었다. 하나님은 창조 때에 그분의 피조물인 생물들과 인간을 축복하셨다(창 1:22, 28; 5:2). (63.3)
 노아홍수 후에 인류의 역사도 하나님의 축복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였다(창 9:1). 바벨탑 사건 후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갖고 온 세상으로 흩어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셈의 자손들 중에 아브라함을 축복의 근원으로 선택하셨다(창 12:2, 3). 하나님의 축복은 물질적일 뿐 아니라 영적이다. 아브라함은 후손과 땅과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창세기 1-11장까지의 원시역사를 끝내고 창세기 12장부터 선민의 역사를 기록하는 시점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 뿐 아니라 거의 일 천명이나 되는 집단을 이끄는 거부로 만드셨다. (64.1)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이끌어 들이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래적 의도가 성취되기를 기원한 것이다. 후에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멜기세덱처럼 왕과 제사장적 직분을 소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었다. (64.2)
 (5) 능력의 하나님
 ‘엘 엘룐’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창세기 14:14에 아브라함은 정예군 삼백십팔 명을 동원하여 전쟁에 승리를 거두었지만, 영광과 찬송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한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창 14:20). (64.3)
 (6) 아브라함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엘 엘룐’의 지고하심 만큼이나 아브라함은 지고한 믿음의 소유자이다. 롯에 대한 불붙는 사랑 때문에 전쟁에 개입하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은 단순한 혈육의 정만으로 분노에 가득차서 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자였다. 참전은 기도 속에서 결정된 것이었으며,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는 자기를 인도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소돔 왕이 소돔 백성은 자기에게 돌려 보내고 다른 모든 전리품은 아브라함이 취하라고 말했을 때에 그는 지체없이 ‘천지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야훼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며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다(창 14:22).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 이니라’(창 14:23-24). 그는 부자였고, 정복자였지만, 물질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니었다. 그는 평화를 추구하는 자였고, 그 평화가 회복된 것으로 만족하였다. 물질이 그의 싸움의 동기나 목적이 아니었다. 소돔 왕과의 계약에 의해서 얻게 되는 세상 재물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영적인 은혜가 그를 배부르게 할 것이요 아브라함은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삶의 위기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경험은 매우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이생에서 어쩔 수 없는 분쟁 중에 빠져들 때일지라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답게 순수한 신앙적 동기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베푸신다. 생애의 싸움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은 크며, 이 세상의 모든 싸움이 끝날 때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에 대해서 부요한 자로서 승리를 안겨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