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온 인류가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갖고 온 땅으로 흩어졌을 때 만 백성을 구원할 하나님의 동역자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을 불러주셨다. (55.5)
 9) ‘엘로힘’은 선교적인 하나님이시다
 히브리민족이 모든 피조물 위에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인 ‘엘로힘’을 저들의 하나님으로 삼은 것은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엘로힘’은 히브리 민족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 그분에게 창조함을 받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이시다. (55.6)
 ‘엘로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이스라엘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불신자, 무신론자, 다신교 숭배자 등 온 인류를 저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을 지게 된다. 역사적 이스라엘이 선교 사명에 실패하고 예수님을 거절했을 때, 이 사명을 새 이스라엘인 교회가 받았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신 ‘엘로힘’이시다. (55.7)
 그분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28:18-20). (56.1)
 하나님께서 세상에 파송하시는 마지막 자비의 천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곧 창조주이신 ‘엘로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말한다(계 14:6-7). (56.2)
 3. 야훼
 ‘엘로힘’과 매우 밀접하게 등장하는 신명은 ‘야훼’(יהוה, YHWH)이다. 성경에서 ‘야훼’는 여호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용어는 창세기 2:4에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로 구약성경 중에 6823회, 창세기에 164회, 출애굽기부터 여호수아까지 1,800회 사용되었다. (56.3)
 야(יהָּ, yäh)라는 축약 형태로 50회가 주로 시문학 속에 사용되었다.11 ‘야훼’‘야훼 이레’(‘야훼께서 준비 하신다’, 창 22:8, 14 ), ‘야훼 닛시’(‘야훼는 나의 기’, 출 17:15), ‘야훼 샬롬’(‘야훼는 평강이라’, 삿 6:24), ‘야훼 치드케누’(‘야훼는 우리의 의라’, 렘 23:6; 33:16), ‘야훼 샴마’(‘야훼께서 거기에 계시다’, 겔 48:35), ‘야훼 체바오트’(‘만군의 야훼’, 삼상 1:3; 17:45; 시 24:10 등), ‘야훼 엘로헤 이스라엘’(‘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 삿 5:3; 삿 17:6; 습 2:9 )등의 복합 칭호를 만든다. (56.4)
 1) ‘야훼’는 이스라엘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다12
 이스라엘이 섬기는 ‘야훼’ 하나님이 전 세계를 창조하신 초월적 능력의 하나님이신 ‘엘로힘’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창세기 2:4-25의 창조 이야기는 한결같이 ‘야훼 엘로힘’을 신명으로 사용한다(창 2:4, 5, 7, 8, 9, 15, 16, 18, 19, 21, 22).13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기원을 ‘톨레도트’(족보)와 신명인 ‘야훼’ 하나님을 통해서 세계 창조에 연결한다. 창세기는 만물 위에 초월하시는 엘로힘(אֱלֹהִים, ´élöhîm)과 인간을 자상하게 돌보며 세계 역사 속에 내재하시는 야훼(יְהיָה, yhwh)를 결합시켜 이스라엘의 독특한 하나님 상(像)인 ‘야훼 엘로힘(יְהיָה אֱלֹהִים, yhwh ´élöhîm)을 제시하였다.14 (57.1)
 ‘야훼’의 의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창세기가 아닌 출애굽기의 모세의 소명 속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밝히면서 ‘야훼’라고 했으며, 비록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다고 하였다(출 3:14, 15; 6:3). (57.2)
 ‘야훼’는 히브리어로 ‘있다, 되다, 발생하다’를 의미하는 ‘하야’(הָיָה, häyâ) 동사의 고어형인 ‘하와’(הָוהָ, häwâ)에 삼인칭 남성 단수를 가리키는 접두어인 ‘요드’(י)를 첨가했다. 신명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자’, ‘자존자’, ‘스스로 존재할 자’, ‘그분의 백성과 함께 임재해 있는 자’, ‘존재하게 하는 자’등으로 이해되고 있다.15 이것은 하나님이 가만히 있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분의 백성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움직이시는 ‘활동적인 존재’라는 뜻이다.16 이스라엘은 언약관계 속에서 오직 ‘야훼’를 저들의 하나님으로 받아 들였다. ‘야훼’는 이스라엘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이며, ‘야훼’ 외에는 저들에게 어떤 다른 신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러한 신학적인 이유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나의 하나님’(אלֹהָי, ´élöhäy‘이스라엘의 하나님’(אֱלֹהֵי יִשְׂרָאֵל, ´élöhê yiSrä´ël)은 사용을 했지만 ‘나의 야훼’‘이스라엘의 야훼’는 사용하지를 않았다. 당연히 언약의 백성에게 ‘야훼’는 저들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야훼’를 그렇게 한정해서 불러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말은 사용했지만 살아계신 ‘야훼’는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야훼’ 외에 그 어떤 존재도 살아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7 (58.1)
 2) ‘야훼’는 인간 세계에 깊이 관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엘로힘’이 피조물 위에 초월해 있는 신이라면, ‘야훼’는 피조물 세계에, 특별히 인간 세계에 깊이 관여하는 신이다. 인간에 대한 주도면밀한 신적 돌보심을 창조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야훼’라는 신명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야훼’는 토기장이처럼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에게 그분의 숨결을 불어넣어 생물이 되게 하셨다(창 2:7, 난외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에덴을 거처로 주시고, 이상적인 농경지와 수자원을 인간을 위해 조성하시고, 동물들까지도 인간의 지배 아래 두셨다. 아담에게 신부를 특별히 마련하여 주심으로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선물로 주셨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불멸의 조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교훈을 주셨다. ‘야훼 하나님’은 창조로부터 인간과 밀접한 언약적 관계를 가지셨다. 이를 창조 언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관계는 인류의 타락을 통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59.1)
 3) ‘야훼’는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인간에게 선과 악에 대한 법을 정하시고 범법자에게 형벌을 정하셨다(창 2:17). 창세기 3장 이후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광경이 묘사될 때마다 언제나 ‘야훼’가 등장하신다.18 생명의 존재 근거가 되시는 ‘야훼’의 정한 법도를 넘어서는 것은 사망을 자초하는 행동이며, 죽음이나 다름이 없다. 존재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비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류는 존재케 하시는 ‘야훼’에 의해 ‘생령,’‘살아있는 존재’(living being, NIV)로 이 땅 위에 창조되었지만, 아담의 범죄와 동시에 죽은 자, 비존재가 되었다. 그 후로 인간은 죽음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59.2)
 죽음의 역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인 ‘야훼’가 개입하실 때 생명의 역사, 곧 구원의 역사로 바뀐다. 창조를 통해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붙들어 매신 언약의 하나님은 인류가 생산한 사망의 역사의 붓 자루를 취하셔서 반전의 역사인 새 생명의 역사를 기록하신다. ‘야훼’는 인류를 포기한 적이 결코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60.1)
 4) ‘야훼’는 생명의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이다
 ‘야훼’는 인류의 위기 상황에 매우 신속하게 대처하시며, 언제나 발전된 언약의 형태로 치유책을 내놓으신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야훼’는 신속히 찾아오셔서 원복음(창 3:15)을 내어 놓으셨다. ‘야훼’는 온 인류가 물로 멸절될 극한적 타락 상황에 빠졌을 때 노아 언약을 제공하셨다(창 6:18; 9:1-17). ‘야훼’는 바벨탑을 통해 인류가 하나님을 등지고 언어의 장벽을 갖고 온 땅으로 흩어졌을 때 아브라함 언약으로 구속사의 새 기원을 여셨다(창 12:1-3). (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