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서 주일로 제4장 신약의 세 본문과 일요일
사도 바울이 떠날 시간이 가까워오자, 그 작은 교회는 비록 일요일의 특별한 예식은 아니었지만, 그 사도가 마지막 설교를 하였던 그 때 우정의 송별 만찬을 준비해 연합하였을 것이다.49)
(141.1)
 “떡을 떼려 하여”(κλάσαι άρτον)라는 기술적인 표현은 더 면밀한 주의를 기울일 만한 내용이다. 그 구절에서 이 표현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헨리 캐드버리(Henry J. Cadbury)와 키르솝 레이크(Kirsopp Lake)가 묻고 있는 것처럼,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성만찬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50) 그들은 “전자에 보다 더 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주장한다. 베힘(J. Behm)은 그의 전문적인 아티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41.2)
떡을 떼는 것은 단지 함께 먹기 위한 통례적이고 필수적인 준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것은 매일 저녁식사에서 주 요리를 나눠먹기 위해 시작하는 행위이다. ∙∙∙ 그것은 떡을 떼는 개시 행위의 관점으로 보아 일상적인 식사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초기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가정에서 매일 떡을 떼(행 2:42, 46)었던 일상적인 친교의 관행을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방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일반적으로 나누었던 식사를 말하는 것이다(행 20:7, 고전 10:16 비교).51)
(141.3)
 하지만 그 저자(베힘는 나중에 “떡을 떼”었다는 그 표현이 주의 만찬을 나타내는 기술적인 명칭이 되었다고 기록한다.52) 사도교부시대의 문헌에서 그러한 용례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만, 신약성서 안에서 그러한 한정적인 의미나 용례는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떡”(άρτος)이라는 명사를 수반하는 동사 “떼다”(κλάω)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에 15번 나타난다.53) 그 중 아홉 번은 예수께서 군중들을 먹이실 때, 최후의 만찬에 참여할 때, 부활하신 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떡을 떼신 행위를 언급하고 있다.54) 두 번은 바울이 식사를 들거나 식사에 참여한 것을 묘사한다.55) 두 번은 주의 만찬에 떡을 떼는 실제적인 행위를 묘사한다.56) 그리고 나머지 두 번은 사도들이나 신자들이 함께 “떡을 떼”는 것을 일반적으로 언급할 때 사용된다.57) 이것들 중에서 주의 날이 명확하게 혹은 기술적으로 “떡을 떼는 것”으로 규정된 사례는 하나도 없음을 주목해야 한다. 사도행전 2:4620:7의 일반적인 두 내용을 주의 만찬을 언급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행전 2:46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집에서 떡을 떼며”라는 구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날마다 식탁에 둘러 앉아 친교를 나눈 것을 언급하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내용의 본문에 “날마다 ∙∙∙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46-47절)라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이다.58) 그렇게 매일 한 식탁에서 나눈 친교는 비록 그것이 성만찬 예식의 거행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예식에 한정된 것만으로는 간주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행전 20:7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는 진술인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라는 진술도 “우리가 함께 먹기 위해서 모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실 더그모어(C. W. Dugmore)가 정확하게 관찰한 것처럼, “그 내용에는 잔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어떤 기도나 영창조차도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의 강론은 성경 구절을 읽은 후 진행되지 않았다.”59) 우리는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울이 혼자서 떡을 떼어 먹었다고 부언할 수도 있다. 그가 떡이나 포도주를 축복했다거나, 그것들을 신자들에게 나눠주었다는 것을 함축해주는 그 어떤 내용도 주어지지 않는다. (142.1)
 게다가, 떡을 뗀 것에 뒤따라 “먹”(γευσάμενος, 11)는 식사 행위가 이어졌다. 이와 동일한 단어가 누가에 의해 다른 세 사례들(행 10:10; 23:14; 눅 14:24)에서도 사용되어졌는데, 그 분명한 의미는 모두 배고픈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랜 시간 동안 연설을 한 후 바울은 틀림없이 배가 고팠을 것이며, 그의 권고를 계속한 후 여행을 계속하기 전에 음식을 좀 먹어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바울이 정규적인 식사와 더불어 성만찬을 함께 거행했다면, 그는 주의 만찬을 거행하기 위해서 모이기 전에 집에서 먹고와 배고프지 않도록 하라고 얼마 전 고린도교인들에게 강력하게 권고(고전 11:2, 22, 34)한 자신의 권고와 정반대의 행위를 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일반적인 무질서(고전 11:18-22)를 교정하기 위해, 바울이 드로아에서 교제의 식사를 나누기 전에 성만찬에 참여하므로 일반적인 규칙(즉, 식사 후 거행되는 주의 만찬)을 바꾸어 놓았다는 추측은 불충분한 토대 위에 기초한 것이다.60) 첫째, 사도 바울은 집에서 음식을 충분히 먹으므로, 주의 만찬이 거행되는 동안에 배고프지 않도록 하기를 분명하게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11:27, 34), 성만찬예식 이후까지 식사를 미루는 것은 그것의 폐해를 없애거나 그 예식의 의미를 고양시키는 것이 될 수 없다. 둘째, “떡을 떼어 먹고”라는 표현(11절)에 나타난 두 동사는 반드시 구별된 두 의식을 묘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일한 의식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밤중 이전에 음식을 먹었다는 언급이 없는 것을 유의할 때, 그 떡을 뗀 것은 함께 음식을 먹기 위해 통례적으로 식사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것은 바울이 송별을 위한 친교 만찬에 참여했던 것이지, 엄밀하게 그 스스로 “주의 만찬”으로 명명(고전 11:20)했던 그 의식에 참여했던 것이 아님을 시사해 준다. (143.1)
 신약성서에서는 주의 만찬을 거행하기 위해 고정된 한 날과 관련된 어떤 암시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42, 46은 예루살렘의 신자들이 교재의 식탁에 모여 “매일(ka Mukpav) ”떡을 떼는“ 일에 참여한 것을 묘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들의 연보를 사적으로 저축하기 위한 특별한 한 날을 추천하면서도,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동일한 편지에서 동일한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너희가 모일 때에“(고전 11:18, 20, 33, 34)라는 막연한 시간과 막연한 날짜를 함축하는 말만을 하고 있다. ”안식 후 첫 날이라는 실질적인 표현은 그 날에 모인 관습 때문에 언급되었다기 보다는 빅켄하우서(A, Wickenhauser)가 주장했듯이, “그 때에 발생한 사건” 때문에 언급된 것일 수 있었다.61) 유두고의 사건은 바울이 드로아에서 머문 7일 동안 발생한 사건들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으며, 그 이야기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9, 10, 12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에 비하면 “떡을 떼”는 것과 관련된 묘사는 매우 간결하고 “떡을 떼어”(11절)라는 한 단어에만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그 공동체가 바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송별 식사를 나누기 위해 모였던 바로 그 날에 발생한 유두고의 부활 사건이야 말로 그 날에 일어났던 모든 일 중에서 누가가 가장 자세하게 기록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던 사건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생소한 사건은 틀림없이 신자들의 인상 속에 계속 남아 있었을 것이다. (144.1)
 누가가 떡을 떼는 일이 한 주의 첫 날에 일어난 일이라고 기록한 또 다른 이유는 독자들이 바울의 여행 일정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연대기적 자료를 제시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20장, 21장에서 누가는 증인으로서 1인칭 복수(“we-section” 20:4-15; 21:1-18)로 글을 쓰고 있으며, 바울의 여정의 다양한 시기를 전하기 위해 자그마치 그와 관련된 언급을 13번이나 하고 있다.62) 그러므로 주일의 첫 날에 모인 것을 언급한 것은 관습적인 일요일 예배의 준수를 알리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가가 본 여행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하나의 역사적인 기록의 연속으로 보는 것이 옳다. (145.1)
 이러한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 사도행전 20:7-12이 일요일 준수와 관련된 것인지를 분석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 모임이 이루어진 상황과 시간과 방식은 모두 하나의 특별한 모임을 암시하는 것일 뿐이지 규칙적인 일요일 예배의 규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본문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렇다. 누가가 그 모임의 날을 언급한 것은 그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1) “바울이 떠나고자 하여(ready to depart)”(20:7),

   (2) 유두고의 기이한 경험과 기적 때문에, 마지막으로

   (3) 그러한 설명이 바울이 진행한 여정을 설명하기 위해 추가적인 중요한 시간적인 참고가 되기 때문이었다. (145.2)
 일요일 준수의 사도적 기원을 옹호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세 번째 중요한 신약의 본문은 요한계시록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1:9) 밧모섬으로 추방당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έν τη κυριακή ημέρα.” 1:10). 찰스(R. H. Charles)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기독교 문헌에서 주의 날이 처음으로 이곳에서 언급 되었”다는 사실은 이 본문에 중요성을 더해 주고 있다.63) 요한은 구약의 “yom YHWH”를 번역하기 위해 칠십인역(Saptuagint, 히브리 성경의 고대 헬라 번역 성경)이나 신약에서 공통적으로 쓰인 “주님의 날”(day of the Lord—ημέρα τον κυρί ο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주의 날”(Lord’s Day—κυρ ιακή ημέρα)이라는 다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문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146.1)
 이 용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요한이 “성령에 이끌려 환상을 본”64) 어느 일요일이 쿨만(O, Cullmann)의 주장처럼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함께 모여 있었던”65) 날인지, 아니면 그 표현이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인지를 본문과 문맥을 고려해 밝혀내는 것이다.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경우는 전자이다.66) 일례로, 스토트(Wilfrid Stott)는 최근의 한 글에서 계시록 1:10은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날인 한 주의 첫째 날에 대한 기독교적 명칭과 관련된 가장 첫 번째 경우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결론짓는다.67)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주의 날(Lord’s Day)”라는 구절에 대해 적어도 두 가지 더 가능한 해석을 인정하며 그 견해들을 변호한다. 최근 일부에서는 그 말은 보통의 일요일이 아닌 부활적 일요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요한이 성령에 감동을 받은 당시는 부활의 연중 기념의 때였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데 그것이 두 번째 해석이다.68) 세 번째 해석은 그 구절이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과 심판을 의미하는 종말론적 날로 이해되었던 구약의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과 대등한 개념이라는 주장이다.69) 이 경우 요한은 성령에 이끌려 영광의 날의 상황 속으로 이동해 그 때의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오심 이전과 이후의 예언적 상징들과 사건들을 보게 된다.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해 어떠한 결론적 진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 세 가지 해석을 지지하는 증거들을 간단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146.2)
 일요일
 “주의 날(Lord’s Day)” 이라는 표현과 일요일을 동일시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이나 신약의 나머지 책들의 내부적 증거에 기초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1세기 중반에 초기 교부들의 증언, 즉, 디다케 14:1, 이그나티우스의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서한(Epistle to the Magnesians) 9:1, 그리고 베드로복음(The Gospel of Peter) 35; 50 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 중에서 오직 베드로복음에서만 일요일이 실수 없이 “Lord’s-κυριακή”라는 구체적 용어로 지칭되고 있다. 다른 두 본문에서는 “이제 주님의 날(ή κυριακή)인 그 밤이 저물었다. ∙∙∙ 하늘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울렸다”(35절); “주의 날(της κυριακής)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 ∙∙∙ 무덤에 왔다”(50, 51절)로 기록되어 있다. 2세기 후반기로 추정되는 이 외경 복음서에는70) 바가나이(L. Vaganay)가 정확히 설명하는 것처럼, “day-ημέρα”라는 명사가 없이 오직 “Lord’s”의 축약된 형태로만 되어 있는데, 그렇게 사용된 것은 그것이 unefa on courante,”71) 즉, 그 용어가 흔하게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147.1)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이미 설명할 기회가 있었던 것처럼,72) 디다케(Didache) 14:1과 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내는 서한(Epistle to the Magnesians) 9:1에는 형용사 “Lord’s-κυριακή”“day-ημέρα”를 암시하거나 수식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첫 번째 예에서 이 표현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방식, 즉 “주의 신조 혹은 명령에 따”른 방식을 묘사한 다. 이후 본문에서 이그나티우스도 그와 같이 날(days) 대신 삶의 방식을 대조하고 있다. 구약 선지자들의 즉각적 언급과 명사 “day-ημέρα”가 부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위의 두 용례에서 “주의”(Lord’s)라는 용어는 “주의 날”(Lord’s day)을 표현한다기 보다는 “주의 삶”(Lord’s life)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적으로 더 합당해 보인다. 그러나 2세기 후반부터는 “주의 날” 혹은 단순히 “주의”라는 표현이 일요일에 대한 현재의 명칭으로 쓰이는 반박할 수 없는 예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그 때 이후로는 “주의 날”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48.1)
 이 문제의 핵심은 계시록이 쓰였던 1세기 말에 일요일이 “주의 날”로 이미 표기되었는가, 혹은 그러한 명칭이 조금 늦은 시기에라도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형용사 “주의”(κυριακός)가 그 때 이미 알려졌다는 것은 로마제국의 기념비들과 파피루스에 새겨진 글들로도 입증이 된다. 또한 그 단어는 “황제의”(imperial)를 의미한다. “주-κύριος”는 황제를 표현할 때도 쓰였는데, 명사는 그에 대한 칭호로, 형용사는 그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쓰였다.73) 이 두 용어는 다이스만(A. Deissmann)이 지적하는 것과 같이 “기독교의 언어와 제국의 법의 공식적 어휘들 사이에 분명한 유사성”이 있음을 보여준다.74)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그 명칭을 오로지 제국 숭배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흔한 표현으로 계속해서 “주-κύρος”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헬라어 구약성경(LXX) 때문에 그 용어가 익숙한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48.2)
 이교 제국의 환경에서 “주의 날”이라는 표현의 존재를 암시하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 표현에 대한 정확한 비유로써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제기되는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매달, 혹은 매주 있었던 “황제의 날”(Σεβαστή ήμέρα)에 대한 의식적 반대를 표명하기 위해 “주의 날”이라는 명칭을 고안해 냈다는 것이다.75) “황제의 날”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공식화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데, “주의 날”이라는 표현도 그 곳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발견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찰스(R. H. Charles)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9.1)
매 달의 첫 날이나 매 주의 어느 한 날은 ∙∙∙ ‘황제의 날’로 불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 주의 첫 날에 대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그 날이 주의 부활과 ‘주의 날’로써 그 날에 예배를 위해 모이던 그리스도인들의 관습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그 날을 명명하는 것에 대한 낯설음을 덜어 주었을 것이다.76)
(149.2)
 “주”(κύριος)로써 교황에 대한 숭배가 그리스도인이 그 용어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가정은 그럴싸하지만, “황제의 날”과 그리스도인들의 “주의 날” 사이에 연관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티메(G. Thieme)가 지적하는 것처럼, “그 황제의 날이 그달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month)과 동등한 것”으로 입증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77) 이러한 성립이 가능하다 해도, 시간의 순환은 여전히 다를 것이다. 두 번째로, “황제의”(σεβαστός)와 “주의”(κυριακός)라는 두 형용사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로르도르프(W. Rordorf)의 날카로운 관찰처럼, 둘 사이의 결합이 존재한다면, “우선은 ‘황제의’(σεβαστός)라는 칭호가 의식적 대조를 통해 적어도 예수에게도 적용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78) (149.3)
 더욱이 “황제의 날”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예배의 날로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하고, 이로써 황제의 날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주의 날”이라는 표현을 정했다는 주장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용어를 쓸 때 아우구스투스의 날을 의식적으로 대조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구약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칭호인 “주”(κύριος)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150.1)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1세기 이전에 매주 일요일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스토트(Wilfrid Stott)는 이러한 관점을 옹호하기 위해 언어학적이고 신학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주의”라는 형용사는 초기 교부들에게서(A.D. 450까지) “~에 속한”(belonging to) 혹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한 주의 첫 날은 하나님께 속한 바 된 것이며 ∙∙∙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날이다. 그 날은 교회에게 주신 그분의 선물이다”라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79) 나아가 그는 “부활은 그리스도를 ‘주’로 선포했”으며 계시록에서 그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9:16)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설명과 더불어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