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모임을 금지하는 칙령이 전 로마제국 내에서 어느 지역까지 적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24)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교 모임이 의혹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야누스(A.D. 117-138) 황제는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화재로부터 니코메디아(Nicomedia)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150명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소방관들의 조합을 구성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플리니의 요청을 기각했다. 황제의 기각 사유는 다음과 같았는데,
“어떤 명칭을 부여하든, 어떤 목적이 주어지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모두 같은 정치적 연합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종류의 의혹을 가지고 바라보았다는 것은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5)에 의해서 지적되는데,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agape)의 만찬이 한
“도당”(factio, 사교 클럽과 같은 종류의 모임)이 된 것이었다는 암시에 대해 저항하였다. 아가페 축제의 본질에 대해 묘사한 후, 이 북아프리카의 감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1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