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서 주일로 제4장 신약의 세 본문과 일요일
 사도들의 시대에 일요일을 준수했다는 증거로 일반적으로 인용되고 있는 유명한 신약성서의 본문들은 고린도전서 16:1-2사도행전 20:7-11요한계시록 1:10 등 세 부분이다.1) 따라서 신약성서에서 일요일 준수가 전제되어 있는지 혹은 그것을 언급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이 세 본문들을 분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121.1)
 A.D. 55년 혹은 56년 봄에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에게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총괄적인 자금 모금 캠페인에 물질적인 기부를 하도록 하는 특별한 계획을 제안하였다(이와 유사한 지도방침을 그는 마게도니아교회와 갈라디아교회에게도 주었다).2) 그 계획은 이렇게 진술되었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 (121.2)
 많은 학자들은 이 본문을 그리스도인들이 정규적으로 일요일에 헌금을 드린 것을 언급한 것이거나 적어도 그 사실을 암시적으로 가리킨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버트슨(A. Robertson)과 플루머(A. Plummer)는 그들의 주석 안에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단언해 놓고 있다. “이것은 사도 시대에 교회가 매주일의 첫째 날을 일찍부터 성별하고 있었음에 대해 증명해주는 가장 초기의 증거이다.”3)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이 가진 긍정적인 기능에 대하여 해석한 내용을 첫째 날에 연보를 저축하는 것과 서로 연관시켜 이 결론을 정당화한다. 즉 “만일에 유대인의 안식일에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일(마 12:12; 막 3:4)이었다면, 하물며 주의 날에는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받았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들을 깨닫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4) 이렇게 일요일에 고린도교인들이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연보를 저축하는 것을 안식일 신학의 복임이 일요일로 전이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사실상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파시피코 마씨(Pacifico Massi)는 고린도교인들의 연보를 단순히 부활 주일에 대한 믿음을 매주일 표현하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일요일은 매주일의 유월절이요, 집회의 날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그러한 헌금을 드리기 위한 가장 좋은 날이 아니겠는가?”5) (122.1)
 피에르 그렐롯(Pierre Grelot)은 바울이 제안한 것처럼 매주일 집에 돈을 챙겨두는 것을 “유대인들이 매주 안식일 전야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빵을 모아두는 것”에 관련시켰다.6) 그렐롯은 설명하기를, 그 두 사례에서 핵심은 모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두 사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적어도 샴마이(Shammai) 학파에 따르면 유대교에서 안식일에는 기부금이 모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식일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가 금지되었는 데 그런 행위들이 미래의 물질적인 풍요를 상장하는 그 날과 대립되기 때문이었다.7) 게다가, 고린도에서 모금되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돈과 관련된 것이다. 그렐롯은 이러한 차이점들을 거의 문제 삼지 않는데, 왜냐하면 고린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모금은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것(고후 8:6-7)일 뿐만 아니라 신성한 헌금을 드리는 것(고후 9:12)이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일요일 예배의 필수적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8) (122.2)
 모스나(C. S. Mosna)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9:12에서 그 “연보”“봉사”(λειτουργία, 예배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중 하나 역자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금은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와 관련된 일요일 예배 봉사와 연결되어져야만 한다고 논증하면서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게다가 “매주일 첫날”이라는 표현이 “셈족 어투”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마도 “그러한 날에 대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적인 표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그는 추측한다.9) (123.1)
 이 모든 설명들은 그 “모금”을 일요일 예배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공통된 노력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찰스 호지(Charles Hodge)가 표현한 것처럼 그것은 다음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준다. (123.2)
주일의 첫째 날에 이행하도록 요구한 것에 대한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날에 그리스도인들의 만남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고, 각자가 그들의 일주일의 수익으로부터 저축해 두었던 것을 교회의 공통 기금으로 모아둘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10)
(123.3)
 이처럼 바울의 기금 조성 계획으로부터 일요일 준수의 정규적인 형식을 추론해 내고자 하는 시도는 창의력과 독창성이 돋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그 구절이 제공하는 실제적인 정보에 의존하기 보다는 추론된 요지들에 더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 구절에서 기금을 저축하는 것은 “스스로”(παρ εαυτώ)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집회에 대한 어떤 암시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스탠리(A. P. Stanley)가 진술했듯이, 이 구절은 “그 모금이 개인적이고 사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11) (123.4)
 이것은 나중에 모금할 돈에 대해 규정하는 것이었고, 바울 자신이 걷어야 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던 바로 그 것(고전 16:2) 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혹은 자신의 집에” 저축하라는 지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12) 하지만 그런 반대는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음에 나타나는 동사, 즉 “저축하다 혹은 연보를 하다(θηαυρί ζων)”는 사도가 거기에 도착할 때까지 그 돈이 각 개인들의 집에 비축 해두고 있었던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저축해 두었던 것을 모금해야만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었다.13) (124.1)
 그 당시에 교회에 금고가 없었기 때문에 돈은 사적으로 저축해두었어야 했다는 설명도 있는데 이것 역시 불충분한 설명이다.14) 사도들이 정한 첫 번째 제도는 계속적으로 들어오는 예물들을 관리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책임지게 하기 위해 헬라인들로 구성된 집사들을 선임하는 것이었다(행 6:1-6). 바울은 집사의 직무를 인지하고 그러한 직무를 책임 맡고자 하는 사람의 자질들에 대한 목록을 제시한다(딤전 3:8-13).15) 고린도교회 공동체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직무들 중에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고전 12:28)이 있음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지역 교회에 자금을 관리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욱이 바울은 고린도교인들 스스로 그 돈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갈 사람들을 선택하여 승인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고전 16:3-4), 이 사실은 그 교회가 재정적 문제를 관할할 자격이 있었음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124.2)
 또한 기금을 사적으로 저축하여 둔 것은 아직 공식적인 예배 장소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16) 하지만 그런 논증도 신뢰 할만한 것은 되지 못하는데, 바울은 그의 계획이 사적으로 수행되어지기를 바랄 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 즉 “너희 각 사람이”(έκαστς υμων παρ εαυτώ) 수행하기를 바란다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 가정집에서 집회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은 그 모금활동을 그 지역의 특성상 사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사실, 같은 편지에서 바울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고전 11:18; 20, 33, 34절 비교)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에 개인적으로 돈을 저축하여 두는 것과 역시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모아두는 공적인 헌금 사이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25.1)
 만일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일요일에 함께 예배를 드렸다면, 바울이 개인적인 예물을 가정에 저축하여 두라고 한 권고는 모순된 것으로 나타난다. 만일에 일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면, 그들은 왜 그들의 헌금을 그 날에 가정에 비축해야 했는가? 그 돈을 일요일 예배를 드릴 때 가지고 나왔어야 되지 않았는가? “적은 액수를 헌금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돈은 가정에 저축하여 둔 것이었다는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논거는 정당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7)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충분한 예물을 드릴 수 있을 때만 드림으로써 적게 드려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피하고자 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제임스 모펫(James Moffat)의 제안에도 동일한 결함이 나타나는데, 그는 “은혜를 베푸는 일이 예배 시에는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샴마이 학파의 견해를 아마도 바울이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제안한다.18) (125.2)
 이것은 바울의 관대한 정신에 걸맞지 않는 도량이 좁은 랍비들의 정신이 그에게도 있다고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욱이 윌리엄 바클레이(William Barclay)가 지적하고 있듯이, “바울은 이 연보를 묘사하기 위해서 적어도 9개의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다.”19) 이 단어들 중 몇 개, 즉 “참여함”(κοινωνία, 고후 8:4; 9:13), “섬기는 일”(δακονία, 고후 8:4; 9:1, 12, 13), “직무”(λειτουργία, 고후 9:12), 그리고 “제물”(προσφορά, 행 24:17)등의 단어들은 명확하게 종교적 예배와 관련된 전례(典禮)적인 용어들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예배 시간에 헌금을 드리거나 기탁하는 것을 비종교적인 행위로 간주했다고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20) 그렇다면 일요일에 모인 회중들이 아닌 개인들에게 모금하도록 바울이 제안한 것은 그 날에 정규적인 공식 예배가 드려지지 않았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126.1)
 만일에 바울이 주일 중 첫째 날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일로 여겼다면, 그는 아마도 그 날을 주의 날(κυριακή ημέρα)로 명명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같은 편지서(고전 11:20)에서 주의 만찬의 명칭과 특성을 명명하기 위해서 “주님께 속한”(κυριακός)이라는 형용사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었다면, 주의 날에 대한 명칭과 예식이 주의 만찬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주장은 모두 믿을만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주님께 속한”이라는 형용사를 일요일이 아닌 성만찬을 묘사하는 것에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용어가 익숙하게 사용되어지기는 했지만 주일 중 첫날에 적용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21) (126.2)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때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고전 11:18, 20, 33, 24; 14:23, 26절 비교), 아마도 성만찬예식은 서로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매주 공동체가 정한 개인적인 계획에 따라서 거행되었을 것이다. 이 계획은 그리스도인들의 저녁 집회가 사교클럽(hetaeriae)의 모임으로 오해되었었다는 사실 때문에 장려되었었는지도 모른다. 사교클럽의 모임은 정치적인 음모의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에 로마법에 의해 금지되었던 비합법적인 사교모임(동지들의 사교클럽)들을 말했다. (127.1)
 비투니아(Bithynia)의 총독 플리니(Pliny)기 트라야누스(Trajan)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A.D. 112년)은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준다.22) 그 편지에서 총독은 그리스도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따라야 할 절차를 지시해 주기를 황제에게 요청하면서, 고문을 겸한 장기간의 심문을 통해서 그가 찾아 낸 그리스도인들의 “죄 몫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진술하기를 그리스도인들은 ”지정된 한 날(stato die)에 날이 밝기 전“ 종교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데 익숙해져 있었다고 했다. 같은 날 뒤에(분명히 저녁에) 그들은 ”평범하고 해가 없는 음식을 나누어 먹기 위해 다시 만났다. 그런 후 그 총독은 추가하기를 “당신의 명령들에 따라 교제(hetaeriae)를 금지한 나의 칙령이 내려진 후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그만두었다”고 했다.23)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지정된 날 저녁에 공동 식사를 위해서 모였다는 점에서 분명히 유사한 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교클럽이라는 의혹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127.2)
 사교모임을 금지하는 칙령이 전 로마제국 내에서 어느 지역까지 적용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24)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교 모임이 의혹의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트라야누스(A.D. 117-138) 황제는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화재로부터 니코메디아(Nicomedia)시를 보호하기 위하여 150명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소방관들의 조합을 구성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플리니의 요청을 기각했다. 황제의 기각 사유는 다음과 같았는데, “어떤 명칭을 부여하든, 어떤 목적이 주어지든, 공동의 목적을 위해 함께 동맹을 맺은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모두 같은 정치적 연합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이런 종류의 의혹을 가지고 바라보았다는 것은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5)에 의해서 지적되는데,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agape)의 만찬이 한 “도당”(factio, 사교 클럽과 같은 종류의 모임)이 된 것이었다는 암시에 대해 저항하였다. 아가페 축제의 본질에 대해 묘사한 후, 이 북아프리카의 감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127.3)
그리스도인들의 집회가 불법적인 집회들과 같다면, 그 당연히 받아야할 대가를 주고, 불법적인 것으로 판단하라. 만일에 비밀 당파를 기소한 것과 같은, 그 어떤 고소 내용이라도 그 집회에 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 집회를 정죄하라. 그러나 우리의 집회로 인해 누가 고통을 받은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서로 모여 있지 않았을 때의 우리의 모습 바로 그대로 우리의 집회에 참석한다. ∙∙∙ 경건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그 집회에 모일 때, 그대는 그것을 도당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집회소,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러야 한다.25)
(128.1)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적 만찬들이 타이에스틴(Thyestean) 축연들이었다는 고소와26) 결부해 불법적인 종류의 집회라고 보는 이러한 일반적인 혐의는 바울이 왜 그 모임의 시간에 대한 언급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러한 의혹의 근원을 피하기 위해서 고린도교인들은 매 주마다 주의 만찬을 위한 저녁 모임의 날짜와 장소들을 곧잘 변경하였던 것 같다. (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