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1 부 진영 가운데 계신 예수님과 함께 (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5. 절반(BEQ’A)의 기초 (나의 모든 몸값은 그리스도의 것임)
 주께서는 이같은 구속의 대가의 세 국면을 설명하셨다. 그것은 “속전”(코페르:kopher)으로 불리워졌는데, 대속죄일(욤 킵푸르:Yom Kippur)에 그 이름이 사용된 주요한 어근(카파르:kaphar)에서 유래하였다. 그것은 노아가 방주를 방수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덮개를 묘사함에 있어서 “역청을 칠하는 것”(창 6:14)으로 표현되었다. 이사야는 그것에 철필을 그어댐으로써 계약을 “무효화시키”거나 “사문화시키”는 일에 사용하였다(사 28:18). 그 말은 언약의 조건들을 삭제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것은 자주 “제하”거나 “속(贖)” 하는 것(사 6:7; 22:14; 27:9)으로 번역되며,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로 말미암아 제공되는 덮개를 가리킨다. 그분의 죽으심은 회개한 죄의 기록을 말소하거나 제하거나 “가리”웠으며(출 30:15; 레 4:20; 16:18, 33; 요일 1:9), 인간의 빚을 갚아 줌으로 그의 “차용증서”나 빚 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골 2:13, 14). 갈바리에서 거두신 그분의 승리의 결과는 흑암의 권세—그것이 애굽에서 파멸되었듯이—를 약탈한 것이었다. 이 승리는 이스라엘을 속량하였다. (65.2)
 베카“헌물”(terumah, 출 30:13, 14; 비교, 25:2, 3)또는 “선물”로도 불리워졌다. 이 말은 하나님께 드려진 해약의 서원에도 사용되며, 감사함으로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진 헌납의 성격을 가리킨다. (65.3)
 베카는 기념물이었다
 베카는 또한 “기념”(zikaron, 출 30:16)으로도 불리워졌는데, “기억하다”는 어간에서 파생되었으며, 기념물을 암시하였다. 성경에서 “기억하다”는 말은 항상 회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상을 띠고 있다. 십자가의 강도가 구주께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였을 때, 그는 이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예레미야의 자칭 암살자들이 바라는 바는 그들의 희생자는 “다시 기억되지 못”(렘 11:19)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종종 책(말 3:16; 에 6:1)에 기록한다(출 17:14)는 관념과 결부되어 사용되거나, 또는 그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대제사장의 흉패에 붙은 기념의 보석(출 28:12; 39:7)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65.4)
 베카가 모여졌을 때, 그 은은 녹여져 은박으로 만들어진 다음, 일백 개의 조각목 “받침”(출 38:27, 28)을 싸는데 사용되었다. 이것들은 성막을 둘러싼 50개의 널판을 받치는 받침대 또는 기초를 형성하였다. 두 받침대는 각 널판을 받쳤으며, 널판의 끝에 있는 장부(tenon)를 둘러쌌다(출 26:17, 21, 25, 32). 그것들은 무게를 분산시키고 벽이 모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건조되었다. 성막에 대해서도, 영혼에 대해서 말했듯이,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욥 33:24)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6.1)
 그 은은 또한 뜰을 둘러싼 60개의 기둥들을 장식한 뚜껑이나 기둥머리뿐 아니라 휘장을 거는 아홉 개의 기둥들의 받침대에 사용되었다(출 38:28).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이 빛나는 은으로 이루어진 이 구역들을 바라볼 때, 그는 자신의 해방은 값으로 산 것이며 그의 헌신은 “영혼의 속죄”(출 30:12, 15, 16; 속전과 속죄는 동일한 히브리어의 번역이다)를 가져온 “속전”에 의해서 보증되었음을 회상하게 될 것이다. 그의 앞에서 은 받침대를 하고 서 있는 성막은 그의 보증이었다. (66.2)
 “속전”은 성소의 널판을 보존하는 받침대가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통찰력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속의 대가, 곧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생애가 온 성막과 그것이 위하여 세워진 모든 것의 기초가 됨을 상기시켰다. 성소에 사용된 모든 은과 마찬가지로, 베카의 은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눈길을 갈바리의 사람의 완전한 순종으로 향하게 하였다(선지자와 왕, 410). 다윗이 제단을 세우기 위하여 오르난(아라우나로도 불리워짐)에게서 모리아 산에 있는 “타작 마당”을 샀을 때, 그는 그 값으로 은 50개를 지불하였다(삼하 24:18, 21, 24). 그가 나중에 오르난의 전 “기지(基址)”를 샀을 때는 금 600세겔을 지불하였다(대상 21:22, 25). 성전은 궁극적으로 이 장소에 세워졌다. 성막의 50개 널판과 아홉 개 기둥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불된 속전에 의하여 지탱되었다. (66.3)
 베카는 속전이었다
 이 사상은 베카에 대한 가장 의미 깊은 묘사로서 “속전(蹟錢)”, 실제로는 “속죄의 은”(출 30:16)을 강조한다. 은은 인간을 위하여 구원을 이루신 구주의 순종의 미덕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당신의 하늘 아버지의 뜻에 일치된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분의 희생을 효력있게 하였으며 모든 희생제도를 폐하였다(히 10:9, 10). 그분의 순종은 구속의 화폐였다.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은전 너머를 보고 베드로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 19)고 외쳤다. 이 피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의 생애를 나타내었으며, 반 세겔의 은으로 상징되었다. (66.4)
 복음서에는 십중 팔구 이 반 세겔 또는 베카의 속전이었을 성전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아마도 베드로의 집에 계셨을 때, 그 지방의 세리가 그 제자에게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자신이 대답하는 말의 의미를 거의 생각해 보지 않고 주께서 내신다고 불쑥 말하였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와 예수님께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주께서는 그에게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마 17:24~27)라고 물으셨다. (66.5)
 베드로는 다시 주저하지 않고 “타인에게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고 선언하셨다. (67.1)
 요구된 세금은 가이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다. 베드로는 바로 얼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 16:16)라고 증언하였다. 그는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변화산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증하시는 말씀을 듣기까지 했다(마 17:5). 이제 그는 자신의 큰 실수를 깨달았다. 당연히 아들께는 성전세를 낼 그 어떤 책임도 면제였다. 그분께서는 구속(擴)이 필요치 않았다! 그분은 성전의 주인이셨다. (67.2)
 레위인들이 장자를 대신하였다
 고대에는 레위인들이 장자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제사장과 봉사자들이 되었으므로(민 3:6~10), 이 세금이 면제되었다. 그리스도는 “만유의 후사”이셨다.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 이신 그 분을 위하여 어떻게 속전이 치러질 수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당신의 제자 베드로가 불필요하게 당황하지 않도록 하셨으며, 즉시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마 17:27)고 하셨다. (67.3)
 예수께서는 한 세겔로 두 베카 즉 이중 속전을 지불하셨다
 이제 영원하신 아들께서는 그분들께만 알려진 보고(寶庫)로부터 당신의 영원하신 아버지께—“나와 너를 위하여”—이중 속전을 지불하셨다. 예수께서 얼마 전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말씀하셨던 대상이요, 세번씩이나 부인하던 밤에 그의 주님을 저주해야 했던, 그리고 이미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인정했던 그와 당신 자신을 동일시 여기신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우리 각자가 베드로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속전을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67.4)
 그리스도는 성전에 온전한 세겔, 곧 두 베카를 바친 것으로 기록에 남은 유일한 분이시다. 엄격히 말해서 이것은 합법적인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속전을 매수하거나,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도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시 49:7)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 당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셔서 “장자”(히 12:23)가 되심으로, 그리스도는 “두 몫”(신 21:15~17)을 받을 권리를 얻으셨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하며, 그분의 순종은 우리를 위하여 받아들여진 바된다”(부조와 선지자, 372), 그분은 그와같이 “두 몫”을 줄 능력을 부여 받았다.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완전한 순종의 고귀한 생애를 바치셨으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 성경이 은으로 상징한 이같은 보화를 제시하셨다.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시 49:8). (67.5)
 영원부터 사랑이신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다. 이 엄청난 사실들이 모든 성소 예배의 기초(은 받침)를 이루었다. (68.1)
 하나님의 성전의 은 받침대들은 기둥의 머리들과 마찬가지로,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을 통하여 구원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보혈로 사신 바되었다는 기별을 선포하였는데, 그것은 심홍색 글씨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라는 그분의 약속의 성취를 기록하였다. 성소의 벽이 세워지고 영원한 예배가 시작될 수 있기 전에,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선지자와 왕, 410)의 은 받침대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을 유지하기 위하여 바로 땅의 흙 먼지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분의 완전한 순종의 확실한 기초를 형성하는 이 베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귀중”하다. (6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