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히브리서 연구) 제 4 장 하나님의 안식 (2부)
 “그는 인성을, 그것의 연약성들과 그것의 경향들과 그것의 시험 거리들을 지닌 채 취하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다.”24 (116.3)
 “그리스도가 육체 안의 죄성을 만나 정복하시고 그의 같은 육신으로 의를 드러내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계셔서 육체 안의 죄성을 정복하고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의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25 (116.4)
 2) 품성에 죄가 없으셨던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타락의 오점이나 성향이 있었다든지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그분이 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손톱만큼도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거룩한 자’라 일컬음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 있었지만 죄가 없으셨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에게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신비이다.”26 (116.5)
 3) 유전되는 성향과 악한 성향과의 차이점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유전에 의해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을 “유전되는 성향”(inherent propensities)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악으로 기울어지는 “경향”(tendency)이나 “성향”(propensity) 자체는 죄가 아니다. 이것은 시험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시험으로 구부러지려 하는, 유혹을 받으려 하는 성질이다. 만약, 이것을 저항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 “유전적인 성향”은 시험에 굴복할 때만 “악한 성향”(evil propensities)이 된다. (117.1)
 윌리암 하이드가 말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비록 타락한 인류의 연약함을 지셨으나, 그는 인류가 타고나는 육신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향(tendency)과 성향(propensity)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악한 성향’(evil propensity)이 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27 (117.2)
 “그리스도의 죄 없는 본성에 우리의 죄 있는 본성을 취하셨다(take upon, 쓰셨다)는 것과 ‘죄의 성향’이 같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비록 우리가 죄인으로서, 타고난 불순종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다 하여도(SDABC, Vol.. 5, p. 1128), 그리하여 악한 성향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죄 있는 본성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떤 하나의 죄의 성향을 존속 시킬 필요는 없다”(상동, Vol.. 7, p. 943). 엘렌 화잇은 “악한 성향”(propensities)을 “경향”(tendencies)이나 “타고난 경향”(inclination)과 동등시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유전의 대법칙의 작용과 결과”로서 모든 사람이 지니는(have) 것이며, 우리가 반드시 그것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 유혹들과의 싸움을 당신 자신의 전쟁으로 삼으셨다. 그 여인은 그리스도께서 “경향성(inclination)을 저항”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하였다(SDABC, Vol.. 7, p. 930).28 (117.3)
 4) 결론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성육신의 목적은 우리를 “순수한 연약성”에서 구해내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오는 내 지체 속의 한 법”(롬 7:23)인 내 안의 죄로부터 구해내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죗된 본성을 취하심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음으로 생긴 악한 성향을 가지신 적이 한 순간도 없었다. 그러므로 죗된 본성이나 죄로 기울어지고자 하는 경향과 성향은 죄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시험과 유혹에 해당하는 성질일 뿐이다. 인간의 본성의 연약함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정복될 수 있다. 예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시험을 이길 수 있다. (118.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셨다. 그는 인성을 친히 입으셨고, 모든 점에 있어서 인간이 시험을 당하는 것과 같은 시험을 한결같이 받으셨다. 그분도 죄를 범하실 수 있었고, 타락할 수도 있었지만 그분 속에는 단 한 순간도 악한 성향이 없었다. 아담이 에덴에서 유혹으로 공격을 받은 것같이 그분도 광야에서 유혹으로 시험을 받았다.”29 (118.2)
 3. 우리와 등등한 그리스도의 인성
 1) 동등한 입장
 재림교회 전통적인 선구자들(E. J. Waggoner, 1974 장년 교과, Robert J. Wieland)은 우리의 육신과 예수님이 동일한 것이라고 믿었다. (119.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homoioma) 되셨고(made in the likeness of men)”(빌 2:6~7). 이처럼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인성과의 동일성(identity)을 말하고 있다. (119.2)
 반대로 유사성을 강조하는 이론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죗된 본성을 취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우리와 단지 유사한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와 완전히 같은 인성을 취하셨다는 데에만 우리의 구원의 소망이 있다. (119.3)
 빌립보서 2장에서는 두 모양(하나님의 모양과 사람의 모양)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루며 히브리서 1장2장에서는 두 본성(하나님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양을 취하셨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더 큰 일을 행하셨는데 곧 사람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다.”30 (119.4)
 하나님의본체(morphe)(6절)와 종의형체(morphe)(7절)에 사용된 헬라어 모르페‘형상’이나 상징적으로 ‘본성’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인 형체와 더불어 ‘본질적인 속성과 성품’을 뜻하는 단어이다. (119.5)
 바울은 예수께서 신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것처럼, 인성에 있어서도 인간의 본체(형상)요 본질적인 속성(본성)을 소유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결코 인간의 모양만 취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과 같이”(homoioma) 되셨다. 즉 동일하게 되셨다. ‘같이’의 헬라어 호모이오마(homoioma)는 ‘유사함’(similarity)이나 ‘동일함’(identity)을 나타내는 단어이지만, 본 절에서는 그가 하나님과 동등하시다고 할 때의 동등의 의미와 대조하여 사람과도 또한 같은 동등의 의미로 동일하게 되셨음을 설명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참으로 합리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죄를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119.6)
 2) 그리스도는 우리와 단지 비슷하다는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