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영원 전에 세운 하나님의 결정
 인간의 구원은 죄가 발생한 후 사건들이 예기치 않게 돌아가자 필요성을 느껴 만들어진 사후적 고안이나 즉흥적인 임기웅변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서이 세계가 세워지기 전에 마련된 것이며(고전 2:7; 엡1:3, 14; 살후 2:13, 14)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렘 31:3). (334.1)
 이 계획은 영원 전과 역사적 현재 및 영원한 미래를 포함한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을 지니도록 하기 위한 선택과 예정, 구속과 용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만물의 통일, 성령으로 인침, 영원한 유산을 받음, 그리고 영화롭게 됨(엡 1:3-14) 같은 실재들과 복이 포함되어 있다. 예수의 고난과 죽음은 그 계획의 중심으로서, 우발적인 역사적 사건도 인간의 결정에 의한 결과물도 아니며,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행 4:27, 28). 예수는 진실로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제임스왕역〉)이다. (334.2)
 이 세상에 오신 이유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 계획의 본질과 일치한다. 그는 율법을 성취하기 위하여(마 5:17), 죄인을 부르기 위하여(마 9:13),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마 11:19), 잃은 자를 찾아구원하기 위하여(눅 19:10;참조 딤전 1:15)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그의 생명을 그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셨다(막 10:45). 그가 한 모든 것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것이며(요 5:43), 그의 뜻에 따른 것이다(30절). 그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로서(요 1:14, 18; 14:7-10)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시며(6절), 그를 믿는 모든 자를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요 3:15-17;참조 대쟁투 I.A). (335.1)
 B. 시간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들
 1.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과 봉일성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은 시간 속에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서이다 비록 성경이 언약을 복수(複數)로 언급하고 있지만(롬 9:4; 갈 4:24; 엡 2:12) 성경에는 기본적으로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의 언약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성격상 약속이지만(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지 인간에 의해 얻는 게 아니다), 인간에게서 믿음의 반응과 순종을 요구한다. 이 언약의 중심은 하나님의 확고한사랑이며, 이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 언급되고, 때때로 그 언약과 동일시된다(신 7:9; 왕상 8:23; 느 9:32; 단 9:4). 언약이란 말은 복수로 사용 될 경우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에 처한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언약을 재(再)진술함으로써 구원의 목적을 추진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언약의 각 형태는 구원이라는 단일 목적을 위하여 각각 제 역할을 한다. (335.2)
 2.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영원한 언약
 아담 언약은 원복음(protevangelium, 복음의 첫 선언)이라고 불리는 창세기 3:15의 약속인데, 이에 따르면 그 약속의 궁극적 의미는그 “씨”(“후손”이 히브리어로는 “씨”로 되어 있음—역자 주)인 그리스도께서 악한 자를 정복하신다는 것이다(롬 16:20). 노아 언약은 은혜와 생명의 약속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가진 이 땅의 피조물들을 보존하겠다고 맹세하신다(창 6:18-20; 9:9-11). 이 언약은 세상의 모든 것을 위한 자비의 약속으로서 영원한 언약으로 불린다(16절). “영원한”의 개념은 또한 아브라함의 언약(창 17:7, 13, 19, 왕상 16:17; 시 105:10), 안식일을 강조한 시내 언약(출 31:16), 다윗 언약(삼하 23:5; 사 55:3; 겔 37:26, 27),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새 언으두 약속(렘 32:40; 31:33. 겔 16:60에서 재진술됨)과 예수의 희생(히 13:20)에서도 사용되었다. (335.3)
 3. 아브라함 언약, 시내 언약, 다윗 언약
 아브라함과 맺은 은혜의 언약(창 12:1-2; 15:1-5; 17:1-4)은 구원의 역사 전 과정의 기초가 된다(갈 3:6-9, 15-18). 아브라함의 셀 수 없는 후손들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그의 한 후손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언급한 대로(16절) 하나님은 그의 씨를 통하여 세상을 축복하실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씨에 속하게 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됨과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할례는 믿음으로 세워졌으며(창 15:6; 롬 4:9-12)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표가 된다(창 17:1). (335.4)
 시내 언약은 속박에서 구속되는 사건을 배경으로 주어졌고(출 19:4; 20:2; 신 1-3장) 그 안에 속죄와 용서를 위한 하나님의 제물이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또한 은혜의 언약이며 아브라함 언약(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 출 19:5, 6창 17:7, 8; 큰 나라: 출 19:632:10과 창 12:2; 그리고 순종 출 19:5창 17:9-14; 22:16-18 및 신명기 전체)의 주된 강조점을 되풀이한 것이었다. 백성들이 시내 언약을 깨뜨리자 모세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이전에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언약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다(출 32:13). 시내 언약에서는 특히 율법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아브라함 언약 안에는 그 언약을 성취할 한 백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음이 암시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의 순종을 통하여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나라”(출 19:6)가 되기 전에는 세상에 축복이 될 수 없었다. (335.5)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겔 37:24-27) 및 모세 언약(삼하 7:22-24)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 언약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방백과 왕이 되어(8절;렘 30:9; 겔 37:24, 25) 하나님의 집 혹은 성소를 세운다(삼하 7:7-13; 겔 37:26-28). 이곳에서 하나님, 곧 아브라함 언약과 시내 언약에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던 그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거하신다. (336.1)
 4. 새 언약
 새 언약의 약속은 예레미야 31:31-33에 처음 나타난다. 그 약속은 유배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및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한 복을 배경으로 한다. 시내에서 언약이 깨졌을 때 이스라엘이 포로로 유배되어 갔으므로(32절), 다시 맺은 이 언약은 그들을 보존하고 미래를 위한 그들의 희망이 된다. 새 언약의 내용은 시내 언약의 내용과 같다. 똑같은 하나님—백성 관계가 있고 똑같은 율법이 있다(33절). 시내 언약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낡은 것이 아니라 깨졌다. 이 언약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심(34절)과 그의 백성들의 마음에(렘 31:33) 언약의 율법과 하나님에 대한 존중심(렘 32:40)을 넣어주신다는 보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백성(34절)은 하나님을 아는 친밀한 지식을 갖게되어 시내 언약은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실현된다. 에스겔 36:25-28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범세계적으로 적용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새로운 순종의 원동력으로서 그들의 마음에 그의 영을 주시기 때문이다. (336.2)
 신약에서는 용서(렘 31:34)와 성령(겔 36:37)에 관한 이러한 강조와 조화를 이루어 새 언약의 개념이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피로 확장되고, 생명을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으로 확장된다(고후 3:6). (336.3)
 5. 옛 언약
 “옛 언약”의 개념은 고린도전서 3:14에서만 명확하게 언급되었으나 바울이 갈라디아서 4:24과 히브리서에서 “첫 언약”(8:7, 13; 9:1, 15, 18)과 “두 번째 언약”(9:7), 그리고 “더 나은 언약”(7:22; 8:6)을 언급하면서 사용한 “두 언약”이라는 말에 암시되어 있다. (336.4)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언급된 언약은 바울이 그리스도보다 율법을 중시한 유대화한 그의 적들에게 반론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아야만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런 논쟁적인 문맥에서 고린도후서 3:14의 옛 언약은 눈에 수건이 덮인 채 읽히는, 다만 율법이 조문으로서 비기독론적으로 읽히는 모세의 시내산 율법(15절)을 나타낸다. 이처럼 그것은 죽이는 일을 한다(6절).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질 때(15, 16절) 율법의 참된 내용과 의미를 깨닫게 되며, 드러나는 것은 율법의 영광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주의 영광이다(18절). 율법 조문밖에 없을 때와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점은 주의 영과 관련이 되면 자유(17절)와 생명(6절;참조 롬 7:6)이 온다. (336.5)
 갈라디아서의 관점에서는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제1 순위인 하나님과의 믿음의 관계와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율법은(그것의 본래 의도인) 생명으로 인도하는(신 6:24; 롬 7:10) 그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고 도리어 저주에 이르게 한다(갈 3:10; 신 27:26을 인용함). 바울이 갈라디아서 4:24, 25의 속박과 시내 언약을 동일시 한 것은 이러한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시내 언약은 본래 이스라엘을 속박에서 구속한다는 약속, 즉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되게 하겠다는 그의 약속을 바탕으로 하며 속죄와 용서를 가르치고 있는 제사제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우리를 속박하는 제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율법이 약속으로부터 분리되고 믿음이 행함으로부터 분리될 때 언약은 왜곡되고 그 결과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노예 상태에 이른다. 약속과 율법의 올바른 관계는 갈라디아서 3:15-4:7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의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믿음으로 받아들인 아브라함 언약의 은혜를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시내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상반되지 않으며(갈 3:21),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으로써 그 약속을 촉진하여(foster)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다(22절). “초등교사”(custodian)로서의 율법의 역할은 그리스도와의 성숙한 관계가 형성될 때 끝난다(25절; 4:1-5). (3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