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아직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시다. 그러나 재림 시에는 악인들이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숨으려 할 것이다(계 6:16). (482.9)
 어린 양의 진노는, 고통스럽게 압제받아 온 그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헌신적인 사랑에 기초되어 있다. (483.1)
 예수님은 지금도 쉴새없이 자신의 양떼를 돌보시는 목자이시다(요 10:11; 사 40:11). 그의 상징적인 “철장(鐵杖)”(계 19:15)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이리를 쫓는, 끝이 쇠로 된 목자의 지팡이를 말한다. (483.2)
 예수님과 그의 왕관
 요한이 본 묵시에서는 예수님이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을 쓰고 계셨다(계 19:12). 용(계 12:3)과 짐승(계 13:1)이 쓴 일곱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군주적 권위에 대한 신성 모독적인 흉내이다. 사단이 “이 세상 임금”(요 12:31)이 된 것은 순전히 그가 이 땅의 정당한 주인에게서 왕권을 갈취했기 때문이다. (483.3)
 비록 예수님께서 그의 아버지와 함께 언제나 우주의 왕으로 지내 오셨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자들을 데리러 오시는 14장 14절의 모습을 제외하면 이 앞서 어느 곳에서도 왕관을 쓰신 모습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언제부터 그는 이 왕관을 쓰기 시작 하셨는가? (483.4)
 다니엘 7장 13, 14절에 보면, 1844년에 시작하여 재림 직전에 끝나는 재림 전 심판의 마지막에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곧 옛적부터 항상 계시는 이로부터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게 되어 있다. 재림 전 심판의 결과로, 그리고 세 천사의 기별의 전파로 그의 교회가 그를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한 개인들로만 이루어졌을 때에 비로소 이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진실로 그리스도의 것이 될 것이다(결론적으로 말해서 왕국이란 그 백성들이 임금에게 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할 때에만 그 임금에게 속하는 것이다). (483.5)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을 받기가 바쁘게, 고통당하는 그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을 땅으로부터 구출하여 자신의 왕권을 함께 누리기 위하여 급히 “백마”를 타고 이 땅을 향해 달려 나가셨다. (483.6)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재림 전 심판의 기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빛나고 깨끗”(계 19:8)하게,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교회가 된다(엡 5:26, 27). 교회는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곧 “성도의 옳은 행실”을 입고) 자신을 온전히 “예비”한다(계 19:7, 8). 예수님은 새예루살렘으로 상징된 그의 교회와 더불어 혼인한다. 이 혼인식(눅 12:35~37) 직후에 예수님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종들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시키기 위해 그들을 데리러 이 땅에 재림하신다(계 19:9). (483.7)
 천사들의 군대들
 재림 때 예수님을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는 천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람산 설교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재림 때에 “모든 천사”가 그를 수행하리라고 하셨다(마 25:31). 이 천사들을 구원받은 무리들을 모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모으리라”(마 24:31). (483.8)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의 눈을 통하여 하늘을 가득 메운 천사들이 상기된 모습으로, 집에서 또는 피신처나 무덤으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들을 호위하여 예수님이 좌정해 계신 구름 위로 데려가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483.9)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 하늘로 올라간 성도들로 이 하늘 군대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75~79, 212~218에서 살펴보았듯이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곧 천국에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483.10)
 상징적, 문자적 언어 표현
 천년기 단원에서 제일 처음 나타나는 장면이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483.11)
 말, 군대, 검(칼) 등에 관한 언어상의 표현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다른 많은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또는 인상주의적인 표현들이다. 14장 14~17절에서는 낫을 들고 그의 의로운 곡식을 추수하는 추수꾼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감람산 설교에서는 자신의 재림을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으로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셨다. (484.1)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하여 한층 문자적인 표현으로 재림을 묘사하셨다. (484.2)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다. 예수님은 제사장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대제사장을 향해 엄숙히 맹세하셨다.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인 그 공포의 목요일 밤에 대제사장의 궁전에서 발하신 이 예언의 말씀을 똑똑히 들었으며 이제 그 말씀을 요한계시록 1장 7절에 포함시켰다. (484.3)
 사도 바울도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7절에서 문자적인 뜻으로 재림을 설명했다. 그는 “주의 말씀” 의 권위에 근거하여 재림에 관한 것들을 주장했다. 그는 말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좋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라틴어 번역에는 ‘우리가 휴거되리라’)”하였다. (484.4)
 신약 성경을 보면 천사들도 예수님께서 눈에 보이도록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땅에서 들리워 하늘로 올라 가셨다. 예수께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행 1:9). 그러나 그들의 곁에 선 두 천사가 제자들의 소망을 보증해 주었다. 두 천사는 보통 “사람”같이 보였으나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하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흰옷”을 입고 있었다. 두 천사는 요한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말하였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9~11). (4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