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신약의 난해 문제 짙문 62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어떤 종류의 포도주를 만드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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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하니라”(요 2:10). (307.1)
 예수의 첫 번째 기적으로 기록된 물을 포도주로 만든 기적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난다(2:1~11).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발효된 포도주였는가, 아니면 순수한 포도즙이었는가? 기적이 매우 간단하게 묘사되었지만 항아리에 채워진 물이 모두 포도주로 변해 대략 400리터쯤 되었다.1 포도주가 발효되었는가? 그 정도 양의 좋은 포도주라면 며칠간 계속하여 매일 100명의 손님도 취하게 할 만큼 충분한 양이었다. 예수께서 이렇듯 술 취하게 하는 잔치를 위한 토대를 놓았단 말인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그분께 포도주가 제공되었지만 그것을 거절하셨다는 사실(막 15:23)을 상기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2 (307.2)
 고대의 포도주 보존법
 2:3, 9, 10에서 “포도주”(wine)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오이노스)는 발효된 포도주나 발효되지 않는 포도즙을 모두 가리킬 수 있다.3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음료를 가리키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선 본문의 여러 중요한 사항 및 역사적인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 10절의 번역에 비추어 판단해 볼 때 연회장이 지금까지 발효된 포도주가 제공되고 있었다고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관행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의 의미라면 그가 지금 술이 취해 귀머거리가 된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셈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도 결혼 축하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역본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취하다”라는 단어(헬라어 메쒸스코)는 꼭 술을 마신것이나 취한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본문에서 그것은 단순히 손님 모두가 “잘 마셨다”는 것을 의미한다.4 일반적으로는 손님 모두가 가장 질 좋은 음료를 충분히 마신 후에 질이 떨어지는 것이 제공된다. 어쨌든, 단어들 자체만으로는 포도주가 발효된 것인지 안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307.3)
 어떤 사람들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느 정도 발효가 되기 전에는 포도즙을 완전히 밀폐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이다. 오랫동안 포도즙을 잘 보존하는 방법이 있었는가? 이 점과 관련하여 1세기 유대인 자료의 정보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포도즙 보존법에 대해 당시 헬라 및 로마 작가들이 말한 좋은 증거가 있다. (308.1)
포도즙을 끓여서 젤리로 만들었다. 이것을 항아리에 넣어 공기가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압축시켰다. 그런 다음 가장 윗부분에 감람유를 발라 두면 내용물이 몇 달 혹은 몇 년도 보존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보존된 내용물을 물과 섞어 사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발효를 막았다.5
(308.2)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
 이렇듯 오랫동안 포도즙의 발효를 막는 것이 가능했는데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참으로 포도즙이 제공되지 않았을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음료였기에 연회장마저 그런 찬사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는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겐 이런 잔치자리에 온 손님들이 포도즙으로 만족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당시의 유대인 문화는 지금과 다르다.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일반적으로 당시에 소녀들이 고작 열두세살에 결혼했다는 것이다. 신랑도 아마 그보다 훨씬 나이가 들진 않을 것이다. 심하게 발효된 포도주는 쉽사리 술 취하게 하여 혼란을 빚을 수 있었을 것이고, 거기 있던 큰 결례 항아리들이 암시하는 대로(2:6) 정결에 관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이 그런 일을 철저히 피하려 했을 것이다.6 약간의 술을 마시거나 알코올을 거의 선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지하는 고대 작가들의 증거도 있다 “플리니우스(Pliny)는 ‘좋은 포도주’란 영혼[취하게 하는 성분]이 없는 포도주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7 헬라인들은 적어도 3대 1이나 4대 1의 비율로 물과 섞어 희석시킨 포도주를 추천했다.8 (308.3)
 “최상의” 포도주란 가능한 오랜 기간 만끽할 수 있도록 가장 신선하고 발효에 가장 적게 노출된 포도주였던 것으로 보인다.9 (309.1)
그리스도께서 혼인 잔치를 위하여 준비하셨던 포도주와 제자들에게 자신의 피의 상징으로 주신 포도주는 순수한 포도즙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도송이”의 새 포도주를 말할 때에 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사 65:8)고 말했다(시대의 소망, 149).
(309.2)
 요한에 따르면, 이 기적은 처음으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신 경우였다(11절; 참조 1:14). 그것은 그저 웨딩 케이크에 설탕을 입힌 정도를 넘어, 유전에 의존하는 유대교를 능가하는 예수의 “새 포도주” 봉사를 나타낸다(참조 막 2:22). 창조주께서 몸소 만드신 “포도주”를 맛보는 놀라움을 상상해 보라 틀림없이 그 품질은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낸 포도즙을 훨씬 능가했을 것이다. 이 첫 번째 기적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그저 외형을 개혁하려는 것이 아닌 내적 변화 다시 말해서 단순히 옛 것을 더 낫게 만들려는 것이 아닌 다시 새롭게 변화시키려는 그분의 의도를 선언하신 것이다. (309.3)
 Clinton Wahlen (310.1)
 미주
 1. 돌 항아리 하나의 용량은 물 “두세 통” 정도 된다. 한 통이 약 34리터에 해당하므로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8.57; 15.314), 항아리 하나는 각각 68~102리터쯤 되었다.

 2.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신자들과 함께 마실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마시지 아니 할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셨지만(막 14:25), 사실 그렇게 말한 주요 이유는 그의 감각을 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시대의 소망, 746). 바벨론 탈무드는 고통을 덜 느끼게 하기 위해서 처형당할 사람에게 마취제가 든 포도주를 주는 관행이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말한다(b.Sanh 43a).

 3. 에베소서 5:18; 〈70인역〉의 시편 74:9[ET 75:8]; 잠언 23:31; 이사야 28:7 등에서 오이노스는 발효된 포도주를 의미하고, 마태복음 9:17; 마가복음 2:22; 〈70인역〉의 사사기 19:19; 요엘 2:24; 이사야 16:10 등에서는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을 의미한다.

 4. 이것은 이 단어가 H. Preisker (methē, methuō. methuos, methuskomai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4:547)에 의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5. Jon Paulien, John:Jesus Gives Life to a New Generation (The Abundant Life Bible Amplifier; Boise, ID: Pacific Press, 1995), 70; Samuele Bacchiocchi, Wine in the Bible:Biblical Study on the Use of Alcoholic Beverages, 127, 28.

 6. 히브리 성경이 포도주와 “독주”를 도덕적 혼란과 부적절한 행동의 원인으로 보는 것 (예컨대. 창 9:21; 19:32; 잠 20:1; 21:17; 23:31~35; 사 5:11, 12; 28:7 등)이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갈 5:21; 엡 5:18; 벧전 4:3 등).

 7. Albert Barnes, Notes on the New Testament: Explanatory and Practical, Luke-John (London, 1875; reprint, Grand Rapids, MI:Baker, 1949), 193.

 8. James Grout, “Wine,” Encyclopaedia Romana. Online: http://penelope. uchicago.edu/~grout/encyclopaedia_romana/wine/wine. html;accessed Feb 2, 2010

 9. Bacchiocchi, 123, citing Pliny, Natural History, 14, 28; Plutarch, Symposiacs, 8,7. (310.2)
 “그들[유대인들]은 예언들을 연구하였으나 영적 통찰력이 없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어 굴욕을 당하실 것을 가리키는 성경 구절들을 간과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을 잘못 적용하였다. 교만이 그들의 통찰력을 흐리게 하였다. 그들은 예언을 그들의 이기적 욕망에 일치되게 해석하였다.”(시대의 소망, 30).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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