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용어는 신약에서 자주 이방인을 지칭하지만 마태복음의 여기서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포함한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Donald Hagner,
Matthew 14-28.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3b (Dallas, TX:Word Books, 1995), 742을 참조하라.
2. 헬라어로는 동사 형태인
카타라오마이로,
“저주하다”를 뜻한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에서는 이곳에서만 사용되고,
마가복음 11:21, 누가복음 6:28, 로마서 12:14, 야고보서 3:9 등에도 나온다. 하나님에 의한 저주의 개념과도 비교하라(
신 21:23).
3. 이 이야기가 행위 외에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
엡 2:8)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할 순 없지만, 사실 궁핍한 자에게 베푼 선행으로 인한 구원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나 예수님이 모두 잘못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우리의 속에 있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참조
마 7:15~20]). 바울도
에베소서 2:8~10에서 같은 생각을 암시하는데, 하나님께서 미리 그렇게 되도록 계획하신 대로 믿음에는 선한 행위가 뒤따른다(참조
약 2:14~26). 또한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심판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고후 5:10, 마 16:27; 잠 24:12).
4.
마 3:10, 11, 12; 5:22; 7:19:13:40, 42, 50:17:15; 18:8, 9; 25:41 5. 악인의 형벌과 관련하여 죽지 않는 벌레와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은
이사야 66:24의 인용이다. 이 두 가지 이미지는 같은 사상을 전달한다. 시체가 완전히 타버리기 전에, 다시 말해서 악인들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엔 벌레는 죽지 않고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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