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기원은 완전히 해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죄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이 죄에 대한 모종의 책임이 있다는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성과 우주를 창조한 책임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야고보는 이렇게 경고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3-14). 본문의 의미는 분명하다. 본문은 “하나님은∙∙∙시험을 받지도∙∙∙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품성 및 그분이 인간과 유지하고자 하시는 관계에 대한 성경의 묘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나는 하나님께유혹을 받았고, 따라서 하나님이 내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다른 한편 본문은 유혹과 죄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밝힌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따라서 “사람이∙∙∙하지 말지니”라는 권고는 하나님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성경의 자료를 무시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죄에 대해 결코 책임이 없다고 강변한다. 하나님은 “거룩, 거룩, 거룩하”신 분이다(사 6:3). 철저하게 거룩한 분이 어떻게 거룩하지 않은 것에 책임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죄와 먼 분이고 그분의 품성은 죄악을 싫어하기 때문에 하박국은 악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잔혹하고 실재할지라도 그분을 악의 근원으로 보지 말라고 탄원한다 “야훼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합 1:12, 13). (294.1)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과 선과 진리를 말하는 기별이 성경을 관류한다. 그분은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다(신 32:4). 그분은 진리를 사랑하시며,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민 23:19). 그분은 악을 미워하고(시 5:6; 잠 6:16), 죄가 사람과 그분 사이를 갈라놓은 것을 슬퍼하신다(사 59:2). 그분의 품성은 절대적이다. 그분은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다(신 32:4). 어떻게 이런 하나님이 죄의 근원이 될 수 있겠는가? (295.1)
 더 나아가, 신약은 하나님과 죄 사이의 거리를 극명하게 대조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깊은 구렁을 잇고 흑암의 영역에서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보내 지극한 사랑의 희생을 치르게 함으로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멸망하지 않도록 하셨다(요 3:16). 십자가 앞에 서서 과연 하나님께 죄에 대한 책임이 있을 수 있는지 물어보라. 우리가 십자가에서 보는 것은 죄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해답이다 왜냐하면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하지만 죄는 인간을 유혹하여 파멸로 몰아간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죄를 미워한다. 죄는 증오와 질투와 파멸을 낳는다. 그러므로 죄의 기원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성경적인 생각일 뿐 아니라, 성경에 따른다면 신성 모독적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점에서 죄의 창시자라고 말하면서 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철학적이고 결정론적인 견해를 배격해야 한다. (295.2)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죄가 어떻게 기원 되었는가? 성경은 우주에서 죄가 기원된 것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충분하게 다루지 않지만, 죄가 인간 창조 이전에 기원되었고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통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음을 말하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295.3)
 A. 인간 창조 전의 천사의 범죄
 인간 창조 이전 역사와 관련된 죄의 기원에 대한 성경의 자료가 제한적이지만, 죄가 사탄에게서 비롯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알려져 있다. 요한에 따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였다(요일 3:8). 성경은 인류가 창조되기 오래 전에 하나님이 천사의 무리를 창조했는데, 그들의 처소는 하늘 궁정이었고 그들의 의무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시종일관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땅과 하늘에서 이루고 계시함으로써 그분의 사자들로 행동하였다.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창조주를 찬양하고 경배하고자 하였다(계 5:11, 12). (295.4)
 천사들도 인간 존재와 마찬가지로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그들 가운데 타락이 일어났다. 이 타락한 천사들의 지도자가 사탄이었고, 예수는 그를 “처음부터 살인한 자”“거짓의 아비”로 묘사했다(요 8:44). 예수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44절)라고 바리새인들을 질타하면서 죄의 궁극적인 근원을 사탄으로 추적했다. 또한 예수는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라고 말했으며, 요한계시록은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을 묘사하면서 “온 천하를 꾀는 자”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나 땅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계 12:7-9). 사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나는 그리스도와 사탄, 선과 악의 전쟁은 성경 전체를 관류하는 주제이다 이 전쟁이 정확하게 언제 시작되었는지,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언제 하늘에서 쫓겨났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기 전에 이 전쟁이 있었다는 충분한 암시가 있다(참조 대쟁투 I. B; II. A-C). (296.1)
 그리스도와 사탄, 선과 악의 대쟁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죄의 교리는 충분히 이해될 수 없다. 하나님의 통치권과 그분의 품성이 이 이슈의 핵심이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하나님께 대해 반역을 일으켜(7-9절) 그 반역이 극에 달했을 때, 결국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의 무리를 하늘에서 내쫓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천사들의 타락을 야기한 죄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딤전 3:6) 염려하여 새로 입교한 자를 감독으로 임명하지 말라는 바울의 경고(딤전 3:6)는 교만과 허영심이 죄임을 시사한다 유다서 6절은 그 타락한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말한다. 이 두 본문을 통해 우리는 타락한 천사들의 죄가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불만족 및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망이었음을 추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죄는 피조물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 창조주처럼 되려는 욕망이었다.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관계에는 본질적인 면에서 각각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 창조주가 생명과 사랑과 친교를 피조물에게 베풀면, 피조물은 피조물의 생명을 존재케 한 분에게 사랑과 순종과 찬양을 돌림으로 반응한다. 이런 영역을 넘어가는 것,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런 관계를 파괴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이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반역이다.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처소에서 쫓겨난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망이 천사들로 타락하게 했다면, 금단의 과일을 먹으라고 화와를 유혹할 때 왜 마귀가 그녀에게 하나님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296.2)
 자신을 하나님의 지위에 두고자 하는 교만심과 더불어 피조물에게 제한을 두신 하나님의 권리에 도전한 것(참조 사 14:12-14)이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선봉장인 루시퍼 사이에 하늘에서 전쟁을 야기한 죄였다. 이 전쟁에서 사탄은 끝까지 반역하기로 작정함으로 하나님이 반역자들을 하늘에서 쫓아내도록 하였다. (296.3)
 B. 인간의 타락
 인간의 죄는 아담과 하와의 반역 행위와 더불어 에덴동산에서 비롯되었다 창세기 3장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묘사한다. 우리 조상의 첫 번째 죄는 인간의 삶에서 죄의 행로에 영향을 각각 또는 한꺼번에 끼치는 네 가지 중요한 요소를 가리킨다. (296.4)
 1. 역사적 행위
 역사를 통해 어떤 신학자들은 창세기 3장의 타락 이야기를 풍유로 규정하고,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화로 전락시켰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초역사적인 사건, 곧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말한다. 그러나 죄의 본질과 성격과 운명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죄의 역사성을 무시하거나 침식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그것의 시작 및 그것이 인간 역사의 드라마에 끼친 영향 십자가상에서의 그것의 패배 그리고 최종적 심판에서 있을 최종적 근절을 반역에서 회복에 이르는 역사적 이 정표로 묘사한다. 이 사건들 중에 하나라도 그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와 진실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통치자인 주님을 부정하는 것이다. (296.5)
 신약은 창세기 3장을 역사적인 기록으로 지지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신화로 전락시키거나 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은 다섯 개의 본문에서 아담의 역사적 사실성(롬 5:14; 고전 15:22, 45; 딤전 2:13, 14)과 두 개의 본문에서 뱀의 역사적 사실성(고전 11:3; 계 12:9)을 지지한다 바울을 이렇게 썼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본문은 그리스도께 위탁된 모든 자들이 재림 시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경험할 것임을 보증한다. 바울의 독자들은 부활에 대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부활이 이 땅에서 살고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만큼 실재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이 편지가 기록되기 수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더 나아가 사도는 이중적인 주장을 편다. 아담은 죽음을 불러왔지만 예수는 삶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함으로 바울은 아담과 예수와 재림 그리고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 실재임을 인정한다. 신약의 교회와 바울에게, 아담과 하와의 죄 및 그 결과로 온 죽음은 풍유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었다. 죄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이다. (297.1)
 바울은 다시 한번 고린도후서 11:3에서 창세기 기사의 역사성을 역설한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는 뱀을 신화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사탄을 하와를 속이는 데 이용한 역사적 도구로 본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하와와 뱀 사이에 역사적인 차이를 두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마서 5:12-19에서 바울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실재하는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발생된 역사적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그런 것처럼 죄로부터의 구원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인 인격 안에서 이뤄졌다. 바울에게는 창세기나 신약에 있는 어떤 것도 신화가 아니다 죄, 뱀,의, 아담, 하와, 그리스도, 사탄, 구원, 부활 등은 모두 실재이다. 이에 덧붙여 요한계시록의 극적인 장면은 뱀을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로 밝힌다(계 12:9). 인류를 죄에 빠지게 한 사건들의 역사성을 부인할 근거가 없다. 또한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신화나 역사 이전의 산물로 분류할 수 없다. (297.2)
 2. 책임져야 할 행위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과일을 먹은 것은 의도적으로 빠져 결행한, 따라서 책임져야 할 행위였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창조주께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그밖에 다른 이에게 충성할 것인가라는 선택권이 명백하게 주어졌다. 본질적으로 시험은 특정한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에 놓여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충성심을 시험하고 품성의 성장과 성숙을 허용할 것인지를 검증받는 것이 필요했다. 그들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저항한다면 영생과 행복이 그결과로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첫 부모가 금단의 과일을 선택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사용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책임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사탄도 그들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기로 선택함으로 사탄과 연합하였다. 이처럼 그들의 행동은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불순종의 행위나 하나님을 거절한 그들의 선택이나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고집스럽고 고의적인 반역이었다. 바로 거기에 그들의 죄가 놓여 있었다. (297.3)
 3. 영적 및 도덕적 행위
 우리의 첫 부모가 금단의 과일을 먹은 것은 단순히 호기심에서 비롯된 순진무구한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 및 도덕적 시험의 실패였다. 아담과 하와를 존재케 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사 43:7)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참으로 가능하도록 한데 있다. 건전하고 검증된 영적 및 도덕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는 그런 영광이 확립되거나 그런 관계가 존재할수 없다 “도덕적 및 영적”이라는 말은 두 사람 이상이 되도록 최상의 친교 상태에서 서로 관계를 맺음으로 양편이 상대를 위해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친교의 언약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이미 아담과 하와를 그분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여 그들에게 창조된 질서에 대한 통치권을 맡기심으로 자신이 얼마나 비이기적인지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담과 하와는 그 시험에 실패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인 비이기적인 질서 안에서 살지 않기로 선택하고, 첫 번째 기회가 오자 반역에 대한 그들의 내적인 동기를 금단의 과일을 먹음으로써 외적인 불순종의 행동으로 옮겼다. 그들은 자아의 가장 큰 유혹 곧 하나님처럼 되어 도덕적 및 영적 영역에서 자신들이 주인이 되려는 유혹에 굴복하였다. 하와는 그 과일을 만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렸다 그녀의 죄는 그녀가 한 고집스런 선택에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창조주의 뜻과 원함 위에 두었다. 그녀의 죄에서 죄의 본질을 엿볼수 있다. 곧 그것은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생명의 궁극적인 법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죄를 단순히 도덕적인 결함 영적인 실패, 순간적인 배신, 어떤 결핍 상태 혹은 불순종의 행위로 보아서는 안 된다 죄는 이 모든 것도 포함하지만, 그 본질은 인간 존재로 하여금 창조주 외에 다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자신의 신으로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즉 죄는 영적인 대체 행위이다. (298.1)
 4. 유혹과 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