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거룩하시다. 그의 율법도 거룩하다. 사람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순종할 때 성령이 하나님 자신의 품성적 표징인 순결과 정직과 사심 없는 정신을 그들의 생활 속에서 꼴지어 주신다. (377.11)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 하나님의 인과 같은 것인가? 우리들은 모두 죄인 들이다. 만일 우리가 안식일을 온종일 거룩하게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로서의 분명하고도 철저한 변화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니고데모같은 선량한 사람도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요 3:5). 매일의 생애에 무엇인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안식일 하루 전체를 거룩하게 지킬 수가 없다. 우리가 한 주일을 순결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동정심을 가지고 남에게 유익을 주면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밀접한 친교를 가져야 한다. (377.12)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흠”이 없고 거짓을 모르며, 참되고 정직 하며, 정숙하고 순결하고 친절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굶주림과 처형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378.1)
 그러나 어떻게? 그들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용을 이기었으며, “죽기까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계 12:11)다. (378.2)
 그러나 이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의 의지력이 우리를 낭패시키는가! 승리한 사람들은 “어린 양의 피”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그들은 어린 양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대군(大君) 미가엘이 있다(단 12:1). 그는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오셔서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고 안으로 영접을 받으신다. 그는 불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가지고 들어와 그들에게 주신다(계 3:15~22). (378.3)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친히 그것들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9절은 말하기를 “그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고 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에 응답하시어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 오시는데 그 때에 자신과 함께 그의 신성을 가지고 오신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한 것으로 충만하게”되는 것이다(엡 3:17~19). (378.4)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378.5)
 144,000 인의 “성도들”, 곧 하나님의 “남은” 청년들과 어른들이 짐승의 표를 피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또 완전히 익은 하나님의 알곡으로서 거룩하고 순결하게 온전히 설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방법에 의해서이다. (378.6)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의문을 완전히 풀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큰 차이가 무엇인가?”하고 그들은 질문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고 꽤 자주 교회에 출석한다. 그런데 그 안식일이란 날이 무슨 변화를 일으키는가?” (378.7)
 뱀은 달콤하게 미소를 보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당신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 “그 요구는 부당하다. 당신의 이익을 위해 당신은 그것을 지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있으나 당신은 죄인이다. 당신은 그것은 지킬 수 없다.” (378.8)
 우리가 우리 방식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뱀은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오히려 환영할 것이다. 뱀은 하와에게 설득하기를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그녀가 “하나님과같이 될 것”이라 했다. “너는 하나님과같이 되리라”고 약속했다. 하나님과 같지 않게 된다고 한 것이 아니다. 뱀은 하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섬기게 했다. (378.9)
 가인도 제멋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어린 양 대신에 밭의 소산을 제물로 바쳤다. 중세 그리스도교도 제멋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수천만의 모슬렘들도 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378.10)
 시간이 지나자 가인과 로마 교회는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분노하게 되었다. 화내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제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드러내는 특징이다. (378.11)
 짐승의 표는 언제 받는가?
 지금인가 나중인가? 안식일을 등한시하는 모든 그리스도 이들은 지금 짐승의 표를 받고 있는가! (378.12)
 근래에 꽤 나이를 먹은 사람이 필자가 봉직하고 있는 신학 대학원에 등록했다. 최근까지 그는 은행에서 간부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은행을 그만두기에 앞서 은행의 다른 간부들을 찾아가 앞으로 목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은행을 떠나야 하겠다고 설명했다. (378.13)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주님이 자기에게 안식일 준수를 원하고 계신다는 새로운 확신을 그들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 반갑고도 놀라운 대답을 들었다. 그들의 동료들이 이 같은 결심을 한 형제를 축하해 준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기로 한 결심을 가장 기쁘게 여기고 격려해 준 동료는 다름아닌 로마 가톨릭 교도였다. 필자는 이 가톨릭 교도가 짐승의 표를 받았다고 믿지 않는다. (379.1)
 짐승의 표는 짐승의 우상이 수립된 이후, 곧 죽게 된 상처가 나은 이후에 사람들에게 강요될 것이다. 이 일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마지막 사건의 하나이다. (379.2)
 하나님의 인(참된 안식일의 거룩성)은 요한계시록 14장 15절에 나오는 온전히 익은 곡식의 특성을 대표하고 있다. 짐승의 표는 강압적인 일요일 준수에 요약된 “짐승”의 규칙과 행위를 받아들이는 대단히 교묘하고 적대적인 자세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4장 17~20절에 나타난 익은 포도 송이를 대표하고 있다. (37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