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표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그것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표적을 살피는 것이다. (373.11)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그 백성들에게 받도록 요청한 두 가지의 특별한 표징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제의적(祭儀的)인 할례이다. 기원전 2천년경에 유대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이 의식이 거행된 후 할례는 생후 1 주일 된 모든 유대인 사내 아이에게 착오 없이 이행되었다. 이것은 유대 민족을 구별시키는 인종적인 특징이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유대 민족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選民)이 될 수 없게 되자 이 의식은 구원의 의의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한다(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225~231). (374.1)
오늘날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인 것이다(갈 3:26~28). (374.2)
십자가의 희생 이후에는 제의적인 할례도 어떤 형태로든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계명은 아직도 유효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서 말하기를 “할례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고 하였다. (374.3)
다른 번역 성경들은 그 의미를 더욱 명백하게 하고 있다. N.I.V. 성경에서는,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고 비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N.A.S.B. 성경에서는, “할례는 아무 것도 아니다. 비할례도 아무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374.4)
계명에 대한 바울의 기별은 요한의 기별과 동일하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이 율법을 준수하기를 기대하고 계신다. (374.5)
이제는 다른 표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 표징은 아직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시조에게 주신 것으로서 인종적인 구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부여된 것이다. (374.6)
이것은 온 인류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민족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에게도 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출 31:13, 17)고 하신 것이다. (374.7)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또 재창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표징이다. (374.8)
이 같은 선언의 배경은 매우 인상적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으로부터 성공적으로 이끌고 나왔다. 그들은 시내 산 기슭에 잠시 장막을 치고 야영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번개와 뇌성이 진동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소개하셨다. “뇌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온 산이 크게 진동하”(출 19:16~18)였다. 후에 모세의 일꾼들이 금으로 된 이동 성전 또는 성막을 완성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돌판에 기록한 십계명 한 조를 가장 깊숙한 방인 지성소(至聖所) 내의 “언약궤” 속에 두도록 하셨다(출 32:15, 16; 25:16, 21; 민 10:33). (374.9)
지금 우리는 유사한 토대 위에 있다. 대쟁투 부분(계 11:19~14:20)을 소개하고 있는 성소의 장면(계 11:19)을 보면, 하늘 성전의 문이 열려 요한이 성전의 깊숙한 내부를 들여다 보고 있다. 요한은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았다. 그가 그것을 보고 있을 때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 (374.10)
하나님은 요한을 시내 산으로 데려가신 것이다! (375.1)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내 산과 성소로, 대제사장 예수님에게로, 그리고 십계명과 안식일로 되돌아갈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375.2)
안식일은 오직 유대인만을 위하여 시내 산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때 곧, 지구가 태어날 때에 “사람을 위하여”, 인류 전체를 위하여 제정되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막 2:27). (375.3)
안식일은 우리의 창조주요 구세주요, 또 거룩하게 하시는 분을 우리 자신의 창조주와 구세주와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삼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표징”으로 제공된 것이다. (375.4)
선지자와 안식일
매사를 피상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줄곧 충성스럽게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고대사를 거치면서 빈번하게 안식일을 포기했었다. 다니엘과 동 시대의 선지자들이었던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간절하게 안식일의 부흥을 호소했다. (375.5)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약속하기를 만일 그들이 다시 안식일을 성실히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박두해 있는 바벨론 왕국의 침공으로부터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렘 17:24, 25)이다 라고 기록하였다. (375.6)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토록 간절히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렘 17:23)다고 하였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들은 그 비극적인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3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