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11장 하나님, 그리고 인간의 적개심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다니엘 11장의 이상과 다니엘의 여타 이상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다른 이상들이 세상 제국들의 흥망 성쇠를 다루고 있는 데 반해 11장의 이상은 개인에 관한 언급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이상들에서는 “왕”“왕국”을 뜻했으나 11장에서는 “왕”이 글자 그대로 “왕”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274.1)
 여러분들은 이 장을 읽었겠지만, 짐작컨대 뜻이 잘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 우선 본문을 다시 읽고 역사의 특정 사건들과 11장 예언의 특정 구절들이 어떻게 부합이 되는지 주목해 보기로 하자. (274.2)
 1~13절에 대한 일반적 해석
 13절까지에 대해서는 성서학자들 간에 이의가 거의 없다. 이제는 11장의 이 첫 구절들이 얼마나 정확히 성취되어 왔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274.3)
1. 내(가브리엘)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돕고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274.4)
 가브리엘은 여기서 이 계시가 있기 일이 년 전에 메대 다리오(다리우스, 다리우스 1세와는 다름)의 바벨론 통치를 개인적으로 지원했던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왜 다리오가 사자굴 사건 때 다니엘에게 그토록 친절했는가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274.5)
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페르시아)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네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 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희랍)국을 칠 것이며
(274.6)
 이 이상을 받던 시기의 지배자였던 고레스(키루스)가 죽은 후에 세 왕이 차례로 페르시아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캄비세스(Cambyses. 530~522), 거짓 스메르디스(False Smerdis) 또는 바르디야(Bardiya)라고 하는 찬탈자(522), 다리우스 1세(Darius 1. 522~486)가 그들이다. 고레스(키루스)와 다리우스 1세가 각각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 조서를 내렸다. (274.7)
 제4대 임금은 크세르크세스(Xerxes. 486~465)이다. 성경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알려졌으며 에스더 왕후의 남편이다. 크세르크세스는 만 4 년에 걸쳐 병력과 전쟁 물자를 비축하여 희랍 원정을 준비하였다. 천사가 예언한 그대로였다. 그는 참으로 “모든 사람을” 격동시켰다. 그의 군대는 40개국에서 차출한 병력으로 구성되었다. 터번을 두른 페르시아 군, 청동 투구를 쓴 앗시리아 군, 목제 모자를 쓴 콜키아(Colchians) 군, 여우 가죽 모자를 쓴 트라키아 군, 표범 가죽 옷을 입은 이디오피아 군 등등이다.2 (274.8)
 도합 30만 명3의 대군이 대부분 도보로 각기 제 나라를 출발하여 희랍의 살라미스(Salamis, 480)와 플라타이아(Plataea, 479)로 향했다. 완전히 무찔러 버리려는 기세였다. (274.9)
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알렉산더)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274.10)
 희랍의 조그만한 도시 국가들은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터무니없이 우쭐해 졌다.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겠다는 야망이 희랍인들의 머리에 움씰거리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의 아들 알렉산더가 희랍을 통일하고 헬레스폰트(Hellespont)를 건너 아시아로 진격했다. (274.11)
 앞에서 본 바와같이(p.153, 154), 그는 페르시아 제국을 완전히 정복하고 말았다. (275.1)
4.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
(275.2)
 알렉산더는 고대 바벨론의 옛 터에 그의 신제국의 수도를 세우는 작업을 막 착수하였는 데, 열병이 그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기원전 323년,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뇌를 손상받은 이복 동생 필립과 유복자가 그가 남긴 혈육의 전부였다. 세력 있는 장군들의 후계자 전쟁(Diadokoi전쟁)의 와중에 동생과 유자(幼子)는 사라지고, 301년에 제국은 4분 되었다. 서쪽은 카산드로스(Cassander), 북쪽은 리시마쿠스(Lysimachus), 동쪽은 셀류쿠스(Seleukus), 남쪽은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에게로 각각 돌아갔다. (275.3)
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275.4)
 다니엘 11장에는 “북방 왕”“남방 왕”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 표현들은 첫째로 예루살렘의 북쪽과 남쪽에 각각 위치한 시리아와 이집트의 통치자들을 나타낸다. 이 왕들의 통치력이 미친 지역들은 시기에 따라 일정치가 않다. 북쪽 셀류쿠스 왕조의 시리아는 한때 에게 해(海)에서 인도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했는가 하면, 몇 개의 도시 국가들을 장악한 데 불과했던 때도 있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소아시아 해안의 일정 지역과 리비아를 손에 넣었다. 다니엘 11장이 취급하는 시기인 이 왕조의 초기에는 레바논과 키프로스와 유대까지 장악했다. 다음 페이지의 지도를 참고하라. (275.5)
 프톨레마이오스 왕조하의 이집트 수도는 카이로가 아니라 알렉 산드리아였다. 알렉산더에 의해 건설된 풍요한 도시였다. 셀류쿠스 왕조하의 시리아 수도는 지중해에 가까운 시리아 안티오키아(안디옥)이다. (275.6)
 이집트의 모든 왕들의 이름에는 프톨레마이오스란 이름이 따랐으며, 다니엘 11장에 나오는 시리아의 모든 임금들은 안티오쿠스 아니면 셀류쿠스란 이름을 썼다. 많은 왕들이 동일한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고대에는 개개 임금들이 성(姓) 대신에 개인 이름이나 백성들이 붙여 준 별명으로 구별되었다. 현대는 1세, 2세 등 수자를 붙여 구별하고 있다. (275.7)
 5절에서 천사는 “남방 왕”“강”할 것이라 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 소테르(Ptolemy 1 Soter. 323~280)는 사실 처음부터 강했다. 이집트는 대단히 부요한 국가이면서도 국방이 다소 용이한 나라였다. “그보다 더 강한 군”(군주)은 셀류쿠스 1세 니카토르(Seleucus 1 Nicator)였다. 원래 알렉산더 제국의 동부를 장악했던 장군이었다. 그런데, 셀류쿠스는 알렉산더의 또 다른 장군에 쫓겨 동방의 세력 기반을 잃고 이집트로 도망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를 특별히 대우하고 새로이 군대를 규합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2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