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대쟁투 시리즈의 첫 장면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자(이상적인 참 교회)와 그 여자의 남자 아이(예수님)와 큰 붉은 용(실제적으로는 사단이지만 여기서는 로마 제국과 또 1,260년간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로마 교회를 상징한다)을 보았다. (316.8)
 2. 용이 미가엘과 더불어 싸우다(계 12:7~12).
 전쟁은 지옥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전쟁은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미가엘과 그 사자들”을 한편으로하고 “용과 그의 사자들”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미가엘은 「다니엘 연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확인되었다(미가엘이란 이름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하는 뜻이다. 미가엘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자라는 뜻에서만 “천사”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그리스도와 사단 간의 대쟁투로서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317.1)
 영어 개역 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 12장 7절“이제 하늘에서 전쟁이 시작됐다”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6절에 나오는 1,260년의 끝에, 혹은 5절에 나타나는바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 앞으로 올리우심을 받은 그 순간에 하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러나 희랍어 원문에는 “이제”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다. 희랍어 원문에는 전쟁의 발발점에 대한 아무런 암시도 없이 그저 간단히 “그리고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로 적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그 전쟁이 매우 오래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 (317.2)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생물들에 대해 처음으로 공부하면서 우리는 기원전 600년경에 살았던 에스겔 선지자가, 그 생물 중 하나(사단)가 이미 하늘에서 축출된 사실을 지적했음을 발견했다(겔 28:12~17). 그러나 대쟁투가 시작된 시기에 대해서는 제3항목에서 검토할 것이다. (317.3)
 하늘에 울려 퍼진 승리의 함성
 요한계시록 12장의 강조점은 언제 하늘의 전쟁이 시작되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용이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마침내 용이 “내어 쫓”겼다. 12장은 용이 내어 쫓긴 사실을 거듭하여 강조한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내어 쫓기니라.” (317.4)
 용이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늘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317.5)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고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0~12).
(317.6)
 이 대환성은 요한계시록의 핵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이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내어 쫓겼다. 그리스도의 권위가 확립되었다. 비록 사단은 “밤낮”으로 우리의 형제들을 참소했으나 우리의 형제들(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이길 수 있었다. 무엇으로 이길 수 있었는가? 바로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거, 그리고 그들의 구주를 낙심시키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고 했던 그들의 결의로 말미암아 이겼다. (317.7)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318.1)
 필자는 오래전에, 제2차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병사들의 은신처를 끝내 발설치 않았던 남양 군도의 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기사를 읽었다. 그는 침략군으로부터 손톱을 뽑히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연합군 병사의 은신처를 끝내 밝히지 않았다. 우리 청년들에게 이같은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들도 용을 거뜬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친구들이 그들을 제 아무리 유혹하고 그들의 적들이 그들을 제 아무리 조롱한다 해도 그들은 “용”을 이길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패배를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318.2)
 우리는 요한계시록 4장 8절에서 네 생물이 “밤낮”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광경을 보았다. 사단이 네 생물의 하나로 활동했을 당시는 그 역시 밤낮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주야로 사람들을 참소하고 남의 약점을 찾아 비난하는 일을 쉴새없이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사단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우리 형제들”까지도 헐뜯는다. 그대들이 아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으로써 이처럼 태도가 달라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318.3)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고 있다(12절). 그러나 마귀는 장장 수천년간 사람들을 유혹하고 괴롭혀 왔다. 어떻게 이 기간을 “짧다”(얼마 못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318.4)
 “얼마 못된”다는 표현은 상대적인 것이다. 누구의 키가 “얼마 안된다”는 표현과 두 도시나 두 은하계의 거리가 얼마 안된다라는 표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처음에 사단은 영생을 누릴 특권을 부여 받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땅에서 지내도록 허락된 기간이 몇천년에 한정되었으니 영생과 대조할 때 실로 짧은 기간이라 아니할 수 없다. (318.5)
 여기에 요점이 있다. 그기 유혹할 수 있는 기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는 어려운 시련에 직면할 때마다 이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또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보장받고 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오랜 고초는 우리들이 누릴 영생에 비교하여 얼마 안되는 기간이다. (318.6)
 이 둘째 장면은 그리스도와 사단 간에 대쟁투가 있을 것과, 그 싸움에서 사단이 결정적으로 패배할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사단이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우리 형제들이 사단의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318.7)
 3. 용이 여자와 그녀의 “남은” 자손들과 싸움(계 12:13~17)
 대쟁투의 장면은 자주 앞뒤가 뒤바뀌면서 전개되고 있다. 큰 붉은 용이 1,260년간 여자를 박해할 것이란 사실이 도입 부분인 첫째 장면에서 나타났다. 그 기간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명시되었다. 그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 동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켰다. (318.8)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서는 때때로 물이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계 17:15)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성경 주석가들은, 용의 입에서 토해진 “물”이 수 차례에 걸쳐 기독교 로마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목적으로 사용한 병력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이 해석에 의하면 입을 열어 물을 삼킨 땅은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피난하여 찾아간, 비교적 인적이 드문 지역을 나타낸다(“땅”“바다”의 반대 개념이다. p. 335)고 한다. 주지하는 바대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계곡이나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북미의 영국 식민지로 들어갔다. (3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