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와 아이, 그리고 용이 나타남(계 12:1~5).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日)를 입은 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계 12: 1,2, 4, 5). (314.1)
 요한계시록 12장“여자”, “아이”, “용”은 우리에게 하와와 그의 약속받은 씨(후손)와 그녀를 속인 뱀을 상기시킨다. 또 사단으로 말미암아 시련을 당하는 자녀들을 둔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들을 생각나게 한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자녀들이 뱀을 미워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요한계시록 12~14장의 기별은 자녀들을 양육하고 결단을 내리는 등의 가정 생활에 좋은 지침을 마련해 주고 있다. (314.2)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성경 주석가들 사이에서는 이같이 집합적인 또는 “단체적”인 뜻으로 이해하기로 사실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전체 집단을 한 여인으로 이야기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전체 이스라엘이 부정한 아내로 비유되기도 했다. 신령한 남편이신 하나님은 부정한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신다(호 2:19, 20; 사 54:1~8). 또 어떤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호화로운 새 옷으로 단장시켜 당신의 신부로 삼은 한 아름다운 젊은 여인으로 비유되기도 한다(겔 16:8~14). (315.1)
 신약 성경에서는 전체 그리스도 교회가 신부로 이야기되고 있다(고후 11:2; 엡 5:21~ 23).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구약의 신부와 신약의 신부가 각각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은 하나의 신부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부는 전에는 한 지역 집단이고 단일 인종의 집단이었으나 이제는 전세계적인 집단, 모든 인종을 망라하는 집단이 되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에는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남자나 여자”의 구별이 없다(갈 3:28). (315.2)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자는 에스겔 16장의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같이(그리고 하나님의 털 코트를 입고 있는 하와와같이), 호사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해(日)를 입고 있었고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다.” (315.3)
 빛은 하나님 자신의 옷이다(시 104:2). 예수님은 “의의 태양”이시다(말 4:2). 하나님의 백성들은 “빛의 자녀들”이다(눅 16:8; 살전 5:5~8). 해와 달과 별은 모두 빛의 현저한 상징들이다.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자가 해, 달, 별에 관련되었다는 것은 그 여자가 빛나는 의의 옷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선하고 유덕하고 정절이 있는 부인이며 또한 진실한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계 19:8). 이 여자는 교회의 상징으로서 문제가 많던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들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여자가 최상의 상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이상적인 참 교회를 나타낸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315.4)
 사실이 그렇다면 그 여자의 “남자 아이” 곧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이상적인 교회에 출생하셨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온 백성에게 보내진 바 되신 것이다. (315.5)
 이사야 선지자는 한때 아들을 낳자, 그 아이를 도래하실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간주했었다.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다음과 같이 보배로운 노래를 지었다. (315.6)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다(사 9:6; 7:14, 8:1~3과 비교하라).
(315.7)
 그는, 이 신령한 아기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 이름은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니라”(사 9:6). 대영제국의 왕자 윌리암 아더 필립 루이스(William Arthur Philip Louis)처럼 이름이 넷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들은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다. (315.8)
 요한이 볼 당시에 요한계시록 12장의 여인은 임신 중이었고 해산이 가까와 “아파서 애써 부르짖”고 있었다. 이 여인은 아기가 출산되기를 학수 고대하고 있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재림을 학수 고대하고 있다. 구약의 진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학수 고대하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스라엘 처녀들은 모두 결혼할 때 메시아의 어머니가 될 꿈을 품었다고 한다. (315.9)
 그러나 여러 세기가 무위로 지나가자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약속은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메시아는 드디어 이 세상에 오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셨다(갈 4:4). 그는 두번째도 기필코 오실 것이다. (316.1)
 가족들을 어떻게 부양하고 훈육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우리에게” 태어난 이 아이, 특별한 의미에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오시는 이 아이를 잊지 말자. 그의 이름은 “모사”“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가족들을 도와 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 인간의 아들로서 가정 생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고통과 유혹을 극복하는 방법을 관찰과 경험을 통하여 알고 계시다(히 2:18; 12:3). (316.2)
 붉은 용이 아이를 공격함
 그렇다면 이 놀라운 아이 예수에게 고통과 유혹을 안겨 준 자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2장 3, 4절은 말하기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용이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했다고 하였다. 12장 9절을 보면 그 용은 옛날 하와를 파멸시키려고 했던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자였다. (316.3)
 우리는 지금 상징들을 취급하고 있다. 묵시에서는 용이 하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가 다 아는대로 예수님은 땅 위에서 탄생하셨다. 그렇다면 용이란 상징은 지상의 누구를 나타내는 것인가?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하여 병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어 그 곳의 모든 아기들을 죽인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예수의 부모들에게 급히 피하도록 경고했으므로 헤롯의 병사들은 아기 예수를 놓치고 말았다. 헤롯 왕은 로마 당국의 괴뢰였다. 또 모든 사람들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로마였다. 큰 붉은 용은 사단이다. 로마는 사단의 일을 대행하였다. (316.4)
 사단과 로마가 우리의 구세주를 죽인 후에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의기 양양하게 부활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서” 거기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항상 살아”계신다(히 7:25, 26; 히 8:1, 2와 비교하라). (316.5)
 그 아들을 죽이려던 시도가 좌절되자 큰 붉은 용은 그 아들의 어머니를 향해 분풀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광야” 로 도피하였다(계 12:6). 우리는 이미 다니엘 7장 25절요한계시록 11장 2, 3절에서 1,260일에 대하여 들었다. 1,260일은 로마 교회가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1,260년을 상징한다. (316.6)
 6절에 나오는 “광야”는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경험을 상기시킨다. 1세기 이상이나 애굽의 노예 신세로 붙잡혀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지휘하에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넜다. 그때 그들은 40년간이나 시내 광야에서 유목민처럼 야영 생활을 했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신의 양식으로는 만나를(출 16장), 영적 양식으로는 십계명(출 20장)과 모세의 교훈을 사용했다. (3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