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9. 두 염소 (나의 모든 속죄는 그리스도의 것임)
 대속죄일은 각 지역의 예배 장소에 모여 하나의 안식일처럼 준수되었다. 백성들은 저들의 영혼을 괴롭게 하여야 했다. (505.5)
 즉 금식하고(사 58:1~7) 통회하면서 저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자백해야 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며, 의복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사 1:6)어야 하였다. 시편 16편(그 표제가 암시하듯, NASB, 각주 24를 보라)과 시편 82편은 대속죄일에 레위 합창단에 의해 불리워졌는데, 이는 예배자들로 하여금 저들의 지난날의 죄된 생애를 돌아보며, 필요하다면 자백하고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랍비들은 덧붙이기를 “만약 누군가가 ‘내가 죄를 진다 하더라도 대속죄일에 속죄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한다면, 대속죄일은 속죄를 이룰 수 없다”(Yoma 8:9)고 말하였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죄들은 대속죄일에 속죄가 이루어 지지만, 인간과 그의 동료 사이의 죄들은 그가 그의 동료와 화해했을 때만 속죄가 이루어진다”(Yoma 8:9). (506.1)
 엘렌 화잇은 “그 예표적인 대속죄일은 온 이스라엘이 저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서 괴롭게 하고, 저들의 죄를 자백하며, 참회하는 심령과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진정한 회개와 속죄의 희생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주 앞에 나오는 날”(RH, 1884. 12. 16. )이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 성소에서 원형적인 대속죄일이 진행되는 동안 저들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준비시켜야 한다. (506.2)
 광야의 아사셀
 “첫째 부활”에 뒤이어 오는 일천년 기간에 이 지구는 “무인지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며, 모든 죄의 사악한 창시자(originator)요 선동자(instigator)는 쫓겨나서 그 곳에 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힘센 천사에 의해 그리로 이끌려(계 20:1, 2; cf. 레 16:21) “흑암의 쇠사슬”에 결박당한(벧후 2:4; 유 1:6) 그는, 그의 타락한 동료 천사들과 함께 이리저리 방황할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일으킨 반역의 이와 같은 결과를 바라보면서,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격동시키며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사 14:16, 17)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항했던 마귀의 활동의 범위가 그 때에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며,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하늘 정부에 대한 반역의 대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506.3)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어떤 속죄도 이루어 않음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를 얻는 일에 전혀 무관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F. C. 길버트(Gilbert, Messiah in His Sanctuary, 72)는 오래 전에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 대속죄일에 제비는 던져지고 아사셀이 선택된다. 이 선택은 여호와의 지도와 그분의 권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레 16:7, 8).

 (2) 대속죄일에 성소 봉사에서 아사셀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3) 아사셀의 생명은 취해지지 않으며, 죄의 제거를 위한 전체의 의식에서, 희생의 목적을 위해서도 그의 피는 필요되지 않는다.

 (4) 아사셀은 이 성일(聖日)에 다른 사람의 죄 떄문에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5) 살아 있는 염소는 회중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는 동안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6)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피는 흘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는 어느 면에서도 속죄를 이루는 일에 사용될 수 없다. (506.4)
 왜냐하면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

 (7) 그러므로 아사셀은 죄를 위한 아무런 속죄도 하지 않는다.

 (8) 아사셀은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경우와는 달리 인간의 대속물(man’s substitute)로 사용되지 않는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속죄 제물이며, 그 시체는 진영 밖에서 불사름을 당한다.

 (9) 아사셀은 대속죄일 의식에 있어서 그 봉사가 완료되기까지는 도외시된다.

 (10) 오직 정결케 하는 의식들이 마쳐진 후에야 아사셀은 산 채로 회막 문 앞에 끌려온다.

 (11) 성소에 기록된 모든 죄들을 위한 속죄는 이미 이루어졌다. 이 죄들은 대제사장에 의해 성소로부터 옮겨진 후, 아사셀의 머리에 놓여졌다.

 (12) 이후에도 아사셀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그는 진영 밖으로 이끌려서 산채로 광야에서 놓임을 받았다. (507.1)
 악인들이 “끊쳐짐”
 “그 날”의 봉사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여 “정결케” 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성경은 단순하게 선언한다. 그들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레 23:29) “인(印)침”과 같이 이 “끊어짐”은 하나님에 의해 친히 수행되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이다. 그리고 인침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사법적 심리의 결과이다.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한 애굽인들이 그러했듯이, 유월절 의식을 수행하지 않은 이유로 “끊쳐질” 것이었다(출 12:15, 19). 히브리어 동사 카라트(karath)는 ‘절단되다’, ‘끊어지다’, ‘파괴되다’ 혹은 ‘사르어지다’를 의미한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모세 율법에 자주 나오는 이 문구(文句)”“대체로 방법이 명시되지 않은 죽음의 형벌”을 뜻한다고 설명하면서, “그것은 결코 유배형(the punishment of exile)이 아니”라고 부언했다. (507.2)
 카라트(Karath)란 단어는 홍수 후에 노아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 9:11). 여기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안식일을 범한 자(the Sabbath-breaker)의 이야기에서 “끊쳐진다”는 의미가 명확하게 설명되어져 있다(출 31:14). 카라트“정녕 죽는다”(같은 문구가 창 2:17에도 사용됨, cf. 레 20:2~5)는 말과 나란히 놓여져 있다. 그것은 강포한 자(사 29:20; 호 8:4)와 순종치 아니하는 자(창 17:14; 레 7:20, 21, 25, 27), 그리고 일반적으로 행악하는 자들(신 19:1; 수 23:4)의 운명을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이 단어는 법적인 계약 체결 혹은 “쪼갬”(cutting)(창 15:10; 사 57:8; 렘 34:18)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507.3)
 카라트가 가장 감동적으로 사용된 곳은 갈바리 십자가에서 치르실 메시야의 죽으심을 예언한 부분이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끊쳐질” 것이지만,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단 9:26). 그분의 형벌적 죽음은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었다. 이 단어에 대한 간략한 연구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구주께서 그를 위해 “끊어”지시고, 혹은 그 자신의 용서받지 못한 죄를 위하여 “끊어”지시는 위험까지 감수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강조한다. 그리하여 대속죄일 봉사는 “정결케” 되거나, 혹은 “인을 받은” 자들과 “끊어진” 자들 사이의 극적인 분리로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507.4)
 아사셀의 추방은 그 의식에서 극적인 위치를 차지함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추방으로 대속죄일의 특별한 의식들은 끝났으며, 성도와 성소의 정결이 성취되었음을 알리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추방당하고 있을 때에, 대제사장은 모든 속죄 제물이 다 타버린 진영 밖에서 자신의 수송아지와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시체를 불살랐고, 그 기름을 단 위에서 태웠다(레 16:25, 27; 히 13:11~13; Yoma 6:7). (508.1)
 그러고 나서 대제사장은 그의 흰 예복을 벗고, 몸을 씻고, 그의 “황금 예복”으로 갈아입었다(Yoma 7:3). 그리고 백성의 화목제(Yoma)로 일곱 양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이스라엘의 헌신의 번제물을 드렸다(레 16:3, 4). 그 다음 그는 정규적인 저녁 제사를 드렸으며, 금촛대를 간검(看檢)하고, 향을 사르고 나서 그 매일의 봉사를 완료하였다. (508.2)
 지성소에서 향로를 옮김
 이제 대제사장은 한 번 더 그의 황금 예복을 벗고, 몸을 씻고, 그의 백색 예복을 입었다. 그 다음 그는 네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계속 향연을 내뿜고 있었던 금향로를 도로 가져오기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갔다(Yoma 7:4). 그가 성소를 거쳐 그것을 운반해 올 때, 온 “성전에 연기가 차게”(cf. 계 15:8)되었다. 그는 화로를 뜰로 갖고 나와서 아직 재들이 제거되지 않고 쌓여 있는 번제단의 동편 아래에 향의 찌꺼기를 내버렸다(cf. 계 8:3~5). 이것은 예배자들로 하여금 “그 날”을 위한 중보가 이젠 끝났으며, 그들의 유예도 마쳐졌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아주 특별한 날의 직무들의 마무리 작업을 감독하기 위하여 백색 예복을 벗고, 몸을 씻고, 다시 그의 “황금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508.3)
 맨안쪽 휘장이 제거됨
 이제 지성소 휘장이 제사장의 손에 의해 제거되었으며, 새로운 휘장이 그 자리에 달렸다(Shekalim 8:5; Yama 5:1, “one curtain”, cf. 3sp 166, 167). 예수의 육신의 상징이요(히 10:20), 이스라엘 여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원래의 휘장은 성육신(成肉身)과 구주를 통하여 보좌에 이르는 입구에 대한 일견(一見)을 제공한다. 이 마치는 예식을 통하여 대제사장은 “정결케” 된 성소를 그 합당한 상태로 회복하였으며(단 8:14, RSV), 구속의 예식들과 새로운 연례의 축제들의 시작을 알리었다. 의식에 있어서 매 50년째 대속죄일 의식의 이 시점은 희년(禧年)의 특권들이 시작되는 날로서 나팔부는 제사장에 의해 선언되었다. (508.4)
 이 대속죄일에서 대제사장의 마지막 행위는, 그의 화려한 예복을 차려 입고 금면류관을 쓰고서 하나님의 즐거워하는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민 6:22~27) 성소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청색 예복 가장자리에는 금방울들이 달려 있었는데, 예배자들은 그가 움직일 때, 이스라엘의 해방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그것들의 “즐거운 소리”를 듣고 기뻐하였다(시 89:15; 초기문집, 280). 부룩 포스 웨스트콧(Brook Foss Westcott)(히브리인에게 보내는 편지, 1909, 278)은 기록하기를, “속죄가 마쳐졌을 때, 대제사장은 다시 회중에게로 돌아갔다(레 26:14). 이와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돌아오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5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