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9. 두 염소 (나의 모든 속죄는 그리스도의 것임)
 대제사장은, 성소를 “정결케” 하고 “거룩케” 하는 의식을 마치고 백성들을 [저들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한 후, 그는 큰 권위의 위치에 섰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그는 모든 참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되고 용서받은 죄들을 위해 피로써 속전(隨錢)을 지불하였으며, 이제는 그것들을,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 (503.2)
 그의 다음 임무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식의 상징적으로 그것들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머리 위에 안수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백되고 용서받은 모든 죄를 그 위에 놓았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고백”은 모든 회개한 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미 용서되었고 그래서 일년내내 성소에 기록된 모든 죄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람 비 J. H. 헬츠(Hertz)는 대제사장의 이러한 대표로서의 행위에 내포된 뜻을 이와같이 설명하였다. “죄의 고백은 온 회중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op. cit., 523). (503.3)
 아사셀을 위한 염소
 아사셀 염소와 관련된 이 신비스러운 의식은 히브리의 대속죄일 의식에 아주 독특한 요소이다. 염소들이 하나님의 제비에 의해 처음 선택되었을 때,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것으로 불리워졌다. 야훼(Yahweh, 여호와)는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인격적인 칭호이기 때문에, 많은 성경 학자들은 아사셀 또한 하나님과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는 존재의 인격적인 칭호임에 틀림없다고 간주한다. 어떤 이들은 아사셀이란 “멀리 보냄”(sending away)을 뜻하는 것이라고 시사해 온 반면, 다른 이들은 그것은 이 염소가 보내어질 어떤 장소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게세니우스(Gesemius, 히브리어 사전)는, 어떤 행위나 어떤 지역은 야훼와 자연스러운 대비를 이룰 수 없으며, 오직 어떤 인격적 존재(Person)만이 그럴 수 있다고 예리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므로 아사셀은 반드시 그의 생애와 목적이 하나님과 상반되는 한 존재의 칭호여야 하는 것이다. (503.4)
 더욱이 두 염소에 함께 사용된 “위하여”(접두사로서 lamad)라는 전치사는 각각의 경우에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만일 그것이 야훼라고 일컫는 한 인격과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아사셀이라 일컫는 한 인격과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거의 일세기 전 칼 프레드릭 카일(Carl Frederich Keil)은 이렇게 확언(確言)하였다. “아사셀이 광야에 거주하는 악한 영의 칭호라는 견해(Spencer, Rosenmuler, Gesenims)는 현재 거의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Manual of Biblical Archaeology, II, 44). (503.5)
 그 때 이래로 이 결론에 의심을 제기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고 있지 않다. (504.1)
 아사셀을 마귀와 동일시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마귀를 표상하는 염소를 광야로 끌고 갔던 그 사람이 바로 그 염소에 의해 더럽혀졌다는 사실에 있다(레 16:26). 속죄 제물은 더럽힌 것이 아니라 정결케 했다(레 17:11).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진 아사셀을 위한 살아 있는 염소는 속죄 제물이 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피흘림 없이 죄사함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야훼를 위한 염소의 피에 의해 이스라엘의 죄악이 백성과 성막으로부터 제거된 후 즉, 바로 그 이후에야 자기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504.2)
 흠정역(King James Version)의 구두점(Punctuation)은 때때로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이 “속죄”(레 16:10)에 한 몫을 담당했다는 관념을 일으켜 왔다. “제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해도 좋겠습니까?” 이 구절은 교차 대구법(Chiasm, 히브리 알파벳 X자 모양으로 배열이 교차함—역자 주)의 형식으로 기록된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504.3)
여호와를 위한 염소(죽었음)—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에게 다가가 그것을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아사셀을 위한 염소(살아 있음)—그러나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있게 할 것이라.
여호와를 위한 염소(죽었음)—그것으로 속죄를 이루기 위해[LXX].
아사셀을 위한 염소(살아 있음)—그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그를 광야로 보낼지니라.
(504.4)
 속죄는 대리적 죽음과 정결케 하는 피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죽임당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피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를 통해서 어떤 속죄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사셀 염소와 관계된 의식들은 마귀가 경험할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504.5)
 여호와의 심판은 변함없이 조사적성격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의 에덴에서 처음으로 죄와 마주 대하셨다. 범죄한 자들을 대하시는 그분의 태도는, 우리가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변함없이 조사적(investigative)성격이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발생한 사건의 모든 정황을 완전히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의 주장에 대해 조사심판(Investigative Judgment)을 행하셨다(창 3:1). 그 다음 그분은 저들을 심리(審理)하신 역순으로 형을 언도하셨는데, 뱀이 가장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뱀부터 시작하여 하와 그리고 아담의 순(順)으로 내리셨다. 하나님의 판결은 그가 유혹하여 범죄케 한 각 사람의 죄책의 책임이 뱀에게 있음을 드러내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모든 죄에는 두 부분 즉,

 (1) 사단의 유혹과

 (2) 죄인의 동조(同調)행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사정을 최후로 살피실 때, 사단의 역할이 간과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이 대속죄일의 여러 예식들 중 이 의식의 기초가 된다. (504.6)
 사단을 표상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이 지은 각각의 죄에 있어서 그가 담당했던 몫에 책임을 지고 자신의 죄과를 떠맡았다. (504.7)
 엘렌 화잇은 간결하게 관찰하였다. “사단은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을 져야 할 뿐 아니라 그에게 놓여진 구원받은 무리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받는다. 그는 그가 파멸시킨 모든 영혼들로 인해서도 고통을 받아야 한다”(초기문집, 294, 295).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대제사장에 의해서 죄과를 짊어진 후, 무인지경으로 보내어져 거기서 놓임을 받았다. (505.1)
 “무저갱”으로 추방됨
 “광야”로 표현된 그 히브리 어구는 분명 이스라엘에게 잘 알려진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며, 저들의 때가 되기 전에 “무저갱”(the deep)으로 내쫓으시지 말기를 예수께 간청하던 내쫓기는 귀신들의 요청에 빛을 던져 준다(눅 8:31). 이 귀신들은 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믿었다”(약 3:19)! “아사셀의 신원이 마귀라는 사실은, 이 의식의 본래의 목적이 죄악을 그 근원으로 추방함으로써 제거하려는 것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다”(Rabbi Ahitur, Encydopedia Judaica, Ill, 1002, art. “Azazel”). 무인지경으로 내쫓긴,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모두에게 구경거리로 버려졌다. (505.2)
 인치는 일은 심판의 한 부분임
 이 의식의 종말론적 사상은 오래전부터 이해되어 왔다. 랍비들은 이렇게 기억한다. “일세기에 이르기까지 ∙∙∙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사상은, 이 땅에 사는 인간의 운명보다는 오히려 사후(死後)의 영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으로써, 성격상 주로 종말론적이었다. 그러나 ∙∙∙ 그 사상은 유대 사회에서 티스리 월[성경의 제7월] 초하루 즉 성력의 정월 초하루, 창조의 기념일에 인간의 행위가 심판을 받으며 그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상과, 티스리월 제10일[대속죄일]에 하늘의 판결이 인쳐진다는 사상이 발전되었다”(The Jewish Encyclopedia, vol. II, 281). 심판과 관련된 이 “인침”(seating)의 개념은 다른 성경 말씀에도 나타나 있다. (505.3)
 F. C. ZHE(Gilbert)(Practical Lessons, 528)는 대속죄일에 회당에서 드린 기도문을 이렇게 인용한다.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왕이시여,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소서,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왕이시여, 우리의 이름을 기념책에 인쳐 주소서,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왕이시여,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인쳐 주소서.” 이 삼중(三重)의 탄원은 삼위(三位)의 하나님께 드리는 무의식 중의 간청이 아니겠는가? 이 봉사가 마쳐질 때, 예배자들은 서로 이렇게 인사를 나누었다. “당신이 확실한 보증(good seal)을 받으셨기를 기원합니다”(Gilbert, op. cit., 537). 원형적인 대속죄일이 하늘에서 마쳐질 때, “하나님의 인(印)”은 의인에게 찍할 것이며, “짐승의 표”는 구주를 거절했던 모든 자에게 찍힐 것이다(겔 9:4~7; 계 13:16). 심판의 평결(評決)은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은 의로우며 거룩하다고 선언할 것이지만, 그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불의하고 부정하다고 선언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결케” 되었다고 선고될 것이지만 어떤 이들은 “끊쳐”졌다고 선언될 것이다. (505.4)
 대속죄일 기간 중의 백성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