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9. 두 염소 (나의 모든 속죄는 그리스도의 것임)
 대속죄일은 심판의 날이었다(Isaac Hershon, Treasures of the Talmud, 97). 다음은 미쉬나적 이해를 반영한다. “재판장이요 동시에 변호인, 전문가, 그리고 증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당신의 보좌에 좌정하셔서 기록책을 펼치셨다. 책이 읽혀진다. 그 책속에 모든 인간의 서명(署名)이 적혀 있다. 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직하며 세미한 음성이 들려온다. 천사들은 떨며 외치기를, 보라 심판의 날이로다. 하나님의 천사들조차도 그분 앞에서 순전(純全)하지 못하다. 목자가 자기 양떼를 불러 모아 자기 지팡이 아래로 지나가게 하듯, 하나님께서도 모든 피조물의 수한(壽限)을 정하시고, 그 운명을 미리 정하시려고 모든 산 영혼을 당신 앞으로 지나가게 하신다. 정월 초 하루 [Rosh Hashanah 혹은 나팔절]에 이 선고가 기록된다. 대속죄일에 살 자와 죽을 자가 확정된다. 그러나 회개와 기도 그리고 자선(慈善)은 이 불길한 선고를 피하게 할 수도 있다”(Jewish Encyclopedia, art. Day of Atonement, 1902 ed., 286, [ ] added; cf. H. M. Adler, Service of the Synagogue, 77). (491.1)
 개인적이든 국가적이든간에, 일년 내내 날마다 성소에서 거행되는 모든 희생 제사는 대속죄일을 예기(豫期)하였으며, 또 그 의식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바울은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히 10:3)이 있다고 상기하였다. 이제 그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491.2)
 매일 봉사의 목적
 조석으로 드리는 회중을 위한 희생 제사는 안식일과 모든 절기(절기 안식일을 포함)를 망라하여, 하루도 중단됨이 없이 드려졌다(출 29:38~4; 민 28:2~8). 이러한 국가적인 제사들 외에, 각 개인들은 저들 개인의 희생 제물들을 드렸다. 엘렌 화잇은 이와같이 간결하게 묘사하였다. “죄를 뉘우치는 죄인은 날마다 그의 제물을 성막의 문으로 가지고 와서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그의 죄를 고백함으로, 그 죄는 상징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흠없은 희생 제물에게로 옮겨졌다. 그런 다음에 그 짐승은 죽임을 당하였다. ∙∙∙ 죄인의 빼앗긴 생명을 나타내는 피, 곧 죄인의 죄과를 짊어진 그 희생 제물의 피는 제사장에 의해 성소로 옮겨져서 그 휘장 앞에 뿌려졌는데, 그 휘장 너머에는 그 죄인이 범한 율법을 넣어 둔 법궤가 있었다.” (491.3)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또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기는 제사장이 먹어야 하였다. ∙∙∙ 이 두 의식은 다같이 피가, 회개한 죄인에게서 성소로 옮겨지는 것을 상징하였다” (각 시대의 대쟁투, 418). (492.1)
 개인을 위한 이러한 두 종류의 속죄제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것과 회심한 이방인들을 위한 속죄제는 이미, 어느 정도 상세하게 연구되어 왔다. 이러한 진홍빛 죄의 기록들이 일년내내 성막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여호와의 목적이었다. 그 죄의 기록들은 등록된 죄들이 고백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용서된 것이라는 결정적 논박할 수 없는 증거물이었다. 이 증거는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 슥 3:1, 난외주)가 그 죄들을 계속해서 제시할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의 존전(導前)에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의식상 용서받은 죄를 상징하는 이 피의 기록들이 성소를 더럽혔다고 간주하셨으며, 그것들이 증거로서의 효용 가치가 끝났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의식들을 준비하셔서 그것으로 당신의 성소를 정결케 하시었다. (492.2)
 하나님께서는 이 정결이 대속죄일에 완성되도록 고안하셨으며, 그 날을 이스라엘의 제7월인 티스리 월(Tishri 月) 제 10일로 정하셨다(레 23:26~32). 그분은 이날 도말되어야 했던 “해마다(그러한)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혹은 확인)” (히 10:3, Moffatt)을 위한 예식들을 행하도록 명하셨다. 바울이 사용한 “상기시켜 주는 것” 혹은 “기억”(remembranee, anamnesis)이라는 헬라어 구약 성서에서 “판결 흉패”(출 28:29; 39:7)의 용도(“기념물”, zakar)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의 어깨 위에 매어진 두 개의 호마노(縞瑪瑙) 보석(출 28:12)의 용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492.3)
 이 단어는 재판장이 당신의 보석들을 수집하는 일을 마치실 때 사용하실 “기념책”에 대해서도 쓰여졌다(말 3:16). 이것은, 대제사장의 흉패에 물린 보석들로 대표된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암시인 것이다. 이 용어의 주요 개념은 심판의 근거 자료가 될 증거의 제공과 관계가 있다. (492.4)
 이러한 복잡한 대속죄일 의식들은 성소와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정결케”(레 16:19, 30)한 반면 참여하기를 거절한 자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중에서 “끊쳐”(레 23:29)졌다. 이러한 이중(二重)의 판결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판결들은 사법적이며 최종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것은 저들의 죄가 용서받고,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갔고(딤전 5:24) 매일 드리는 제사의 피로 가리움을 받은 것으로 등록된 예배자들의 행위를 옹호한 반면, 두번째 것은 저들의 죄가 고백되지 않음으로써 그 결과 용서되지 못한 무관심하고, 결국은 반역적인 자들이 받아 마땅한 운명을 확정한 것이었다. 첫번째 그룹은 “정결케”된 반면, 두번째는 “끊쳐졌다.” 이러한 선고들은 대속죄일 기간에 중보와 재판장으로서의 이중의 역할을 수행했던 대제사장의 행하는 특정의 행위로 말미암아 상징적으로 선고되었다. (492.5)
 나팔이 이스라엘에게 예비하라고 외친다
 여호와께서는 티스리 월 초하루를 나팔절로 제정하셨다. 그 명칭이 암시하는 바, 쇼파르(shofar) 혹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의 울림은 제사장들에게서 시작되어, 그 울림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을 타고 퍼져 나갔다. 그것은 대속죄일의 유대 명칭인, 욤 킵푸르(Yom Kippur)의 임박한 위기에 대하여 백성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493.1)
 이스라엘은 10일 후 곧, 욤 킵푸르(Rosh Hashanah 1:2)를 뜻하는 “덮어 가리는 날”(Cover-up Day)에, 마치 목자가 자기 양을 살피듯,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사례를 자세히 심리(審理)하신 후 판결을 내리실 것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헨리 다니엘 롭스(Henri Damiel Rops)는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참회의 열흘”동안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금식과 기도(cf. 레 23:27; 민 29:7; ‘like the feasts’ Moed Katan 3:6), 그리고 세정 의식(洗淨儀式), 심지어 칩거(穀居)까지 하면서 이 감동적인 예식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대제사장은 ∙∙∙ 기도로 자신을 성결케 하지 ∙∙∙ 않으면 안 되었다. 욤 킵푸르, 즉 대속죄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저 ‘그 날’(cf. 히 10:25)이라고 말했을지라도, 그것이 이 특별한 날을 가리키는 것이었음을 누구나 다 알았다(Daily Life in the Time of Christ, 397; cf. Josephus, Antiquities, III:10:3). (493.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날짜를 성력(聖曆)에 대속죄일로 정확하게 못 박으셨다는 개념은 후대의 예언 연구가들에게 다음의 명확한 선언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일깨웠다.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7). 이 시간은 2300번째 예언적 “주야”의 성소 정결 예식의 끝 곧, 원형적인 대속죄일에 일어났다(단 8:14). (493.3)
 대속죄일은 마지막 날 사건들의 표상이었음
 여호와께서는 욤 킵푸르가 “쉴 안식일”(한글 개역성경엔 ‘큰 안식일’로 번역됨—역자 주)(레 16:31)로 지켜지도록 명하셨으며, 모든 예배자는 그 예식을 준비할 때 자신의 식욕을 억제함으로 “스스로 괴롭게”(굴복하다 혹은 자아를 비천하게 하다, 시 35:13; 60:10)하도록 촉구하셨다. 율법서에 유일하게 지시되고(레 16:29; 23:27~32), 예레미야에 의해 “금식일”로 암시 되었으며(렘 36:6; cf. 슥 7:5; 8:19), 이사야에 의해 강조되었고(사 58:3~7; 참된 금식의 정의를 위해서는 CDF, 90을 보라), 누가에 의해 “금식”이라 언급되었으며(행 27:9), 바울에 의해선 “그 날”(히 10:25)이라고 분명하게 관찰된 바로 이 “금식”은 재림 전의 “말세”와 최후의 심판의 날(욜 2:15~27; 3:11~17)에 주의를 집중시킨다(히 10:25~33의 바울의 점진적인 논증을 참조하라). (493.4)
 바울은 이 의식에 함축된 종말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그 날”(히 10:25)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예언적 징조들의 성취를 목격할 때 더욱 긴박감을 가지고 저들 자신들을 준비하라고 촉구하였다. 고대의 대속죄일 의식에 대한 상세한 이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명료하게 할 것이며, 천상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의 직무를 설명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성소를 척량하고” 그 다음 나가서 성소 기별을 전한 밀러주의 운동의 잔류자(殘留者)들의 선포에 바른 조명을 비추어 준다. (493.5)
 대제사장은 “그 날”을 위해 자신을 준비시켰음
 대제사장은 그 날의 봉사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준비시켰다. 성전이 존속하고 있던 여러 세기 동안, 그는 대속죄일 1주 전에 성전 경내의 한 방으로 거처를 옮긴 후, 그보다 더 연로한 몇 제사장들과 함께 그 의식의 전과정을 재검토하였다. 랍비들은 회고하기를, 대제사장이 제3일째와 7일째에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뿌림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의 의식상의 정결을 확실케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사도가 그의 독자들에게 이 의식을 상기시켰을 때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을까(히 9:13; 민 19:13 참조). (494.1)
 대속죄일에 필요했던 열 다섯 마리의 희생 짐승들은 전날에 신중하게 선별되었으며, 그 중 어느 하나에 흠이 발견될 경우를 대비하여 대체할 짐승들도 마련해 놓았다. 대속죄일 아침 동트기 전, 대제사장은 그 희생 제물들이 무흠(無欠)하다는 것, 즉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엡 5:27)음을 확실시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조사하였다. 세상 죄를 지고 가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희생 제물인 예수의 완전성은 이렇게 강조되었다. 구주의 죽으심은 수많은 목적들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예시(例示)하기 위해서 여러 희생 제물들이 필요 되었다. (494.2)
 그들이 담당할 역할을 위해 준비를 갖추고 묶여 있던 이 짐승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유효하게 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과, 성소와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을 위한 그의 특별한 대속죄일 의식에 필요했던 것으로 분류되었다. (4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