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의식에 있어서 복잡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의식의 모든 부분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기치 않게,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구세주의 정결케 하시는 사역의 여러 국면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 죽음 당하고 불태워진 암소로부터 얻은 이 정결케 하는 보배는 고대 이스라엘을 위해 열려진 자유의 샘과 결합된, 그것의 죽음의 효험을 대표한다. 의식에 사용된 그 보배는 높은 아크로폴리스의 장엄한 성전에서가 아니라 성벽 밖에 있는 쓸쓸한 화장용 재목으로부터 왔다. 그것은 호화스럽고 희귀한 꽃다발과 함께가 아니라 평범한 우슬초 가지와 함께, 금홀이 아니라 백향목 가지와 함께, 힘 있는 군주의 후원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하지만 성실한 젊은이의 미숙한 손으로, 숭배받는 성자들의 귀중한 유품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붉은 암송아지의 빻아진 재로부터, 신비한 산의 녹은 눈으로부터 흘러 넘치는 성스러운 강물로 부터가 아니라 졸졸 흐르는 이름없는 샘으로부터, 그리고 유명한 예술가가 귀금속으로 만든 보석 상자 안에서가 아니라 단순한 질그릇 안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이 비유로부터 명백하고도 힘있는 기별이 온다. 그것의 초점은 갈바리와 그 곳에서 죽으신 우리의 구세주에게 맞춰져 있다.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이 진리를 어떻게 우리 생활에 적용해야 할지를 가르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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