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8. 붉은 암송아지 (나의 모든 첩촉은 그리스도의 것임)
 죽음은 최종적이며 필연적인 죄의 결과이다(롬 6:23). 악으로 인한 무섭고 피할 수 없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요약되었다. 죽음은 그 자신 안에, 반역이 하늘과 이 땅에서 야기한 모든 공포를 모으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우리 주변의 죽음과 소멸은 죄의 수확물이다. 의식적인 법에 있어서 죽음은 시체나 그것의 어떤 부위에 의하여 상징되었다(민 19:11, 13, 16). 죄 자체와 마찬가지로 죄의 소산물들은 전염성이 큰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주검이나 그것의 부산물의 무엇이든지 그것과의 접촉은 사람이나 물건을 부정하게 하였으며 정결케 함이 요구되었다. (480.1)
 레위기와 민수기의 법령은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백성들이 시체와의 접촉에 의해 부정하게 되는 것을 피하도록 자주 경고하였다(레 21:1; 민 19:11~16). 이것은 똑같은 이유로 하나님의 “왕같은 제사장”들도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불행이 들이닥칠 때 주께서는 독특한 치료 책과 함께 특별한 속죄제를 준비하셨고, 세목들을 모세에게 설명하셨다. 정결함은 “암송아지의 재”로 말미암아 얻을 수 있었다(히 9:13). 이 의식 역시 언약의 교재로의 복권을 가져왔다. 이 의식의 몇 가지 세목들을 고찰해 보자(민 19:1~22). (480.2)
 첫번째 붉은 암송아지가 죽임을 당함
 미리암의 문둥병을 위한 애도의 30일 후에 모세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명령을 수행하였고, 첫번째 붉은 암송아지를 죽이고 불살랐다(Josephus, Antiquities V, 4:6). 랍비들은 그것의 재는 사실상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느브갓네살에게 파괴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될 때까지의, 추후 800년 동안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정결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고 기억한다. (480.3)
 유랑자들과 함께 팔레스틴으로 돌아 와서 에스라가 두번째 암송아지의 재를 준비했으리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 때와 티투스에 의한 거룩한 성의 약탈 사이에, 다섯 마리가 더 불태워졌는데, 그것은 히브리인들 중에서 공식적인 회막과 성전예배의 16세기 동안 합계 일곱번 그러한 속죄제를 드린 셈이 되었다(Parah, 3:5). 일곱은 완전을 암시한다(사도행적, 585). 정규적인 속죄제가 자주 반복된 반면에 이 속죄제는 그렇지 않았다. (480.4)
 엘렌 화잇은 우리의 주의를 이 사실의 핵심에 집중시킨다. “한 암송아지, 한 법궤, 한 놋뱀은 한 위대한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상 깊게 가르친다”(4T, 120). 이런 방식으로 제사장과 백성들을 위한 특별한 속죄제의 독특성과 완전성이 강조되었다. (481.1)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유익을 얻을 수 있었기에 전체로서의 회중은 초태생의 속량을 위하여 드려진 은 반세겔들로 붉은 암송아지를 사는 일에 기여했다(Shekalim, 1:1, note 2, “모든 공동제물”). 이 동전은 원래는 “그의 영혼을 위한 속전”이나 각 가정의 상속자의 의식적 해방(출 30:11~16)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의식적인 부정이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만국 중에서 하나님의 초태생들인 온 이스라엘의 충분하고도 완전한 속량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죄의 치료할 수 없는 감염에 의해 전염된 모든 사람들의 구속을 포함했다. 그것은 “은이나 ∙∙∙ 없어질 것으로”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벧전 1:18, 19) 모든 믿는 자들의 최종적인 속량을 예견했다. (481.2)
 규정에 의하면 붉은 송아지는 꼭 3년 이상된 것이어야 하였다(Parah, 1:1). 이것이 메시야의 희생적인 봉사의 1,260일과, 그분의 봉사의 기간을 마치신 후에 “이레의 절반”에 그분이 “끊어져 없어”(단 9:26, 27)짐을 예견했는가? 영원하신 성령이시여, 우리로 이 표징들을 바로 읽게 하여 주소서. (481.3)
 암송아지는 반드시 붉어야 함
 다른 희생의 제물들은 어떤 색깔이라도 무방하였지만 이것은 붉되, 완전히 붉은색이어야만 했다. 랍비들은 만일 암송아지의 뿔이나 굽이 검거나 둘다 검거나 같은 소낭(follicle)에서 검거나 흰털이 두 개가 나왔다면, 그것은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고 믿었다(Parah, 2:2, 5). 이와 같은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그것은 이스라엘 땅 밖에서 찾아도 무방하였다(Parah, 2:1). 따라서 적합한 짐승이 발견되었을 때 엄청난 값이 요구되었다. 이와같이 이 희생의 독특성과 희귀성이 드러났다. (481.4)
 이 귀중함이 요한의 곤경을 예견하였는가? 최후 심판에 대한 이상 가운데서 우주를 샅샅이 뒤진 후에도, 재판관의 증거의 원부(元簿)를 취하고, 그것의 비밀을 취급하기에 합당한 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게시자에게 보였다. 그 다음에 그는 그 눈물을 씻고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도록 격려를 받았다(계 5:2~6; 실물교훈, 294; 욥 33:28과 비교). 기쁘게도 그는, 나타내는 증거들에 둘러싸인, 우주 정부의 수도에 계신 피흘리는 어린양을 보았는데, 그분이 자격이 있고도 남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그러한 표징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보았다. 그분의 피는 구속적인 권위(redemptive authority)로 영원한 보좌를 가득 채웠다. 진홍색 암송아지의 휘귀성은 그분의 희생적 죽음을 나타내는 홍포를 입으신, 비할데없고, 보배롭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리스도에게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481.5)
 오래전에 쿠르츠(H. Kurtz)는 “사람에게 피의 생명력이 붉은 뺨과 입술에 그리고 피부의 선명한 붉은 빛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붉은 암송아지에게 있어서도 피는 그와 같은 원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에 상응하는 색으로 외부에 자신을 나타낸다. 소의 붉은 색조는 그것의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특징이 되는 표징이며 사망의 권세의 해독 수단이 되기에 적합하게 만들었다”라고 시사했다(Sacrificial Worship of the Old Testament, 427). (481.6)
 붉은색은 또한 피의 상징이기도 하다(4T, 120). 영감의 말씀은 이 색깔은 갈바리에서 살육된 희생으로부터 흘러나온 유혈의 흐름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복음 선지자는 메시야가 피로 물든 옷을 입고 죄에 대항하여 외로이 싸우시면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틀을 밟고 있는 것을 주목하였다(사 63:1~3; 1:18). (482.1)
 암송아지는 완전하여야 함
 구세주의 비길 데 없는 품성을 묘사하기 위해서 암송아지는 반드시 “점”이 없어야 하였다. 이것은 그의 피부로 뚫고 나올 어떤 내적인 부패도 그에게 없었다는 진리를 강조한다. 그는 반드시 그가 외형상의 기형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런 “흠”도 없어야 하였다. 그의 완전은 “영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당신의 법칙을 순종함으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 모본”이신 그분을 묘사하였다(시대의 소망, 50, 51). 피는 구속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쏟아 부어진 생명의 상징이다. 붉은 암 송아지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봉사 안에 생명과 죽음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482.2)
 암송아지는 반드시 풀어 놓아야 하고 멍에를 메지 않아야 함
 그 짐승은 결코 멍에를 메지 않았어야 하였다(민 19:2, Parah 2:3). “봉사를 위해 메는 멍에는 하나님의 율법”(시대의 소망, 329)이므로 “거듭, 그리스도가 예표되었다”(4T, 120). 영광의 주께서는 대속 사업을 자원하기 위해 그분의 보좌로부터 자의로 내려오셨다. “그분에게는 의무적으로 져야 할 멍에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독립적이시며, 법 위에 계셨기 때문이다”(4T, 120). 우주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어떤 창조된 존재도 인간을 위한 속량물이 될 수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스러우셨기 때문에 죄된 인류의 구속을 떠맡으실 수 있으셨다”(4T, 121; 7BC, 904; 5BC, 1136). 그러므로 멍에를 메지 않은 암송아지는 오직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유일한 희생 제물(그리스도)을 대표한다. (482.3)
 암송아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파라(Parah)는 “새끼를 배는, 짐을 운반하는”의 뜻이다. 이 암컷 동물은 주님의 봉사의 풍성함과 부유함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우리가 보아 온 것처럼 레위기 법전에는, 전체로서의 국가를 위해서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위한 속죄 제물은 수컷으로부터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기하였다(레 4:1~21). 그러나 이것은, 아마도 생명의 요람(the Cradle of life)이 또한 그것의 속전이라는 것을 예배자들이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암것이었을 것이다. (482.4)
 소는 이스라엘 진영의 밖에서 죽임을 당하였음
 붉은 암송아지는 발견된 그 순간부터 오로지 “끌려”(민 19:2)나와 진 밖에서 죽는 한 목적을 위해서 살았다. 이 형 집행지는 그분의 속죄의 죽음이 모든 인류를 포용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죽음의 장소가 히브리인들만을 위해서 유대의 제단에서가 아니라 성밖이 되리라는 것을 예측케 하였다(히 13:11, 12. cf. the female sacrifices for non-Israelife penitents, 레 4:22~35). (4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