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7. 참새 두 마리 (나의 모든 치료는 그리스도의 것임)
 핏물에서의 침례
 그러나 이 잔인한 죽음과 냉혹한 매장은 끝이 아니었다. 그 죽은 새는 상징적으로 그 쌍둥이에 의하여 살았다. 이것을 예시(例示)하기 위해 제사장은 살아 있는 참새의 날개 끝과 꼬리를 잡고, 작은 질그릇 침례탕 안에서 물과 피에 잠그는 침례를 베풀었다. 그것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한 질문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를 상징하는 피의 침례에 대한 것인가? (477.2)
 그 다음에 훤히 트인 들판을 향해 돌아서서 제사장은, 그 깃털에 있는 동료의 생명—핏소리를 들으면서 그 작은 새가 하늘을 향해 날도록 풀어 주었다. (477.3)
 엘렌 화잇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논평을 남기었다. “죽임을 당한 새의 피에 적셔져서 그의 즐거운 생명을 누리도록 놓임받은 산 새에 대한 놀라운 상징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속죄의 상징이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뒤섞여 있으면서, 진리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감추인 보화, 즉 사죄의 피와 우리의 구주의 부활 및 생명과의 연합을 보여 주었다. 죽임을 당한 새는 흐르는 물 위에 있었고, 그 흘러가는 시내는 창세 전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피의 영원히 흐르고 영원히 깨끗게 하는 효험의 상징이었으며, 그들이 모든 죄의 흔적을 씻어 깨끗게 될 수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 열려진 샘이었다”(1BC, 1111). (477.4)
 많은 피뿌림
 그 다음 제사장은 홍색실로 백향목 가지에 묶인 우슬초를 물과 피에 담그었고 문둥병자의 손과, 랍비들에 따르면 그의 이마에 7번 뿌렸다(Nagain 14:1). (477.5)
 “일곱”은 깨끗게 됨의 완결성과 철저함을 시사한다(사도행적, 585). (477.6)
 그럴지라도 문둥병자는 뒤이은 의식들이 그에게 완전한 교제를 허용하기 전까지는 몇 주 동안 그의 가족으로부터 차단된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면저 의식의 첫날과 일곱째 날에 그의 몸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털이 깎여졌다(Nagain, 2: 4, 14: 2, 3). 문둥 병자의 쇠망의 증거였던 회색털은(호 7:9; 사 7:20; Negaim, 4:1)이제 사라졌고 그가 죄의 허물로부터 벗어났음을 나타내 주었다. 그 다음에 문둥병자는 의식적인 잠금 혹은 침례를 받았고(레 14:9; Negaim, 14:2; 엡 5:26; 딛 3:5과 비교)의식의 최종 절차를 위해 준비되었다. (477.7)
 피로 기름부음
 제사장은 문둥병자의 속건제로 세마리양 중 한 마리를 바쳤다. 그릇에 그 것의 피를 담은 채, 그는 그를 데리고 회막 문으로 갔다. 바로 밖에 문둥병자를 서 있게 한 다음 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문지방 너머 질러 뜰 안으로 들이밀도록 요청하였다. 어린양의 피 얼마를 자신의 왼손바닥에 부으면서, 제사장은 그의 손가락을 그 곳에 담갔다. 그리고 문둥 병자의 오른편 귀에 그 피를 발랐다. 그 다음 제사장은 문둥병자의 모든 손을 뜰 안으로 들이밀도록 하고 같은 방식으로 그의 엄지손가락에 피를 발랐으며, 마지막으로 그의 오른발 엄지에도 그렇게 했다. 모든 의식에서와같이 이 의식에서 제사장이 사용한 “손가락”은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예식에 있어서 성령의 세밀하고 손수하시는 봉사를 표시한다(눅 11:20; 마 12:28과 비교). (478.1)
 그의 동료의 피에 젖은 채 하늘로 날라가 버린 산 새는 우리의 인성을 입고 그의 희생의 피 공로를 가지고 그의 아버지에게 올라가신 예수님을 생각케 한다. 요한은 모든 회개자를 정결케 하시려고 영원한 보좌에 그분의 피를 쏟으신 바로 그 행동 가운데서 날아 올라간 참새의 원형을 보았다. (478.2)
 기름부음
 예수께서는 성령의 선물을 큰 폭포처럼 내려 보낼 사전 준비로 이 일을 하셨다. 깨끗함을 입은 문둥병자에게 이것이 부여됨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제사장은 그의 피묻은 손바닥에 기름을 붓고, 그것을 그의 손가락으로 하나님의 보좌의 위치인 지성소를 향하여 “일곱번” 튀기었다. 그 다음 그는 문둥병자에게 그의 머리와 그의 손과 그의 발에 했던 것을 반복하도록 요청하였으며, 이미 피가 칠해진 부분인 그의 오른쪽 귀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기름을 발랐다. (478.3)
 이 쌍둥이 의식은 깨끗해진 문둥병자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를 위하여 일하고 갈바리의 뿌려진 피와 오순절의 성령의 선물에 의해 바르게 된 그의 길을 따라 길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선포하였다. 피와 기름으로 홈뻑 적셔진 제사장의 손은 영원한 성령에 의해 지원된 구세주의 희생과 중보의 두 가지 중요한 봉사에 대한 말 없는 증언이었다. (478.4)
 다음에 제사장은 문둥병자가 회개의 속죄제와 헌신의 번제를 그 자신과 그의 모든 재산을 주님께 바침을 보여 주는 합당한 소제와 전제와 함께 드리는 일을 도왔다. 그는 최종적으로, 그 문둥병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하며 그의 가 족과 연합하고 그의 백성들과의 언약의 관계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선언하였다. (478.5)
 우리가 우리 마당의 이 곳에서 저 곳으로 행복하게 날아다니는 평범한 갈색 새들을 바라볼 때 무슨 생각이 우리 마음에서 솟구치는가? 참새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발견되고 그의 팔고 사는 거리에서 날개치는 것이 보여진다. 이스라엘의 의식(儀式)용품 시장에서 불과 한 앗사리온의 가치인데도, 예수께서는 귀한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해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참새를 사용하셨다. 인간이 가치 없게 평가하고 무관심 가운데 길바닥에 던져 버리고 땅에 파묻어 버리는 것을 하늘은 귀중하게 여기신다. (478.6)
 우리의 주의를 끄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볼품없는 참새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서 구원의 깨끗게 하시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다. 만약 그들이 진지하고 겸손하게 연구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둥병자의 정결케 함을 다루는 의식 법에 깊이 간직된 그분의 “자서전”의 함축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그들을 깨끗게 하기 위해 그분의 피를 흘리신 후에, 그 죽은 참새(그리스도)를 땅에 던져 버렸고 그들의 복수에 불타는 손가락으로 짓이겨 버렸다. 그리고 그 때에 오직 아버지만이 다시 모으셨다. 지금 그 참새(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깊은 생각 속에 묻고 있다.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애 1:12). (4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