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8부 거룩한 삶에 예수님과 함께 (모든 충만함 안의 자유) 37. 참새 두 마리 (나의 모든 치료는 그리스도의 것임)
 참새 두 마리는 독특한 학생임
 참새는 아마도 팔레스틴의 새 중 가장 혼했을 것이다. 반면에 문둥병자의 희생 제물이 참으로 참새였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짹짹 우는 새들”(twitterer)을 뜻하는 의성어인 단어와, 그와 어원이 같은 앗시리아 용어 사파루(saparu)를 놓고 볼 때 이 새는 흠정역 난외주에 제시되어 있는 바와같이 십중팔구 참새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레 14:4; Nagaim, 14:2, SDABD, art, “Sparrow”). (474.5)
 참새는 문둥 병자들이 지금 당장 깨끗해지려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 당시에 성전에서 “엄청난 값”에 팔렸을 것임에 틀림없다(Redemption, or The First Advent of Christ, 74). 그 값은 나중에 떨어졌다. (475.1)
 참새는 길들여지지 않지만 사람들의 거주지 가까이 살기를 좋아하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집 처마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까지 하며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기도 한다. 참새는 항상 별로 값어치가 나가지 않았다(마 10:29~30), 심지어는 800년 후 문둥병 정결을 위한 참새 시장이 열리고 있었던 그리스도 시대에도 다섯 마리가 가장 적은 동전 단위인 앗사리온(farthing) 둘(눅 12:6)에 팔렸다. 랍비의 법에 의하면 반드시 크기나 값이나 외형에 있어서 같아야 하는 이 두 마리 참새는 경멸당하고 병에 걸린, 사회의 버림받은 자들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보편적인 운명에 함께 참여하신 방식을 예시하는 한 희생 제물이었다. (475.2)
 백향목 가지
 백향목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위엄 있고 가치 있는 나무였다. 인간이 어디로 여행하든지 볼 수 있는 백향목은 더위나 추위에 견디며 불모의 황무지와 산꼭대기에서도 똑같이 생장력이 왕성하며, 폭풍이나 가뭄도 똑같이 이겨 내며,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한다. 쇠퇴하지 않는 생명력과 그것의 넓게 퍼져 있는 뿌리를 깊게 밀어 넣어 비밀의 수분 공급원에 의존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골 3:3) 삶을 사는 자들을 상징한다. 삼림의 군주인 “백향목은 여러 차례 왕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 의인을 대표하는데 ∙∙∙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는 의인들을 대표한다”(부조와 선지자, 450, 시 92:12). 그것의 넓게 퍼진 가지들은 그분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은혜스러우시게도 보호의 덮개로 덮으시는 영원한 왕, 주님을 묘사한다. 부패를 견디고 향기롭고 당당한 백향목은 왕이신 그리스도의 한결같으심과 인애로 향기를 풍기고 있다. (475.3)
 붉은 실
 붉은 줄, 또는 꼬아진 것은 성경 이야기들 가운데 특출한 역할을 한다. 양의 옷인 양모로 만들어진 그 줄의 색깔은 짓이겨진 양홍(洋紅)색 거미의 진수로부터 얻어졌다. 거미는 그 실을 붉게 물들이기 위해 생명을 내놓았다(W. Ewing & J. Tohomson, Temple Dictionary of the Bible, 706). 구속의 이야기에서 이 단어는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세 가지 중요한 경우에 사용 되어졌다. 그것은 유다의 일시적인 사랑인 다말의 쌍동이 중 첫째인 베레스의 신분을 확인한 꼬인 홍사를 나타냈다(창 38:27~30). 그것은 저주받은 여리고의 창기 라합의 집에 구원을 표시하였다(수 2:15~21). 그것은 사랑을 속삭이는 솔로몬의 사랑하는 자의 입술을 뜻하였다(아 4:3; 요 19:29. 우슬초와 포도즙과 입술이 함께 사용되었음), 세 번이나 붉은 줄은 사물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대속죄일에 죽을 여호와를 위한 염소를 선발하였다(레 14:4; Yoma 4:2). 그것은 붉은 암송아지 예식에서 피를 뿌리는 비로 사용될 우슬초를 백향목가지에 묶었다(민 19:1~9)그것은 문둥병자의 정결을 위해 그와 유사한 피 뿌리는 도구를 만드는 데도 역시 사용되었다. (475.4)
 이러한 개념들이 그 상징에 함축되어 있다. (476.1)
 우슬초 한 묶음
 우슬초는 백리향(thyme), 로즈메리(rosemary), 박하(Mint), 세이보리(savory, 차조기과의 식물), 미묘라나(marjoram), 방향초들(arormatic herbs)을 포함하는 광대나물과(labiatae)에 속한다. 모피로 덮인 그것의 잎사귀는 액체를 잘 간직한다. “우슬초는 ∙∙∙ 문둥병자를 정결케 하는 데 있어서 정결케 함의 상징이었으며 ∙∙∙ 시편 기자의 기도 가운데도 우슬초의 의미가 드러나 보인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회리이다’(부조와 선지자, 277; 시 51:7, 문자적으로는 우슬초로 나를 “죄 없게” 혹은 “죄악 없이”의 뜻). 다윗의 히브리 단어 “정결케”(purge)는 문자적으로 “나에게 속죄제”이며, 붉은 암송아지 속죄제의 속량하고 정결케 하는 피에 적용되는 우슬초를 암시한다(민 19:9, RSV). 랍비들은 “레바논의 백향목(과) ∙∙∙ 담에 나는 우슬초”에 대한 그의 암시를 들어 솔로몬이 이 의식에 관심을 가졌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왕상 4:33절과 비교), 백향목의 뛰어난 위엄과 우슬초의 주제넘지 않는 겸손은 인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을 가리킨다. (476.2)
 질그릇
 물을 담은 질그릇 항아리는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 태어난 인성을 표상하며, 필요되고 오염된 자들에게 생명과 죽음의 정결케 하는 요소를 그분 안에 지니고 계시는 데 있어서의 그분의 겸손을 묘사한다. 그것은 또한 부정한 세상에 정결함과 구원의 보배를 전해야 하는 비천한 “질그릇”인 그분의 제자들 즉 우리를 대표한다(고후 4:6, 7; 고전 15:47, 48; 애 4:2). 이 평범하고 별로 가치 없는 오지 그릇은 죄의 문둥병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의식을 위한 가장 생명력 있는 요소들인 생수와 희생의 피를 담고 있었다. (476.3)
 감람유와 네 가지 제물
 감람유는 성령의 조명과 고침과 진정시키심을 상징하였다. 둘은 속죄제, 하나는 번제를 위한 세 마리 어린양과 그 것에 적합한 소제와 전제는, 회개한 죄인의 회복을 가져오는 구세주의 희생의 정결케 하심과 생명을 주는 공로의 다양한 모습을 가리켰다. (476.4)
 생수(living water)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제사장은 문둥병자를 데리고 샘을 찾아 촌락으로 나섰다. 그 샘의 생수를 질그릇에 절반을 채웠다(레 14:3, 4). 정체된 연못 혹은 못의 물은 영원히 신선한 생명의 물의 상징으로 적합지 않았다. (476.5)
 끔찍한 삶
 무작위로 선택된 참새 중 한 마리를 봉사자가 그의 손톱으로 머리를 비틀어 끊었다(레 1:15 하단). 이 끔찍한 도살의 행위는 빌라도의 용병과 헤롯의 군병들뿐 아니라, 그분 자신의 백성들의 손에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난폭한 대우를 회상케 한다. 그 무서운 갈바리의 드라마는 원격 조정된 비인격적 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손의 보복에 의하여 상연되었다. 작고 떨고 있는 죄없는 새와 대조되는 악의 가공할 힘은 이렇게 묘사되었다. 제사장의 행동 역시 자신이 제사장이시며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버리심을 표상했다. (476.6)
 그러고 나서 제사장은 그릇에 있는 물에 참새의 피를 짜고 근처에 구멍을 파고, 도살 장소 근처에 작은 사체를 묻는다(Negum, 14:1; 요 19:41, 42과 비교). 이 장소가, 부서지고 죽음당한 작은 갈색새에 의해 대표된, 실체의 장사 지낼, 골고다 옆에 있는 요셉의 새 무덤을 예상케 하는가? 그것이 예수께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하신 이 준엄한 말씀 가운데서 이 냉담한 행동에 대해서인가? 하늘의 참새(그리스도)가 냉정하게 이 지구에 내 던져졌을 때 그의 아버지도 그와 함께 고통스러워하셨다. 영원하신 생명이시여, 우리가 이 상징을 바로 읽도록 당신의 빛을 허락하소서. (4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