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히브리서의 이슈들 제29장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심
 앞장에서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으셨다고 하는 히브리서의 다섯 본문을 인용하였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지상 성소의 언약궤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모형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말은 그분께서 히브리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이미 하늘 성소의 지성소에 들어가셨음으로 시사한다. (358.1)
 신약에서 예수께서 하나님 곁에 서계신다든지 그분 옆에 그분의 보좌에 앉아계셨다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히브리서만이 아니다. 요한계시록3:21에서 요한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인용하여 말한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은 아마도 1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에 기록되었을 것인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또는 그 옆에 계신 것은 그분이 승천하신 후 며칠이 되지 않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그의 청중에게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오른편으로’라고 번역할 수도 있음] 예수를 높이시매”(행 2:33)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신약에서 적어도 다른 열 곳 이상의 본문이 그와 같이 말한다. (358.2)
 그러면 우리는 예수께서 그분의 승천 때에 하늘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는 그분의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명백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 재림교회는 어떻게 그분께서 1844년까지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는가? (358.3)
 위치인가, 지위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하나님의 오른편”이라는 말이 매우 위치(location)에 대한 언급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 말은 지위(status)와 더 관계가 깊다. 예수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자신의 진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히브리서의 저자가 인용하는 구약의 구절은 시편 110:1이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본문에 대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 간에 나눈 대화이다. 그리스도는 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인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다.”1) 이처럼 그 본문이 일차적으로 강조하는 점은 위치가 아니다. 요점은 그리스도의 제왕적인 지위이다. (359.1)
 구약의 다른 곳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오른편에 앉는 것이 일차적으로 지위를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윗의 생애가 마지막에 가까웠을 때 누가 그의 후계자가 될 지를 두고 경쟁이 있었던 것을 아마도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에게 그녀의 아들인 솔로몬이 다음 왕이 될것이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복형인 아도니야 역시 왕이 되기를 원하여 그의 야심을 이루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계략을 알아차렸을 때 그녀는 다윗에게 가서,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왕좌]에 앉으리라’ 하셨”(왕상 1:17)다고 말했다. 내 왕위에 앉으리라는 말이 나를 이어 왕이 되어라는 말과 나란히 쓰인 것을 주목해 보라. 열왕기상 2:12은 말한다.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솔로몬이 단 한 순간도 왕좌를 떠나지 않았을 리 없으며, 여기서도 왕좌에 앉는다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위치가 아니라 지위에 있다. (359.2)
 이러한 강조는 특별히 역대하 6:3, 10에서 명백하다. 그 장 전체는 솔로몬 성전의 봉헌식에 관한 것이다. 3절에서 솔로몬은 분명히 단상 위에 서서, “얼굴을 돌려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였다. 솔로몬이 그 때에 그의 왕좌에 앉아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10절에서 솔로몬은 말했다.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셨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일어나 이스라엘 왕위에 앉고.” 솔로몬이 이렇게 말할 때 문자 그대로 그의 보좌에 앉아있던 것이 아니므로, “이스라엘 왕 위에 앉고”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가진 그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왕위에 앉”았다고 한 것을 보면, 솔로몬 자신도 그 말을 이렇게 이해한 것이 확실하다. “왕 위에 앉는다.”는 말은 “왕의 자리를 대신 채운다.”는 의미이다. (360.1)
 마찬가지로, 히브리서를 포함한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직후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든지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으셨다”는 진술들은 그 위치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구약의 증거에 비추어 보면, 일차적인 취지는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어디에 앉으셨는지가 아니라 그분이 왕의 지위로 높아지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360.2)
 하늘 성소에 관한 신약의 개념
 앞장과 이 장에서 우리가 다뤄온 문제는 예수께서 승천하셨을 때 하늘의 성소 칸에 들어가셨느냐 아니면 지성소 칸에 들어가셨느냐 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하려면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하늘 성소의 성소 칸은 무엇이며 지성소 칸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어떤 것인가? (360.3)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결론을 먼저 밝힘으로써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그 다음에 그 이유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이다. 나의 결론은 예수께서 승천 시에 들어가신 보좌실에 성소와 지성소가 모두 포함된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실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거부하기 전에 먼저 이 장을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란다. 나의 주장에 대한 네 가지 이유를 소개하려고 한다. (361.1)
 1. 지상 성소의 두 칸 안에는 신성의 세 분이 모두 묘사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은 지성소의 언약궤로 나타나 있고, 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소의 진설병 상에 나타나며, 성령은 일곱 개의 가지가 있는 등대로 나타나는데, 그 또한 성소에 있다. 우리는 물론 아버지, 아들,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신 것을 안단. 따라서 그분들이 하늘 성소에 함께 계시지, 분리된 두 칸에 나누어져 계시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지상 성소에서 예수는 한쪽 칸에 있는 떡상으로 묘사되고, 아버지는 다른 칸에 있는 언약궤로 묘사되었으나, 하늘에서는 두 분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계신다는 사실을 볼 때 이것은 분명하다. (361.2)
 2. 하늘 성소에는 휘장이 없다.
 지상 성소에 휘장이 없다면 한 칸만 있을 것이다. 휘장은 왜 필요한가? 그 목적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매일 직접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참조 레 16:3).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께는 하나님의 임재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없고, 따라서 휘장도 필요하지 않다. 이것이 예수께서 승천 직후에 들어가신 하늘 성소가 둘이 아니라 한 “칸”으로 되어 있다는 내 제안의 둘째 이유이다. (361.3)
 하늘 성소에는 휘장이 없다는 나의 제안은 사실 히브리서 6:20과 모순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신약 시대 당시에 그리스도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하늘 성소에 휘장이 없다면 왜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휘장 안으로”들어가셨다고 말했을까? 문제는 저자의 의도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말이 하늘 성소 건축물에 대한 문자적인 묘사로 이해하도록 한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지상 성소의 건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해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에 관하여 강조하려고 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의 요점은(히브리서와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 예수께서 그분의 승천에 곧이어 하나님의 임재 앞에 들어가셨다는 것이며, 휘장 안에라는 말은 그것을 뜻하는 저자 나름의 표현이다. (361.4)
 3. 지상 성소에서 분향단은 성소 칸에 있었지만,
 그 단은 지성소의 기물로 간주되었다. 사실 히브리서는 향단의 자리를 지성소에 두고 있다. 히브리서9:3, 4“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향단]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라고 말한다. 지상 성소에서 향단은 성소 칸에 있었는데 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이 지성소에 있었다고 말하였을까? 부정확하게 보이는 이 사실에 대하여 그는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제단이 제사장의 봉사 중에서 지성소 유형에 속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지상 성소에서 그것을 성소 칸에 두었던 것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 앞에 매일 보이는 것을 단순히 가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분향단 봉사는 실제로 지성소 칸에 해당되는 유형의 봉사였기 때문에, 그 제단을 실제로 그 안에 두지는 않으면서 될 수 있으면 그 칸에 가까운 자리에 두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윌리엄 존슨은 저자가 향단이 지성소에 있다고 한 것을 “착오”로 여긴다고 말한다. 참조 Hebrews. Bible Amplifier series (Nampa, Idaho: Pacific Press Publishing Association, 1994), 157. (362.1)
 첫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지시는 향단이 지성소에 속한 기능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제단[향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출 30:6;참조 40:5)라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에 대하여 해롤드 카마초(Harold S. Camacho)는 〈앤드루즈 유니버시티 세미너리 스터디즈〉에 실린 논문에서 “이 제단의 위치가 성소 칸이나 그 기물들과 연관되지 않고, 지성소와 그 기물들에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향단이 지성소, 그리고 그 칸과 관련된 하나님과의 소통에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2)라고 설명한다. (362.2)
 둘째, 열왕기상 6:22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때 솔로몬이 “내소에 속한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다고 말한다. 향단이 성소 칸에 놓여 있었지만, 열왕기상의 기자는 그것이 지성소에 “속하였다”고 생각한 것에 유의하라. 다시 말해서, 그것의 기능은 지성소에 속한 기능이었다. (3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