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나이우스(Irenaeus)는 성육신을 하나님의 계속되는 창조 사역의 절정이며 완성으로 해석함으로 창조와 구속 사이의 완전한 통합을 이루어내고자 시도하였는데, 20세기의 어떤 신학자들은 이레나이우스의 이런 입장을 되살려 과정 철학(philosopht of process)의 개념 안에서 그리스도론적인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보았다. 이 새로운 견해는 진화론이 그 영향력을 높여감에 따라 한층 더 힘을 얻었다. 이 견해는 앨프레드 N. 화이트 헤드(Alfred N. Whitehead, 1861-1947년)의 과정 철학을 그 배경으로 삼아 상당히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찰스 하츠혼(Charles Hartshorne, 1897년 출생), 노먼 피튼버그(Norman Pittenberg, 1905년 출생), 존 콥(John Cobb, 1934년 출생), 데이비드 그리핀(David Griffin, 1939년 출생) 같은 지지자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신학에, 또한 그 연장선 상에서 그리스도론에 하나의 접근 방식으로 채택되고 적용되었다. 과정 그리스도론에서는 하나님은 더 이상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시다. 그분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면서 앞으로 나아가신다. 그분은 언제나 움직이는 상태로 변화하는 세상과의 교류를 통해서 현재의 자기가 아닌 또 다른 자기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존재하신다. 과정 그리스도론은 죄,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동정녀 탄생,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 같은 주제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반면에, 예수의 인성과 역사 속에서 그분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관해서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거의 무조건적인 열정을 나타낸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능가할 수 없이 탁월한 수준으로 자기를 계시하셨다 해도,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후에 그보다 더 탁월한 계시를 통해 자기를 나타내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239.4)
 6.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는 그리스도론에 관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술들 중의 하나인 그의 저서〈예수: 하나님이자 인간(Jesus: God and Man)〉(1968년)에서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통제 아래 놓여있는 그의 계시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계시는 해독이 필요한 계시이다. 신학자가 이를 해독하는 일은 종말과 예언에 관련된 구약의 진술들,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그 의미가 분명해진 구약의 이상들에서 발견되는 단서들을 근거로 가능하다. 판넨베르크의 그리스도론은 여러 면,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고 그것을 옹호한 면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때로는 성경 본문들을, 어떤 경우들에는 헤겔(Hegel)을, 또 다른 경우들에는 현대 인류학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그의 방법론은 우리를 난관에 부딪치게 한다. (240.1)
 7. 해방 신학들
 해방 신학(liberation theology)은 그것의 그리스도론적인 주장과 더불어 개신교나 로마가톨릭 신학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해방신학자들은 이런 전통적인 신학방식을 너무 철학에 치우쳐 있고 너무 사색적이며 삶의 고통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본다. 해방 신학은 1960년대 후반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당시 사회 전반에 널리 펴져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변명할 수 없는 적대 행위로 비난 받던 고통과 압제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 해방 신학의 대표적 주창자로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페루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errez, 1928년 출생), 엘 살바도르의 혼 소브리노(Jon Sobrino, 1938년 출생), 브라질의 레오나르두 보프(Leonardo Boff, 1938년 출생), 우루과이의 후안 루이스 세군도(Juan Luis Segudo, 1925-1996년) 등이 있으며, 개신교에서는 브라질의 후고 아스만(Hugo Assmann, 1933-2008년)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학은 전통과 관습에 대한 비판적 반향이며, 그 시작점은 바로 압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관습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기존의 질서를 바꾸는 방향으로 그 흐름이 돌려져야만 한다. (240.2)
 그리스도를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압제 계급을 지지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칼케돈의 그리스도론에 반하여, 해방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가 근본적으로 버림받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해방자, 곧 정치적 반역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 예수로부터 시작하고 그후에 그분의 신성을 드러내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이다. 성경 말씀을 선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행방 신학의 문제이긴 하지만, 반면에 이 신학은 지나치게 영적으로만 해석되었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중요한 개선책을 제시하기도하였다. (240.3)
 마찬가지로, 흑인 신학(black theology) 또한 의심의 여지없이 해방의 문제와 관련 있는 신학이다. 해방 신학은 남아메리카의 로마가톨릭교회 안에서 처음 생겨난 반면에, 흑인 신학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북미의 흑인 개신교회들 안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마틴 루써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년),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ey Carmichael, 1941년 출생), 맬콤 엑스(Malcom X, 1925-1965년), James Cone(1938년 출생). J. 디오티스 로버츠(J. Deotis Roberts, 1927년 출생) 같은 여러 인물에 의해 각기 달리 만들어진 특성들을 따라서 다양한 양상으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모두 흑인들의 경험의 독특성과 이와 관련된 독특한 흑인 신학 및 흑인 그리스도론 계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신학과 그리스도론 모두 백인 신학자들이 서양 문화가 우월하다는 가정 하에 그 문화를 신학에까지 적용한 결과로 그것들이 서양 또는 헬라적인 방법론의 체계 안에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압제이다. (241.1)
 흑인 그리스도론에서는 역사적 예수가 크게 강조되고 있다. 그분은 압제 받는 존재였고, 따라서 그분의 삶과 봉사는 압제받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그분의 선포도 노예의 삶과 압제로부터의 해방이 가까웠음을 선포한 것이다. 흑인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의 성육신 및 그분의 부활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견해를 지니고 있는 반면에, 그분이 가져다 주신 구원에 관해서는 보통 그분이 흑인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서 하고 계시거나 하실 수 있는 일과 관련 지어 설명하고 있다. 흑인 신학의 주창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한 구주이심을 우리에게 올바로 일깨워주었다. (241.2)
 많은 사람들은 여성 신학(feminist theology) 또한 그 그리스도론과 더불어 해방 신학의 한 형태로 여긴다. “여성 해방”이라는 이전에 쓰였던 용어가 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이 신학은 여성들을 위한 정의와 자유 및 동등성을 성취하는 데 노력을 쏟고 있다. (241.3)
 사실상, 여성 신학을 지지하는 모든 학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신학의 출발점은 초월적 지위에 계신 하나님이나 그런 하나님이 주신 어떤 기별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이다. 그들은 이 경험을 진리의 근원과 척도로 여긴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이나 흑인 해방 신학처럼 여성 신학 또한 경험, 특히 여성들의 경험과 관심사와 필요 속에서 드러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반향이다. 1970년대에 시작된 이 운동이 최근 들어서는 점점 더 이질적인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런 까닭에 메리 데일리(Mary Daly, 1928년 출생) 같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독특한 속성을 지니시고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심을 부정하고자 한다 또한 카터 헤이워드(Carter Heyward, 1945년 출생)나 리타 브로크(Rita Brock, 1950년 출생) 같은 사람들은 성육신에 모든 사람을 다 포함시킴으로 그것을 일반화하고 있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로즈메리 래드포드(Rosemary Radford Ruether, 1936년 출생)처럼 아예 예수에 대한 대안적 해석들을 살펴본 후에 그 중에서 그를 여성 운동의 투사로 여기는 견해를 선택한다. (241.4)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상징들이 현저히 남성적이라는 것과 구세주가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신학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런 그리스도론을 배척한다. 이 같은 그리스도론은 남성들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부장 제도를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예수의 남성화가 여성이 열등한 존재이거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라는 기준을 인류에게 제공해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리더십과 관련된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오직 남성인 예수 안에만 존재하시면서 그분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주장은 하나님과 모든 사람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올바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리스도론이 남성 중심의 독특한 문화속에서 주로 남성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고 현재도 계속 그렇게 진행되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남성들의 질문들과 열망들만을 나타내 왔기 때문에, 여성 신학 지지자들은 그리스도론에서 여성의 경험은 무시되거나 생략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기존의 그리스도론은 완전히 제거되고, 인류 평등주의, 곧 여성들이 추구하는 완전함에 기여하는 방식의 새로운 그리스도론이 등장해야 한다. 여성신학자들은 여러 분야 중에서 특히 인간론과 구원론을 명료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여자들에 대한 남자들의 잔학 행위는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보여 주는 행위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본질적으로 독특한 그리스도의 신성 같은 기본적인 개념들까지도 버려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너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241.5)
 8. 〈성육하신 하나님의 신화〉
 최근에〈성육하신 하나님의 신화(The Myth of God lncarnate) 〉제목의 책이 출판되면서 큰 소동이 벌어졌는데, 아마도 그 책의 도발적인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 책은 그리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 저자들은 성육신에 관한 교리가 이제는 더 이상 명료한 교리가 아니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신 인간으로 나타낸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인간의 삶을 사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그분이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신화적 혹은 시적으로 표현한 현실성 없는 개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또한 그 신빙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은 구원론적인 측면에서의 예수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의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그분의 부활의 역할에 관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사실상 19세기의 자유주의 개념을 되살린 것으로, 그 내용은 전통적인 성육신 교리에 대한 어떤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242.1)
 9. 예수 세미나
 1985년부터 예수 세미나(08115 Seminar)의 회원들은 성경 또는 교리라는 감옥, 곧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예수를 투옥한 바로 그 감옥에서부터 그분을 해빙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급진적 개혁”을 주창하였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세미나의 학자들은 전통적인 본문 비평 방식과 그보다도 더 논쟁적인 여러 증거의 법칙을 적용하여, 마침내 복음서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들 중에 진실로 그분이 하신 말씀은 20퍼센트도 안되며, 그분이 하신 행위들은 그 비율이 그보다도 더 낮다고 결론지었다 제거된 것들 중에는 동정녀 탄생, 주기도문, 십자가 위에서 그가 하신 말씀들, 그분이 행하신 대부분의 이적들, 그분의 육체적 부활, 자신의 신성에 대한 그분의 주장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제거되고 남은 예수는 단지 사회 비평가이며 당대의 유대인 현인으로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인물에 불과하다. (242.2)
 10. 로마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론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대로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로마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론은 주로 “예수, 그분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들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구원론적인 질문은 단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242.3)
 신약에 대한 무비판적인 연구가 비판적인 연구로 전환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 연구 방법이 중세적인 방법에서 20세기의 접근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는 곧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이해가 정적인 것에서 발전적이고 실존적인 것으로 바뀐 것과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에도 해방 신학에서처럼 발달된 역사의식과 정치 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여기에도 개신교의 그리스도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종류의 접근 방식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으로부터 시작되는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으로, 피에트 쇼넨베르크(Piet Schoonenberg, 1911년 출생), 한스 우르스 폰발타자(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년), 그리고 테이야르 드 샤르댕(Teilhard de Chardin, 1881-1955년)이 그 대표적인 주창자들이다 카를 라너(Karl Rahner, 1904-1984년), 한스 큉(Hans Kung, 1928년 출생),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 1933년 출생), 에드바르트 스힐레베크스(Edward Shillebeeckx, 1914년 출생) 등에 의해 옹호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역사 속의 예수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론이다. 또한 레오나르두 보프(Leonardo Boff, 1938년 출생)와 혼소브리노(Jon Sobrino, 1938년 출생) 같은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들은 ‘신앙의 그리스도’보다 ‘역사의 예수’를 더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정통신학이 항상 정당한 행위와 더불어 가난하고 압제 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43.1)
 F. 최근의 동향
 오늘날 그리스도론에 관한 논쟁은 아주 유동적이며, 그 논쟁이 장차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다. 칼케돈 공의회의 결론인 “한 위격 안에 존재하는 두 본성”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계속해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꽤나 광범위한 의견 일치를 이루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칼케돈 공의회의 이 선언이 계속해서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된 진술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논의의 종결점이 아닌 시작점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난국에 만들어진 이 신조는 당대를 훨씬 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그 목적을 수행해 오고 있다. 이 신조가 오늘날에는 그 적절성의 일부를 상실했을 수도 있지만, 이 신조가 제시한 해답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질문들이 이제는 바뀌어버린 기준 틀을 전제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칼케돈 공의회에서 다루어진 문제들은 신약 자체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 문제들은 또한 우리가 계속해서 역점을 두고 다루어야 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2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