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위격과 본성에 관한 논쟁은 18세기에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다시 점화되었다. 계몽주의의 신봉자들은 진리 탐구에 있어서 이전의 모든 권위와 전통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이 철저히 배척된 가운데 계시가 아닌 이성이 진리의 최종 판별자로 자리 잡았다.
 1. 획기적인 전환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에 일어난 획기적인 전환으로 많은 지성인은 성경의 권위에는 조화되지 않고 문학비평을 강조하는 현대 사상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역사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들을 재진술하기에 이르렀다. 헤르만 라이마루스(Hermann Reimarus, 1694-1768년)를 필두로 제1차 세계대전의 시기까지 수많은 사상가들이 기적이나 그와 유사한 초자연적 요소들을 이미 다 거부한 상태에서 “역사적 예수”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탐구의 근저에는 진짜 예수 곧 “역사의 예수”“신앙의 그리스도”, 곧 신학자들과 교회의 공의회들이 주장하는 예수와는 전혀 다른 인물임이 증명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있었다. 비판 능력 발달 이전의 시대, 곧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의문이 전혀 제기되지 않고 죄인들을 구하시러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오신 하나님의 선재하시는 말씀과 더불어서 시작된 시대에 형성된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들이 점차적으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들로 대체되었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닌, 경건한 도덕가이고 개혁가이며 현대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 인물인 새로운 예수를 만들어 내었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분의 견해들이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알베르트 쉬바이처(Albert Schweitzer)는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의 학자들의 역사적 방법을 따랐지만 그의 저서〈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1906년)는 역사상의 예수를 찾는 자유주의적 탐구를 종식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237.3)
 2. 프리드리히 쉴라이어마허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프리드리히 쉴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년)는 합리주의와 형식적인 정통주의 모두를 반대하였다. 그는 신앙이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의 감정 위에서 확립된다고 규정지었다. 그는 교양 있는 계층의 사람들을 이같은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비길 데 없는 “하나님 의식(god-consciousness)”을 소유한 독특한 존재로 묘사하였다. 그가 말하는 이 “하나님 의식”은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전폭적인 의존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는 두 본성에 관한 교리를 단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신다는 진리만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된 것으로 볼 뿐, 부적절한 교리로 여겨 거부했다. 예수는 본성에 있어서는 우리와 같은 존재였지만, “그의 안에서의 하나님의 참다운 현존”을 이룰 정도로 절대적이고 완전한 “하나님 의식”으로 인해 우리와 구별되었다. 쉴라이어마허는 종교개혁 이후에 현대 그리스도론에 누구보다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37.4)
 3. 알브레히트 리췰
 쉴라이어마허와 마찬가지로 정통주의와 자유주의의 과도한 지성주의에 반대한 알브레히트 리췰(Albrecht Ritschl, 1822-1889년)은 그리스도교 교리를 가치 판단의 관점에서 접근하였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보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더 강조하였다. 그리스도는 단지 사람에 불과한 존재였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의 모본과 그분이 이루신 일로 비추어볼 때 그분은 하나님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존재이다. 리췰은 쉴라이어마허 다음으로 강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238.1)
 4. 케노시스주의(Kenoticism)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트프리트 토마지우스(Gottfried Thomasius, 1802-187513) 같은 케노시스주의자들은 신성이신 로고스가 성육신하시면서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이라는 신성에 속한 속성들을 내려놓으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빌립보서 2:7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실재성과 완전성을 옹호하고, 그분이 사람이 되심으로 받으신 굴욕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하여 애썼다. (238.2)
 E. 현대의 접근 방법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그리스도론의 쟁점들에 대한 대단히 많은 접근 방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에 대한 충분한 고찰은 본 저술의 영역 밖이다. 여기에서는 비교적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몇 가지 견해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완전히 새로운 견해는 아니더라도 아직 시도되지 않았거나 소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접근 방법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238.3)
 1. 카를 바르트의 삼위일체적인 그리스도론
 과학을 확신하고 감정을 강조하는 경향을 지닌 자유주의 신학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여긴 카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년)는 이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위격에 관한 초기 5세기 동안의 정통적 진술들을 재확인하는 일에 그의 열정을 다하였다. 그의 사상에 변화가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했고, 또한 그의 견해들이 19세기의 자유주의적 가설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바르트는 그의 삶 전반을 통해서 성경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오랜 기간 동안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끼쳤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이 이 교리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해석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매우 큰 변화였다. 그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동일한 존재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하나님 되심과 참 인간 되심,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부활, 그 밖에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에 포함된 다른 특성들, 이 모두를 아무 주저 없이 선포하였다.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론의 이런 중요한 요소들을 회복함에 있어서 자신이 본질적인 모든 면에서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바르트가 오랫동안 소홀히 취급되어 오던 그리스도론에 대한 성경적 접근방법을 신학적 중요성을 지닌 연구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의 많은 부분은 루돌프불트만의 급진적 그리스도론에 반대하는 견해를 나타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38.4)
 2. 루돌프 불트만의 비신화화한 그리스도
 신약을 급진적 관점에서 바라본 루돌프 불트만(Rucblf Bultmann, 1884-1976년)은 성경의 기자들이 사실에 입각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예수의 실제 역사에 신화적 요소들을 덧붙였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고대 세계의 범주 안에서 그 시대의 관점으로 성경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자기의 독자들에게 이전에 자유주의 학자들이 범했던 잘못, 곧 단순히 실재적인 성육신, 실재적인 기적들, 실재적인 속죄, 실재적인 부활, 실재적인 승천만을 부정하는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의 접근 방법은 더 이상 부정이 아닌 일종의 인간론적인 재해석이었다. 이 접근 방식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신약의 기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종교적 진리들과 경험들을 발견해 내는 것, 그 이야기들과 예수의 위격을 비신화화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존적인 삶에 조화되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39.1)
 3. D. M. 베일리의 역설적(逆說的) 그리스도론
 도널드 M. 베일리(Donald M. Baillie)는 그의 탁월한 저서인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God Was in Chris)〉1948년)에서 성육신의 신비에 관해 진술하고자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역설적 그리스도론이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참하나님과 참 인간의 연합의 신비에 대한 가장 유용한 접근 방법은 그것을 하나의 모순된 일, 곧 성경 계시의 특징인 역설적 표현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역설적 요소를 무시하거나 제거하게 되면 성육신 자체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239.2)
 4. 오스카르 쿨만
 불트만은 성경 기록의 사실성을 거의 신뢰하지 않은 반면에, 오스카르 쿨만(Oscar Cullmann)은 〈그리스도와 시간(Chris and Time)〉(1951년)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갈보리에서의 죽음이 때를 맞춰 일어난 사건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약의 기록은 그리스도의 사건들에 관한 실존론적으로 신화화된 해석이 아니라 구원-역사적인 해석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하신 일을 발견해 냄으로써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칭호들에 대한 쿨만의 면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The Christology of the New Testament, 1959). (239.3)
 5. 과정(過程) 그리스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