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역사적 개관의 목적은 2,000년의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서 발전해 온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에 관한 영향력 있는 몇몇 사상적 계통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개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이 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부족한 지면으로 인해 신학자를 충분히 평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주요 신학적 흐름들이 잘 다루어져서 오늘날의 독자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사상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좀 더 명확히 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32.1)
 A. 초기교회
 그리스도교가 선교 활동을 확장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문화적 경계를 넘어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태생부터 상당히 탐구적인 헬라 사상의 자극 때문에, 정통 그리스도교의 한계가 무엇인지가 하나의 쟁점으로 등장하였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신약의 기자들이 확립해 놓은 그리스도론적인 신앙고백에 대한 수용 여부가 그 쟁점이었다. 이 신앙고백의 발전 초기부터 말씀(로고스)는 죄인의 구원에 있어서 독특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설명되었는데, 이는 그분이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사람이셨기 때문이다. 신성과 인성의 연합과 관련된 이 같은 이해는 그분에 대한 과장된 표현들이 상당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등장했을 만큼 매우 중대한 쟁점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후에 이단으로 정죄된 여러 학파의 흔적들은 단편적인 것들만 남아 있으며, 또한 그 남아 있는 것들까지도 대부분 그들의 반대파에 의해 제시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신뢰하기는 힘들다. (232.2)
 1. 두 본성의 실재성을 부인함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두 본성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단들은 양극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측에 위치한 가현설(Docetism)과 영지주의(Gnosticism)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분의 인성을 경시하거나 부인하였으며, 좌측의 에비온주의(Ebionism)는 예수의 신성은 부정하고 그분의 인성만을 강조하였다. (233.1)
 에비온파 사람들은 그들의 유대교적 배경에 그 뿌리를 둔 강력한 유일신 사상의 관점에서 예수를 이해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아닌, 요셉과 마리아의 육신적인 아들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의롭고 침례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메시아로서의 사명감을 부여받은 존재로 여겼다. (233.2)
 이와 반대로 가현설(Docetism, “∙∙∙으로 보이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동사 도케인에서 파생됨)은 신성이신 말씀이 진짜로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사람으로 보이신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가현설은 영적 혹은 비물질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명확히 구분 짓는 광범위한 문화적 경향의 일부분이었다. 물질세계는 악한 것으로 여겨졌고 오직 영적 세계만이 찬양 받을 가치가 있는 숭고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사상은 예수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 실제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교 가현설의 신봉자들은 그들이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어려움도 찾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분의 고난과 죽음은 단지 외관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3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성적 그리스도교 집단들에게 영향을 끼친 매우 위험한 이단이었다. (233.3)
 2. 두 본성의 완전성을 부정함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Justin Martyr, 100년경-165년), 안디옥의 테오필루스(Theophilus of Antioch, 2세기말), 사데의 멜리토(Melito of Sardis, 190년경 사망), 이레나이우스(Irenaeus, 115년경-202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160년경-220년경), 오리게네스(Origen, 185년경-254년경)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좀 더 성경적인 관점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도전들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종종 신약에 나와 있는 역사적 계시보다는 당시의 철학적 경향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때문에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애매모호한 그리스도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233.4)
 아버지 하나님의 유일성을 지키는 것이 그 목표였던 단일군주론자(Monarchian)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점차로 증가하는 삼위일체론적 견해들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말씀”(로고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열등한 존재였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두 본성의 완전한 결합을 부정하는 이단 사상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핵심이었다. 아리우스(Arius, 250년경-336년경)의 주장으로 인해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역설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히 초월적인 유일한 존재시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과 직접 접촉하면서 창조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통해서 창조하셨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보다 먼저 존재하듯이 그분도 그분의 아들보다 먼저 존재하셨다. 아버지와는 달리, 그 아들은 존재의 시작이 있었다. 그분은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에 아버지에 의해서 무로부터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라 불리긴 하지만, 아버지와 동일한 하나님은 아니다. 그분은 존재하지 않던 때가 있었으며, 그분이 소유한 속성 또한 하나님의 속성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233.5)
 3. 니케아 공의회의 결론
 아리우스는 325년에 제1차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서 정죄되었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년경-373년)는 아리우스와의 논쟁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논증은 더 이상 “말씀(로고스)”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육하신 말씀에 의해 성취된 구속 사역에 근거한 것이었다. 오직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만이 그 일을 성취하실 수 있으셨다. (234.1)
 다음은 니케아 신조의 일부분이다 “우리는∙∙∙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독생자, 곧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신 하나님이며, 빛이시며, 참 하나님이시고, 만들어지지 않고 독생하신, 아버지의 본질[호모우시오스]과 동일한 본질을 소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본질(substance)”이라는 용어는 그 뜻이 다소 불명료하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이것을 어떤 특정한 계층에 속해 있는 개인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여기에서는 신격이 공통적인 본질이다. 이례적인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여러 세기 동안 계속해서 존속하였다. (234.2)
 4. 두 본성의 상호 관계
 니케아 이후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시기는 서로 대립하는 두 학파가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4세기 중반에서 5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였다. 이 두 학파 중 하나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리아의 안디옥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이 학파들은 각각 “참하나님이신 영원하신 아들이 어떻게 동시에 참된 인간이 되실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은 예수의 신성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인성이 신성이신 말씀과 연합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에 안디옥 학파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었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좀 더 느슨하게 이해하였다. 전자의 학파는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을 강조하였고, 후자의 학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을 강조하였다. 곧 이어 그와 관련된 과장된 표현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34.3)
 a. 압폴리나리스
 아타나시우스의 제자였던 압폴리나리스(Appolinaris, 310년경-390년)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견해를 극단으로 끌고 갔다. 그분은 신성이신 말씀이 예수 안에서 죄가 소유하고 있던 인간의 마음(누스)을 차지하셨다고 가르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도덕적 성장과 그분의 참된 인성을 부정하였다. 그의 견해는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서 명시적으로 정죄되었다. (234.4)
 b. 네스토리우스
 이와 정반대로,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51년경 사망)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려고 노력 하는 중에 그분의 신성과 인성 사이의 차이점을 너무 지나치게 드러내어 설명하였다. 그가 마리아를 가리키는 쎄오토코스[하나님을 “낳은 자”]라는 용어 사용을 지속적으로 반대함으로써 그가 사실상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그의 반대자들에게 주었다. 그는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두 본성 혹은 두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도덕적으로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234.5)
 c. 유튀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