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사역에는 인류의 도덕적 상태의 참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이 죄와 회개 및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해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분의 사역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분의 행동과 그분의 가르침은 죄를 참으로 죄 된 것으로 만들었다. 그분의 출현과 그분의 사역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은 죄를 깨달았다(눅 5:8; 7:36-50). 예수 자신이 바로 체현된 복음이었다. 이 복음은 한편으로는 죄를 드러내고 그것을 정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를 용서 받고, 시작부터 세상을 이기고(마 4:1-11; 요 6:33), 승리자가 되신 분과 연합하도록 죄인을 초청한다. 하지만 타락한 죄인들은 결국 그분을 거절하고 죽였으며, 이로써 인류의 죄와 필요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냈다. (209.2)
 8.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심
 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육체로 이 땅에 오셔서 죄를 범하는 일 외에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하셨는데, 이는 그분이 대제사장이 되기에 적합한 존재가 되시기 위함이었다(히 2:17, 18).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들이 행하던 삼중 사역, 즉 매년 성소와 회중을 위해 속죄 제물을 드리는 일, 신실한 신자들을 위해 중보하는 일 그리고 백성을 위해 복을 비는 일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레 4:16-21; 16:1-28). (209.3)
 9.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심
 그리스도의 사명에는 그분의 죽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분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요일 3:8) “죄를 없이” 함으로(5절)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히 2:14, 15).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글에서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고 기록하였다(딤전 1:15). 하지만 이 일은 히브리서에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오직 “사망으로 말미암아”성취될 수 있는 일이었다(히 2:14). 그분의 오심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그분이 특별히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성육신과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사명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었다. 죄를 위해 자아를 희생제물로 드리는 일은 그분의 사역의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였다. (209.4)
 B.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사역
 1. 그리스도께서 염두에 두고 있던 사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전에 계획 없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성육신과 연관된 하나의 명확한 목표로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공생애 초기에 이미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계셨음을 보여 주는 진술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제4복음서의 앞부분에서 울려 퍼진 그 비극적인 음조(요 3:14, 15)가 공관복음의 기사들을 통해서 확증되고 있다(마 9:15; 막 2:19, 20; 눅 5:34). 예수의 제자들이 그분이 예언에 나타난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차리자(막 8:29) 그분은 곧바로 자신의 진정한 사명 곧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 8:31; 참조 막 16:21)에 대해 그들에게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알려주셨다. (210.1)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죽음이 구원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이 의미하는 바도 이해하고 계셨다. 이와 관련된 그분의 말씀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신이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 10:45)라는 말씀이다. 마지막 만찬에 대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이 매우 유사하긴 하지만(마 26:26-29; 막 14:22-25), 다른 점은 마가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14:24)라고 기록한 반면에 마태는 여기에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마 26:28). 예수께서는 마태가 덧붙인 문구에서 자신의 임박한 죽음에 대해 신학적 설명을 하셨다. (210.2)
 예수에게 있어서 자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부수적 사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이미 예언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인 것들로서(마 26:54, 56; 눅 22:37=사 53:12; 눅 24:44; 요 17:12=시 41:9)그분이 이미 예상하고 받아들이신 것들이었다. 그분은 자발적으로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다. 그 누군가가 그분의 목숨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버릴 권세도 소유하고 계셨으며, 또한 그것을 다시 찾을 권세도 소유하고 계셨다(요 10:17, 18; 참조 마 26:53). (210.3)
 2. 신약의 기자들이 가졌던 확신
 예수와 마찬가지로 신약의 기자들도 복음 이야기가 적어도 예표와 상징의 형태로는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주의 종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보았다(마 18-21장행 8:32-35; 벧전 2:21-25). 그리스도의 고난과 관련해서는 이런 관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 3:18)라고 단언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하는 이유를 구약에서 찾고(행 17:2, 3)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고전 15:3). 그는 또한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자신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되리라고 한 일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에 대해서만 말하였다고 고백하였다(행 26:22, 23). 베드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었얻나니”라고 기록하였다(벧전 2:24). 이 성경절의 후반부는 장차 올 종이 겪을 대속적 고난에 대한 이사야의 묘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사 53:5). 이는 또한 앞에서도 이미 언급된 부분 곧 고난 당하는 종에 대하여 더 광범위하게 기술하고 있는 이사야 52:13-53:12의 일부분으로, 여기에서 그 종은 존귀케 된 후에 자기를 핍박한 자들을 구원하고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210.4)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배신당하실 것에 대한 예언(시 41:9-11; 행 1:16),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 및 그것과 관련해서 일어날 사건들에 관한 예언(시 22:1, 7, 8, 18; 마 27:39-41; 막 15:34; 요 19:23, 24), 그분의 부활에 대한 예언(시 16:8-10; 행 2:22-28) 등과 같은 특정한 예언들을 지목하여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마태는 그리스도께서 은 30냥에 팔리실 것을 스가랴가 이미 예언하였다는 것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는데(슥 11:12, 13), 이 예언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는 죄를 범함으로 성취되었다(마 26:15). 스가랴는 또한 목자를 침으로 양이 흩어 질 것이라는 예언도 하였다(슥 13:7; 마 26:31). (211.1)
 베드로전서 1:10-12에 이 문제에 관한 사도들의 견해가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211.2)
 이 글을 기록한 바로 그 사도는 이보다 수년 전에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였던 사람이 나은 것을 보고 크게 놀란 사람들에게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행 3:24)고 설명하였다. (211.3)
 3.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그리스도의 죽음
 그리스도의 사명과 사역에 대한 이제까지의 우리의 고찰에 비추어볼 때, 그분의 죽음은 그분의 삶과 더불어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중요성은 보통 사람들의 죽음이 지니고 있는 중요성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다. 사복음서 모두 이 문제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요한은 12개 장을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기술하는 데 할애하고 9개 장을 그분의 고난과 관련된 사건들, 즉 마지막 만찬을 드신 날 밤부터 그분의 죽음과 부활 때까지 그분이 당하신 고난들을 서술하는 데 사용하였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마지막 주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는 데 그의 복음서의 4분의 1을 할애하였으며, 마가는 약 3분의 1을, 그리고 누가는 5분의 1 이상을 할애하였다. 십자가는 모든 복음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복음서의 기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211.4)
 십자가에 달려 죽는 죽음은 피가 낭자한 잔혹한 죽음으로, 특별히 1세기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나무에 달려죽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씀을 상기시켜 주었다(신 21:22, 23). 하지만 가증스런 그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사명과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적 요소이다. 요한은 이 죽음을 세상의 구원을 위한 사건으로 여긴다(참조 요 3:13, 14; 12:32).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바친 자신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 무죄한 상태로 자발적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의 죽음을 근거로 속죄의 권리를 무한히 행사할 수 있으시다. (211.5)
 C. 속죄:그 배경을 이루는 요소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십자가이다.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을 위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이루셨다.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 통해서 죄로 인해 생긴 모든 문제를 완전히 다루신 것을 의미한다. 그분은 모든 필요를 채우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속죄적 삶과 죽음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그 용어의 의미를 정의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서 신약이 제시하고 있는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몇몇 중요한 요소에 대해 간단히 고찰하고자 한다. (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