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에서 연—일 원칙을 이미 여러 번 언급한 바가 있다 이 원칙에 의하면, 묵시적인 예언에서 하루는 상징적으로 실제의 1년을 나타낸다. 따라서 다니엘 7:25요한계시록 12:6, 14의 1,260일은 1,260년을 나타내고, 다니엘 8:14의 2,300일은 2,300년을, 다니엘 9:24-27의 70이레는 490년을 나타낸다. (329.1)
 과거주의자들은 연—일 원칙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주의자들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원칙 자체에 무슨 잘못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에 결함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연—일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묵시적 예언 해석의 틀에 맞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예언상의 하루를 실제의 1년으로 계산하는 개념은 예언들을 역사주의적인 틀에서 해석할 때에만 의미가 통한다. (329.2)
 과거주의자들은 디니엘서가 그 책이 기록될 무렵에 성취되었다고 믿는다.그들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들, 즉 다니엘 7장8장의 작은 뿔들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과거주의자들은 이 예언들이 그리스도교 시대 역사의 긴 기간들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물론 연—일 원칙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의 해석 도식(圖式)에 맞추기에는 너무나 길다! (329.3)
 미래주의자들도 일반적으로 다니엘 7장의 사나운 짐승들이 바벨론, 메대—바사,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들을 나타낸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작은 뿔이 대환난(Tribulation)의 기간, 즉 지구 역사 최후의 7년 동안 다스릴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리고 다니엘 7:25의 한 때, 두 때, 반 때는 이 7년 대환난의 전반부인 실제의 3년 반이라고 그들은 해석한다. 이 해석에 따르자면, 다니엘 7장에는 기원후 약 5세기와 마지막 대환난 사이에 거대한 공백이 있는데, 사실 그 예언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이것이 미래주의자들에게도 연—일 원칙이 전혀 필요 없는 이유이다. (329.4)
 대조적으로, 다니엘의 역사주의 해석자들에게는 연—일 원칙이 필수적이다. 기원전 457년과 기원후 538년에 시작하는 예언들과 우리 시대까지 이어지는 예언들에는 이 원칙이 제공하는 긴 기간이 필요하다. 나는 이 장에서 내가 믿는바 연—일 원칙이 묵시적 예언에 나오는 기간들을 해석하기 위한 타당한 방법임을 뒷받침하는 성경의 증거들을 검토하려고 한다. 먼저 역사 대대로 재림교회가 제시해온 성경적 증거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330.1)
 전통적인 재림교회의 설명
 윌리엄 밀러의 때로부터 현재까지 재림교회는 연—일 원칙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두 개의 성경 본문을 내놓았다. 첫째는 민수기 14:34이다. 그 장 전체가 가나안 땅의 경계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자손의 반역에 관한 것이다. 그때 백성의 대다수는 열 정탐꾼의 믿음 없는 보고를 따랐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그들의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특히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라고 한 말에 유의하라 이것이 연—일 원칙의 배경에 있는 개념이다. (330.2)
 두 번째로 우리가 사용한 본문은 에스겔 4장에 있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반역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별을 그가 행동으로 나타내는 비유의 형식으로 주셨다. 에스겔은 그들이 하나님께 반역한 기간을 매년 하루씩 쳐서, 왼쪽으로 누워서 390일 그리고 오른쪽으로 40일 동안 백성의 죄악을 짊어져야 했다. 6절은,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년이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하루를 1년으로 따지는 개념을 주목하라.

 
어떤 비평가들은 이의를 제기하기를, 민수기에서는 하루가 실제 시간의 1년을 나타내고, 에스겔서에서는 1년이 실제 시간의 1일을 나타낸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쪽으로나 연—일 원칙은 본질적으로 같다. (330.3)
 이 두 본문—민수기 14:34에스겔 4:6—이 재림교회가 전통적으로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기간들을 해석하는 연—일 원칙을 입증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일차적인 성경적 근거이다. (331.1)
 과거 수백 년 동안에는 많은 성경학자들이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기간 예언들을 연—일 원칙에 따라 해석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해석자들은, 보수적이든 자유주의적이든 막론하고 이 원칙의 타당성을 부인한다. 심지어 일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까지도 오늘날 연—일 원칙을 부정한다. 데스먼드 포드는 1978년 그의 책〈다니엘〉의 부록에서 상당히 길게 그 원칙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였다.1) 그러나 2년 후 글래시어뷰에서 발표한 원고에서는, 연—일 원칙의 증거가 어디 있는가? 대개 민 14:34겔 4:6단9:24-27을 내세웠으나, 분명히 이것들은 필요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이 구절들 중 어느 것도 모든 상징적인 예언에서 하루는 1년을 의미한다는 것을 하나의 규칙으로 명시하지는 않는다.)”2) 그리고 레이먼드 코트렐은 연—일 원칙을, 그것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가짜 원칙”3)이라고 부른다. (331.2)
 포드와 코트렐의 말이 틀림없는가? 성경 어디에서도 연—일 원칙을 직접 명시하지는 않는다는 데는 일단 동의한다. 내가 위에서 인용한 본문들은 모두 실제로 그것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경이 연—일 원칙을 글자 그대로 명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포드와 코트렐이 옳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교리 역시 성경 어디에서도 그것을 서술하지는 않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교리들 중 하나로 믿는다. 성경이 성부, 성자와 성령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들로부터 쉽사리 삼위일체를 도출해낼 수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동일한 맥락에서, 연—일 원칙 역시 성경이 그것을 그대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성경에서 도출해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331.3)
 그러면 우리가 연—일 원칙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성경의 증거들은 무엇인가? (331.4)
 다니엘의 장기(長期) 예언들
 연—일 원칙은 성경 예언 해석의 역사주의 방법론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역사주의자들은 다니엘의 예언들이 선지자의 당대에서 시작하여 순서대로 계속되어 세상 끝, 다니엘 8장의 경우에는 마지막때까지 이르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니엘 7장8장의 시간 진술들이 모두이 문맥 안에 있다. 7:25의 1,260일과 8:14의 2,300일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각각 3.5년과 6.3년이 되며, 그것은 역사주의적 방법에 필요한 긴 기간을 포괄하기에는 한참 짧다. 그러면 분명히, 역사주의의 방법에 의하면 이 기간들은 상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놀랄 일도 없는 것이, 큰 나라들을 상징하는 짐승들과 뿔들이 등장하는 다니엘 7장8장은 모두 고도로 상징적이기 때문이다. (332.1)
 만약 우리가 이 기간들을 처음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각 날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나타낸다고 생각할까? 우리 인간들은 시간을 네 종류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나누는데, 시간, 날, 달, 그리고 해[年]가 있다. 시간과 날은, 이 기간들을 해석하는 데는 논외로 한다. 심지어 그 기간을 달들로 계산해도 너무 적은 시간이 된다—한 때, 두 때, 반 때는 42개월이 되고, 2,300 저녁과 아침은 76.7개월이 된다. 따라서 다니엘 7장8장의 상징적인 기간들이 이 예언들을 역사주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데 적합성을 가지려면, 그것을 해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10장에서 지적하였듯이,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표현에서 “때”를 나타내는 아람어 낱말은 잇단인데, 그 동일한 단어가 다니엘 4:16에도 나타나며, 다수의 해석자들은 그것이 “해”(years)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332.2)
 또한 요한이 다니엘의 1,260일 기간 예언을 요한계시록 12장에서 반복할 때에도,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지막 때의 위기 사이에 긴 기간 동안 당할 박해에 적용시켰다(참조 6, 14절). 따라서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의 두 문맥에서 공히, 문자적인 3년 반이 역사 중의 그 거대한 기간에 해당된다고 보는 것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333.1)
 일부 연—일 원칙의 비평가들은 다니엘 7:25, 8:14이나 9:25 어디에서도 날에 해당되는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1888년으로 유명한 E. J. 왜거너는 재림교회를 떠나자마자 이 논쟁을 일으켰다. 그는 “여기서 [단 8:14에서]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날’이라는 의미로는 전혀 사용된 적이 없는 용어가 날을 상징한다고 믿으라는 말을 듣는다∙∙∙ 모든 곳에서 ‘날’로 번역되는 히브리 단어는 따로 있으며, 그것이 히브리 성경에서 ‘날’에 해당되는 유일한 단어이다. 왜 여기서만 예외가 되어야 하는지 의아했던 적이 없는가?”4) (333.2)
 왜거너의 비평에 대하여, 만약 다니엘 8:14에서 저녁과 아침이라고 말한 그 천사가 어떤 기간을 생각하고 있었다면(모든 해석자들이 그렇다고 동의한다), 우리도 그 저녁과 아침들이 어떤 시간의 단위를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함을 나는 지적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날(days)을 뜻한다고 모두가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해석자들은 2,300반일(半日, 즉1,150전일[全日]) 이라 하고, 다른 이들은 2,300전일(全日)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쨌든 로 표시되는 기간이라는 데는 모두가 일치된다. 그러므로 “저녁-아침 이천 삼백”이 2,300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재림교회의 해석이 뭐가 잘못인가? (333.3)
 사실상 다니엘 7, 8, 9장의 시간 예언을 기술한 원어(原語)에서 문자적으로 날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서 그 언어 표현이 상징적이라고 하는 증거이다. 윌리엄 셰이는 말한다. “시간을 계산하는 데 ‘저녁—아침’이나 ‘때,’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레’까지, 평범하지 않은 시간 단위를 사용한 것은 단순히 문자적인 시간 이상의 무엇인가가 여기에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이와 같이 유별난 단위들은 상징적인 시간과 더 잘 어울리며, 그런 점을 강조하키 위하여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5) (334.1)
 대총회 성경연구소의 부소장 중 한 사람인 게르하르트 판들(Gerhard Pfandl)은 다니엘 7:25“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요한계시록 12:6“천이백육십 일”로, 요한계시록 12:14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요한계시록 13:5에는 “마흔두 달”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지적한다. 대조적으로, “자연스러운 표현인 ‘삼년 반’이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6)라고 말한다. 그 다음에 그는 19세기의 저자인 토머스 버스크(Thomas R. Birks)의 말을 인용한다. 그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 성령은 실제의 기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평범한 글쓰기에 사용되거나 성경의 다른 경우에는 변화 없이 사용되는 표현을 제외하고는, 그 기간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다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연-일 원칙을 받아들일 때는 매우 의미심장하지만, 다른 견해에서 볼 때는 설명이 불가능하다.”7)

 
성경연구소(Biblical Research Institute)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대총회의 한 부서이다. (3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