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고찰을 시작할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이고 좋은 방법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가장 놀라운 주장들 중의 하나, 곧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 서언에 기록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하나님이”신(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14절)는 주장에 주목하는 것일 것이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셨을 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14절)까지 하셨다.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우리 가운데 거주하셨다” 또는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을 말하는 이 강력한 표현은 그분의 선재성에 관한 확실한 암시이기도 하다. (196.1)
 1.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신약은 명시적인 방법과 암시적인 방법 둘 모두를 동원하여 말씀이신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계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분의 존재는 유대 땅에서의 탄생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 자신이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사실에 대해 자신의 입으로 직접 언급하신 경우를 여러 번 찾아볼 수 있다(참조 마 5:17; 15:24; 막 1:38; 10:45; 눅 19:10; 요 5:23). 이러한 언급들은 그분의 예언적 사명을 말하는 단순한 암시들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분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한 명시적인 용어들, 곧 자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왔다”거나 “내려왔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이 본래 하늘에 속한 존재임을 명백히 드러내셨다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요 16:28 ; 참조 마 20:28; 눅 19:10).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요 3:31, 32).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요 6:62). (196.2)
 우리 주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영광 가운데서 아버지와 긴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이미 존재해 계셨다고 주장하셨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출 3:14)라는 구약의 구절을 연상케 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고 확언하기도 주저하지 않으셨다. 이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구약의 구절, 곧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가르쳐주신 자존성과 영원성을 나타내는 그분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말씀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선재성이 그저 단순한 선재성이 아닌 영원한 선재성임을 의미한다. 바울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셨도다”(딤전 1:15;참조 3:16)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는 또한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 17; 참조 창조 II. C)라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 (197.1)
 이 문제와 관련된 언급들은 신약만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가는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분을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 계시는 분, 곧 “그의 근본”“태초에 상고”(미 5:2)이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사야는 약속된 그 동일한 메시아를 “기묘자”“모사”“평강의 왕”으로뿐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영존하시는 아버지”로도 묘사하고 있다(사 9:6). (197.2)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셨으며, 또한 그분이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더불어 영광을 누리던 하늘로부터 “내려오”셨다는 가르침은 우리가 그분의 위격과 사역을 이해하는 데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출생이 단지 한 위대한 인물의 출생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존재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 오신 사건임을 나타내 보여 준다. (197.3)
 2.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선재(先在)라는 개념은 신약의 기자들에 의해 추가적으로 발전되었다. 요한은 성육신 이전의 말씀에 대해 언급하면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설명한다(요 1:2, 14). 요한은 여기에서 그분이 “육신을 입으셨다”거나 “육신으로 나타나셨다”고 기록하지 않고, 명확하게 그분이 “육신이 되”셨다고 기록하였다. 원문에서 부정과거(aorist)시제에 의해 강조되고 있듯이 정해진 명확한 시간에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는 하늘로부터 오셔서 성육하신 존재이시다. [영어의 ‘incarnation’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그 본래의 의미는 ‘육신이 됨’이다.] (197.4)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께서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을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성경 구절에서 예수에 관해서 말하면서 그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하였다(빌 2:5-11). 그런 후에 그는 존귀케 되셨다. 여기에서 “본체” 또는 “형체”로 번역된 헬라어 모르페는 본질적인 특성과 자질을 의미하는데, 이는 임시적이고 가변적인 것들과는 확연하게 대비를 이루는 특성과 자질이다. 사도는 여기에서 선재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들을 소유하셨던 존재였음을 단언하고 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나 그런 후에 바울은 그 말씀이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 곧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본질적 특성과 자질을 취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그분은 완전한 사람이 되셨다.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변신(變身)의 일종이 아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되신 것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단지 인성을 쓴 것이 아닌 진정한 인성을 소유한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가진 인성은 참되고도 완전한 인성이다. 선재하던 한 신적 존재가 자기를 비어 인성을 취하신 것이다. 그분이 이루신 것은 진정하고 참된 성육신이다. (197.5)
 우리는 이 밖에도 성육신에 대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다른 많은 구절을 바울 편지서 전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매우 강력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들도 있다(고후 8:9; 골 2:9; 3:16; 히 2:14; 5:7). 우리는 갈라디아서 4:4, 5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읽을 수가 있다. 바울은 여기에서 이 모든 일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분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구원의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셨다. 사도는 그의 삶의 말년에 기록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셨도다”(딤전 1:15)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선생이나 모본이 되시는 어떤 존재, 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거나 그 뜻을 해석해 주는 어떤 존재의 필요를 느낄 수가 있다. 또한 우리는 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방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이 모든 것 이상이 되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또한 구세주이시다. (198.1)
 3. 동정녀 탄생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주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동정녀였던 마리아에게 잉태됨으로 성육하셨음을 가르쳐준다(눅 1:26-35; 마 1:18-21).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성경의 기록에서는 AD 1세기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그리스 신화의 흔적이나 신들 간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 또는 신화적으로 묘사된 출생 이야기 등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단지 담백하고 단순한 언어로 기술된 성령의 절대적 권위 행사에 대한 이야기만을 찾아볼 수 있다. (198.2)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에는 신성과 인성 둘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주장을 하고, 또한 이 신앙고백을 진리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금석으로 삼은 것은, 그저 판에 박힌 어떤 한문구를 되풀이 한 것이 아니었다(요일 4:2). 그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성의 연합 속에 영원히 거하던 한 존재가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은 상태에서 그분의 단번의 행위를 통해 사람이 되셨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육체”라는 용어를 단지 사람의 신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완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198.3)
 경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채, 실증론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현대화하고 세속화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육신 그리고 그분의 동정녀 탄생, 이 모두를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힘든 신화들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신약의 기자들은 성육신만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참조 요 1:8). 그리스도의 선재와 성육신과 동정녀 탄생은 각각 분리된 천 조각들이 아닌 하나의 천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잘못 삽입된 이질적인 천 조각이 결코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 준다. 그것들은 구속의 드라마 전체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그것들을 배제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명에 관한 성경적 이해라는 직물에 구멍을 하나 뚫는 것이나 다름없다. (199.1)
 B. 인성과 신성
 1. 그리스도의 인성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사람이셨다는 주장을 신약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분은 여러 호칭을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존귀하게 여김을 받은 존재이시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사람이셨다. 편지서와 복음서 및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 사실을 나타내 보여 준다. 신약의 기자들이 예수의 인성에 관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분이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연시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여자에게서 나”셨고 “율법 아래 나”셨으며(갈 4:4) 그분의 육신적 혈통이 다윗의 혈통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당시에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있던 바를 단순히 요약한 것에 불과하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199.2)
 a. 성경의 증거
 우리가 복음서들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사람이셨다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다윗의 동네에서 나셔서(마 2:1; 눅 2:4-11) 팔레스타인에서 자라시고 본디오 빌라도의 치하에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셨다(마 27:11-50; 요 18:28- 19:37). 그분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리아였고(막 6:3), 비록 그분의 누이들은 그 이름들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분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그리고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마 13:55, 56). 우리는 복음서 기자들의 묘사들을 통해서 그분이 참된 인성의 특성들을 소유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음식을 잡수셨고(마 2:16) 주무셨으며(마 8:24),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피곤을 느끼기도 하셨다(요 4:6). 그분은 지혜와 키가 자라가는 중에(눅 2:40, 52) 부모를 순종하여 받드셨다(눅 2:51). 그분은 질문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자 시도하는 사람으로 여러 차례 묘사되어 있다(마 7:3. 4; 9:28; 막 7:18, 19; 눅 7:24-28; 요 11:34; 18:34). 그분은 시험을 당하셨으며(마 4:1), 고민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셨다(마 26:27; 참조 요 11:35; 12:27). 그분은 배고픔(마 4:2)과 목마름(요 19:28)을 느끼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즐기셨으며(요 11:5), 또한 그들의 증오와 질시를 인지하셨다(요 7:7; 15:18; 막 15:10). 그분은 믿음을 행사하는(마 4:4; 요 11:41) 기도의 사람이셨다(마 14:23; 마 1:35; 눅 11:1). 복음서는 이 외에도 사람들 앞에서 기뻐하시는 그분의 모습(눅 10:21)과 그분의 노한 눈빛(막 3:5) 그리고 홀로 십자가 달려 계실 때에 발하신 큰 소리로의 외침(마 27:46)에 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오직 한 가지, 즉 그분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고후 5:21)것 외에는 예수께서 “사람들과 같이 되”신(빌 2:7) 완전한 인성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도의 확신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해야 할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셨다. (199.3)